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
“77일간 저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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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를 구속시키는 법만 적용하고, 우리가 보호 받을 수 있는 법은 적용되지 않는 건가.”
파업이 종료됐고 폭력의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얼굴을 마스크와 칸막이로 가리고서야 피해자 증언대회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쌍용차 노동자의 항변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김두식 교수는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는 인용구를 통해 한국의 사법시스템을 비판한 바 있다.
13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는 이 인용문이 얼마나 통찰력 있는 지적인지 보여줬다.
가족대책위 회원과 조합원 네 명, 민주노동당 당직자, 국회의원, 의료진 등이 경찰의 폭력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증언했다. 이들은 한결 같이 “법치 국가가 맞냐?”고 따져 물었다.
경찰은 용역깡패와 합동 작전을 폈고, 의료진과 물을 봉쇄해 공장을 “사람이 못 살 공간”으로 만들었다. 파업 노동자들은 오히려 “완성차를 불태우고 라인을 망가뜨리는 구사대”에 맞서 생산 시설을 지키려고 싸워야 했다.
“77일간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우리를 인간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동료가 큰 부상을 당했는데, 해 줄 수 있는 게 붕대 감아주는 것밖에 없더라. 최루액을 온몸에 뒤집어써서 온몸에 물집이 났다. 가려워 잠도 못 자고 말도 못 할 고통을 겪었다. 코나 귀가 찢어진 동료들도 있어 나 같은 경우는 의무실 가서도 아프단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쟁터나 다를 바 없었다.”
“8월 5일 사무실 하나에 용역이 불을 질렀다. 씻을 수도 없는데, 검댕이 다 묻혀 가며 불로 구멍나서 무너질지도 모르는 옥상에서 소화 작업을 했다. 그 상황에서 경찰과 구사대는 우리에게 새총 공격을 했다.”
“공장 안은 사람이 못 살 공간이었다. 최루액 맞아 온 몸이 피부병에 걸렸다. 그런데도 더운데 씻지 못하는 게 워낙 괴로워 그 쏟아지는 최루액에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새총을 계속 쏘아댔다. 경찰이 방패로 막아 주고, 사측 관리자가 방향을 지시하면, 용역이 발사했다. 그러다 갑자기 싹 사라졌는데, 조금 있다 방송 헬기가 떴다. 헬기가 뜨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니까 경찰이 미리 알려 준 것 아니겠는가. 방송 헬기가 사라지자 다시 나와 새총을 쏘더라.”
“공장 안에 녹내장 환자가 있었다. 매일 안약을 넣지 않으면 안압이 올라 시신경이 죽는다고 한다. 맹인이 되는 거다. 안약 안 챙겨 왔냐고 물었더니 냉장 보관해야 하는 약이라 상온에서는 한 달밖에 쓸 수 없다는 거다. 눈이 멀지도 모르는데 그 약마저 안 넣어 줬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헬기가 저공비행으로 날아다녔다. 저공 상태에서 큰 봉투에 최루액을 담아 사람을 겨냥해 머리 위로 던졌다. 마치 우리가 잡초고, 쟤네들이 제초제를 뿌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노노 갈등 문제는, 회사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고 지금도 없는 내용 조작하고 있다. 우리랑 통화한 대부분 직원들이 관제 데모 정말 가기 싫다고 하소연했다. 밖과 통화한 사람이 많았는데, 그게 대부분의 정서다. 그러나 회사가 집회장에서 출근 확인을 하고 안 오면 경고 조치하겠다고 협박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사측이 이용했다.”
민변과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이 모든 진압 행위들이 불법이다!
야만
그래서 오히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권영국 변호사의 발언이 참가자들에겐 더 와 닿았다. 권 변호사가 소속된 민변은 이 불법 행위들을 모두 소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공장에서 벌어진 일을 법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야만 그 자체인데. 무슨 조항 위반이니 뭐니 지적하는 것도 우습다.”
“다만, 저들이 노동자들 보고 불법 운운하니, 우리도 ‘너희야말로 불법이다’ 하고 말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사대보다 경찰 진압이 더 폭력적이고 위법적이라고 생각한다. 파업 장소가 경찰의 신무기 실험장으로 전락했다.”
“법으로 보호 받을 국민이고, 유리지갑 월급봉투에서 꼬박꼬박 안 빼놓고 세금 낸 국민인데”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이명박 정부는 상상도 못했던 범죄를 저질렀다.
이 범죄의 후유증은 아직도 파업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오늘도 구사대에 맞고 도망치는 꿈을 꿨다. 집에 온 후에 매일 그런 꿈을 꾼다. 몇 시에 잠들어도 늘 새벽 4시면 깬다. 물어보니, 다른 동료들도 그렇다더라.”
“저공비행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 없던 공포가 생겼다. 엊그제 아내랑 애들이랑 나들이 갔다가 헬기 소리가 났다. 소리 듣자마자 애들 손 놓고 근처 건물로 숨었다. 그리고 창피해 혼자 울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이상윤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각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엊그제까지 살인 진압에 맞섰던 투사들이 심약한 피해자로 전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지는 여전하다.
“노조가 조합원을 도망 못 가게 했다는 왜곡보도가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는 충분한 토론을 했고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했다. 민주적으로 결정한 파업이다. 자기 의사로 참여한 파업이다. 보도 자체가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회사가 합의사항을 두고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비해고자인데도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이 있다. 이들을 대기발령 냈다.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감사할 분이 셋 있다. 먼저 아내에게 감사한다. 아내가 나 대신 노동운동의 전사가 돼서 가대위 활동을 했다. 가대위가 갇힌 우리들의 팔과 다리가 돼 줬다. 또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감사한다. 나도 정규직이라 전에는 별로 신경 못 썼는데, 우리보다 훨씬 고생하며 헌신적으로 싸웠다. 반성했다. 우리와 같은 노동자다. 꼭 고용승계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장 안에 있던 기자들에게 감사한다. 이 분들은 목숨 걸고 취재했다. 우리 진실을 알려 줬다.”
이날 증언대회를 주최한 ‘자동차 범대위’, ‘쌍용자동차폭력진압 야4당 공동조사위원회’, ‘민주노총’, ‘인권단체연석회의’, ‘보건의료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민주국민회의’는 향후에도 경찰의 살인 진압을 응징하기 위해 계속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 단체들은 공동으로 경기경찰청장 파면과 화학·살상무기 사용 중단, 경찰폭력 피해 국가 보상과 재발 방지 약속, 노동권·생존권 보장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15일 열리는 8.15 시국대회에도 쌍용차 살인 진압 규탄과 책임자 처벌이 주요 요구로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단일 투쟁으로는 최대 구속자를 내면서 보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것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웃으며 공장을 나왔기 때문이다. 이 투사들이 계속 투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피해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다시금 지원과 연대가 재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