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 거품을 키우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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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2.0’: 거품 회복에서 1차 더블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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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적극적인 위기 대처로 대재앙을 막는 데 성공했으며, 세계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면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가 종료됐음을 공식 선언했다. 이에 따라 같은 날 미국 다우지수는 연중 최고치인 9천5백5를 기록했고, 8월 24일 코스피지수도 13개월 만에 1천6백을 돌파했다.
8월 21일 IMF는 한국 경제가 2010년 2.5퍼센트 성장한 뒤 2011년에는 5.2퍼센트의 고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OECD 역시 지난 6월 한국 경제가 회원국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과연 이번 세계경제 위기, ‘대공황 2.0’은 벌써 끝난 것일까? 한국 경제는 정말 가장 빨리 회복되고 있는가? 우선 미국의 경우 불황이 이번 8월에 종식된 것으로 판명된다 할지라도, 2007년 12월 이후 그동안 무려 21개월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이었기 때문에, 이번 세계경제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 즉 ‘대공황 2.0’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아가 필자는 이번 세계경제 위기, 즉 ‘대공황 2.0’은 벌써 끝났기는커녕 여전히 초입 국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주요 국가 경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민간 실물 경제의 실질적 회복이 아니라 ‘대공황 2.0’ 이후 각국 정부가 수행한 금리 인하와 구제금융·통화증발과 경기부양(미국에서만 약 12조 달러로 추산)에 힘입은 금융체계의 일시적 안정화이고 자산 가격(주가와 부동산 가격) 거품 현상이다. 최근 경제지표의 호전이 이른바 ‘실적 개선’(이윤율 회복)에 기인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거의 전적으로 대량 실업과 임금 삭감, 착취 강화에 힘입은 것이다.
케인스주의적 개입이 자산 가격 거품을 낳아
최근 주요 국가에서 주가 폭등, 부동산 가격 폭등은 진정한 의미의 ‘실적 개선’, 즉 실물 경제의 회복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대량의 과잉유동성의 투기적 유입이 만들어 낸 거품이다. 실제로 주요 국가에서 이윤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기업 투자가 감소하거나 거의 늘어나지 않고, 실업률도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그 결과 가계소비도 줄거나 거의 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자산 가격 거품은 조만간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이와 함께 세계경제는 빠르면 올 가을, 늦어도 2010년 봄 전에 더블딥에 빠질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97~98년 세계경제 위기는 ‘닷컴’ 주식 거품으로 잠시 진정됐고, 이것이 터지면서 2001년 위기가 발발했는데, 이는 다시 그린스펀 거품이라 불리는 주택가격 거품으로 진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07년 들어 이 주택가격 거품이 터지면서 ‘대공황 2.0’이 도래했다. ‘대공황 2.0’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개입은 주가와 주택가격 거품을 다시 키웠을 뿐인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경제가 회복된 증거라고 착각하거나 강변한다.
실물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조건에서 현재와 같은 자산 가격 거품은 정부의 저금리 정책과 유동성 주입, 각종 경기부양책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2008년 하반기 이후 각국 정부가 집행한 천문학적인 팽창적 재정금융정책의 효과는 2009년 말 이후 소진될 것이다. 2009년 말 이후 각국 정부가 현재와 같은 초저금리 상태를 계속 유지하거나,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이나 구제금융을 실행하기는 어렵다. 각국 정부는 이미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악화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것들이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파장 때문에 금리 재인상과 세금 인상 등 각종 ‘출구전략’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8월 24일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대공황 2.0’ 이후 주요 국가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연 0.5퍼센트에서 연 0.75퍼센트로 인상했다. 각국 정부가 그동안 풀었던 돈줄을 죄게 되면, 더블딥은 필연적이다. 반면, 각국 정부가 더블딥을 우려하여 돈줄을 죄지 않으면,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다.
2008년 이후 각국 정부의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케인스주의적 개입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바로 이 때문에, 대공황 2.0을 초래한 근본 원인인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 저하, 전 세계적 과잉축적과 과잉생산, 글로벌 불균형과 양극화 문제 등은 거의 해소되지 않았다. 각국 정부의 케인스주의적 개입은 자산 가격 거품의 팽창으로 귀결돼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착시 현상을 낳았을 뿐이다. 게다가 각국 정부가 엄청난 규모로 케인스주의적 개입을 했지만, 그리고 오바마의 이른바 ‘변화’ 슬로건과는 정반대로, 케인스주의자들이 이번 ‘대공황 2.0’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던 신자유주의 금융화 성장 모델, 금융 헤게모니조차 여전히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예컨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본가들의 대표적 신조는 오늘날 “골드만삭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으로 대체됐다.
한국 경제 ‘회복’은 본질적으로 거품
‘대공황 2.0’은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거품의 붕괴와 함께 시작돼 세계 전체로 확산됐는데, 그 1차 더블딥 국면은 한국 또는 중국에서 자산 가격 거품이 터지면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2007년 ‘대공황 2.0’ 이후 주요 국가들에서 각종 자산 가격은, 최근 거품이 다시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고점에 비해 상당 폭 하락한 것에 반해서, 한국과 중국의 경우 주가와 주택가격은 일시적 하락 이후 급반등했다. 예컨대 미국의 주택가격은 2006년 고점 대비 30퍼센트 넘게 계속 하락한 데 반해, 한국의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최근 대부분 전고점을 돌파했다. ‘대공황 2.0’ 이후 각종 투기 규제를 강화했던 주요 국가들과 정반대로 종부세 무력화 등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던 ‘강부자’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이 이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최근 이른바 한국 경제의 회복이 본질적으로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기업 투자가 심각하게 감소하는데도 투기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은 급증하고 있는 현상에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은 올 들어 7월까지 사상 최대치인 22조 6천억 원 증가한 반면, 올 상반기 기업들의 실질 설비투자액(2005년 기준)은 37조 7천7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7조 2천6백57억 원에 비해 무려 9조 5천5백84억 원(20.2퍼센트) 감소했다. 우리 나라 가구당 평균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는 작년 1백39.9퍼센트에서 올해 1/4분기 1백42.3퍼센트로 증가했는데, 이는 미국의 경우 가계부채가 지난 6월까지 9개월 동안 8번이나 감소해 1991년 이래 가장 오랫동안 감소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세계경제의 일시적 반등은 상당 부분 중국 경제의 고성장에서 기인한 것이었는데, 이 또한 올 들어 중국 정부가 집행한 약 4조 위안(5천8백50억 달러)의 경기부양책과 올해 상반기에만 7조 3천7백억 위안(이는 전년도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액수인 동시에 동기 GDP의 45퍼센트에 해당된다)에 달했던 천문학적 신규 대출 증가가 만들어 낸 거품이었다. 실제로 이 대출 증가의 절반 이상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구입으로 지출됐다. 중국 정부가 이와 같은 규모의 경기부양과 신규 대출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이 경우 거품 붕괴는 필연적이다. 실제로 올 들어 64퍼센트나 폭등했던 중국 주가는 얼마 전 중국 정부가 신규 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3주 동안 14퍼센트나 폭락했다.
‘대공황 2.0’의 1차 더블딥은 10퍼센트에 육박하는 실업률과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 1조 달러에 달하는 부실 상업용부동산 대출, 역시 약 1조 달러로 추정되는 부실 소비자 대출(신용카드 대출,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등)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는 미국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대공황 2.0’ 기간에도 자산 가격 거품이 터지지 않고 도리어 증폭된 한국과 중국에서 먼저 시작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대공황 2.0’은 그 근본적 원인, 즉 이윤율의 장기 저하, 전 세계적 과잉축적과 과잉생산, 글로벌 불균형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때까지, 일시적·국지적 회복을 수반하면서도, 자산 가격 거품의 주기적인 팽창과 붕괴, 실물 경제 공황의 심화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