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인터뷰 ─ 일본은 어디로 :
‘격차사회’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변화의 열망을 보여 준 일본의 역사적 총선 결과
〈노동자 연대〉 구독
8월 말 총선에서 자민당이 대패하면서 이른바 ‘55년 체제’가 붕괴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치에서 “있을 수 없는 일”, “격동”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동아시아 역사 연구자 한규한과 본지 발행인 김인식이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를 만나 자민당의 패배 배경과 민주당의 성격과 정책 등을 들어 봤다. 한승동 선임기자는 그동안 일본의 정치ㆍ사회ㆍ경제ㆍ대외 정책 등에 대해 많은 글을 써 왔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전략을 분석한 《대한민국 걷어차기》(교양인)의 저자이다. [ ]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삽입한 것이다.
이번에 자민당이 역사적 참패를 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대중에게 아마 제일 피부에 와 닿은 것이 일본말로는 ‘격차사회’라는 것, 우리말로는 양극화 문제죠.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히 도입한 것에 따른 빈부격차 확대인데요. 일본 신문에 나온 유세 과정 반응들을 보면 민주당이 ‘아, 이거 우리가 확실히 이기겠다’ 하고 느낄 [정도였죠.] 가령 시골에 가 보면 아줌마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자기 자식들이 도쿄 같은 큰 도시에서 취업해서 일 잘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내려와서 하는 일도 없이 있다고 해요. 자민당 정책이 낳은 절망 속에 격차사회, 양극화에 따른 실업 문제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장 크게 피부에 와 닿은 게 아닌가 싶어요.
일본도 비정규직이 30퍼센트가 넘죠. 우리와 비슷해요. 얼마 전에 아키하바라에서 차 몰고 들어가서 칼을 휘두른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 출구 없는 막힌 사회에 대한 울분 같은 게 있죠. 특히 중하층 서민들 처지에서요.
예전에는 자민당 조직표가 살아 있었어요. 자민당은 원래 이권배분 정치이기 때문에 지역의 경우 지역 중소기업이라든가 건설 토목이라든가 지역 지자체 관리와 자민당 지구당 조직들이 뭉쳐서 서로 득이 되는 식으로 여론을 좌우하고 표를 좌우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이번에는 안 된 거예요. 자민당 하부조직 자체가 다 부서져 버린 거예요. 가령 중의원 4백80석 중에서 야당표가 개헌선 이상으로 간다든가 아니면 절반을 훨씬 넘어 정권이 교체될 위력을 발휘할 정도로 자민당이 완전히 소수로 전락할 조짐이 보이면서 몰렸다고 합니다. 아예 버린다는 거예요.
예전에 중소업체 같은 쪽이 양다리 걸치면서 어근버근할 때는 그래도 자민당이 다음에 또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하고 눈치를 보지만 이번에는 확연히 그걸 넘어서 버렸다는 거예요.
그 다음으로, 자민당이 1993년에 한 번 넘어졌잖아요. 비자금 문제 등등 해서요.
그때 신당 사키가케 등과 연립한 호소카와 비자민 연립 정권이 들어섰죠. 그게 한 1년밖에 못 갔어요. 그 뒤에 결국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를 총리로 세워 연립해서 자민당이 다시 대권을 잡고 1996년에 하시모토를 내세워서 자민당으로 다시 돌아갔잖아요.
자민당 체제는 ‘55년 체제’인데, ‘55년 체제’는 냉전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었던 거죠. 장기 일당 집권 체제였는데 냉전이 무너지면서 그 이데올로기 자체가 무너지니까 자민당이 휘청했고 그 다음에 부패 스캔들까지 겹쳐서 일시적으로 물러난 거죠. 그런데 그 뒤 하시모토 등이 나서서 다시 복권했는데, 그 후에 한 15년 버텨 온 거죠.
근데 장기적으로 보면 자민당은 이미 그때 깨졌고, 그 다음에는 거의 버텨 온 식으로 지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게 더는 땜질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죠. 어떻게 보면 민주당은 자민당과 이념상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강렬하게 자민당이 아닌 대체물[이 필요하다고,] 자민당으로는 한계가 왔다고 느끼며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한 거죠.
더욱이 이번에는 금융 공황도 큰 구실을 했죠. 사실 옛날에 DJ 정부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게 IMF 사태였듯이, 오바마도 이번에 금융 공황이 아니었으면 힘들었겠죠. 아무리 에드워드 케네디나 백인 일부 사회가 지지한다 한들 힘들었을 겁니다. 부시의 네오콘과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주 결정적으로 파탄나니까 대중이 변화를 바랐고 그래서 오바마가 됐듯이, 이번에 일본 민주당 압승도 다분히 경제 공황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식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피부에 와 닿았잖아요.
하토야마나 간 나오토나 계속 강조하는 것이 ‘미국이 더는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걸 보면 결국 이번 금융 공황을 일으킨 서브프라임모기지와 실물 경제의 불황이 민주당 압승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죠.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이익배분정치가 이번에 붕괴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자민당이 이익배분정치 시스템을 운영하지 못한 데는 이번 경제 위기가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죠. 원래 이익배분정치의 전제조건은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수출 잘돼서 계속 돈이 쌓일 때, 쉽게 얘기하면 쌓인 돈을 적당히 나눠 주면서 자기표를 만들었던 건데, 일본 경제 절정기가 1980년대 버블 경제 때 아닙니까. 그때는 록펠러 재단 빌딩도 사고 할 때고 일본이 미국을 다 사들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죠.
그런데 1980년대 버블이 냉전 붕괴와 거의 같은 국면에서 깨져 버렸어요. 그러면서 일본의 경제적 전성기는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전망 속에 저성장기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자민당의 이익배분정치라고 하는 게 고도성장을 계속 하는 엔진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인데, 장기불황기에 들어가면서 그런 식의 정치가 이미 어려워진 것이죠.
자민당이 55년 체제 붕괴 이후 근근이 버텨 온 측면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느 정도 주류 정치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는 것을 반영한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이 미국식 양당체제와 비슷한 정도의 안정성을 보일 거라고 보십니까?
사실 정치권에서 지금의 주역들 ― 오자와까지 [포함해서] 다들 ― 은 미국식 양당체제로 가는 걸 기대하고, 또 사실 그걸 목표로 선거제도도 고쳤고, 양당체제로 가는 쪽으로 얘기해 왔죠.
이번에 민주당 압승도 사실 다음을 어떻게 기약할지는 몰라요. 2005년에 고이즈미가 우정개혁을 내세워 압승했잖아요. 그런데 2년 뒤인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완전히 참패하거든요. 이게 왔다갔다 해요. 그러니까 겨우 2년 간격밖에 안됐는데 완전히 성격이 달랐어요.
이번에는 경제 문제도 있고 2007년의 영향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민주당이 압승을 하긴 했는데 …. 아마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으로 가지 않을까요.
미국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책에서 큰 차이는 없거든요. 미국만 그런 게 아니고 대개 다 그럴 거예요. 유럽은 조금은 다르겠지만, 하여튼 영국 노동당이나 보수당이나 격차가 없어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일본도 마찬가지로 어느 한 쪽으로 민심이 쏠렸다가 금방 실망하면 저쪽으로 가버리는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쨌든 지금 일본 주류 정치인들은 미국식 양당정치 체제를 바라죠. 우리 나라도 은근히 지금 한나라당이 그걸 시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에 민주당이 복지공약을 많이 내세웠고 대중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던 듯한데, 민주당이 이런 복지 공약을 지킬 수 있을까요?
민주당이 이번에 농촌 보조금을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고, 아동수당도 주겠다고 그러고, 돈 몇만 엔 씩 준다는 공약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결국은 재정 부담을 늘린 텐데요, GDP에서 차지하는 국가채무 비율이 1백80퍼센트라고 합니다. 1년 GDP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단 말이에요. 이것은 OECD 국가들, 선진국들의 부채 비율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일본이 재정 동원할 여지가 그만큼 없는 거죠. 복지와 연결되는 비용을 어디서 염출할 것인가. 여러 가지 감세정책이나 여러 가지 재정들을 잘 콘트롤해서 많이 남기겠다는데,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것으로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러지 않아도 일본 예산 중에 복지관련 예산이 26퍼센트로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국채 이자 대는 게 2위예요. 그게 일본 국가예산의 24퍼센트나 되요. 국가예산의 5분의 1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거예요. 세금 받아서 빚 갚는 데 쓰는 거라고요.
그래서 민주당이 지금 새로운 재원을 조달해서 과감하게 복지를 늘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의 조세 개혁으로 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은요?
아마 힘들지 않을까요. 소비세 같은 경우는 일본 서민들에게 전가되는 것인데, 하토야마 쪽은 소비세 늘리는 것에 부정적이거든요.
아마 민주당에서는 세금 늘리는 방법을 쓸 수 없을 겁니다.
대신에 민주당 하토야마 쪽이나 간 나오토 쪽이나, 주류 쪽 생각은 어쨌든 지금까지의 자민당, 특히 고이즈미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민영화 확대나 대기업 위주의 감세나 지원책에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겠다는 기본 정책은 있는 거 같습니다. 좀더 국가 개입 쪽으로 기운다든가, 복지도 그런 차원에서 아마 시장에 맡겨놓지는 않겠다는 그런 의지는 강한 것 같아요. 하토야마의 ‘우애’ 정치라고 하는 게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아요. 하토야마는 강자들의 자유경쟁에 완전히 맡겨서 하는 미국식, 월스트리트식의 시장 만능으로 가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대기업 위주의 지원이나 민영화 등은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요. 민영화 [등에서] 자민당과의 차이를 보이는 길은 그거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오자와도 하토야마도 오카다도 다 자민당 출신들이에요.
그런데 1993년에 자민당이 많이 깨지고 흔들렸죠. 그때 뛰쳐나와서 호소카와 정권을 만든 사람도 오자와예요. 오자와가 다나까파잖아요. 어떻게 보면 일본열도 개조론이라든가, 그 사람들이 말하는 개혁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가까운 거예요.
특히 1990년대 클린턴 신경제가 잘 나갈 때 유럽이나 일본 모두 미국을 모델로 생각했죠. 그게 나중에 새로운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어쨌든 당시엔 그게 정답 같았죠. 고이즈미 개혁이라는 것도 거기에 자극을 받은 것이고. 그래서 금융개혁을 본격화한 것이죠.
오자와도 그런 사람이었으나 뒤에 조금 바뀌어요. 알다시피 오자와는 선거전략에 능수능란하고 거기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죠. 아마 2005년에 고이즈미가 우정개혁 내세워 압승하고 2년 뒤에 패배했을 때, 오자와가 고이즈미식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에 대해서 반신자유주의라고 할까 하는 거를 선거용으로 많이 내걸었다고 해요.
그때부터, 그러니까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할 당시부터 격차사회 문제와 실업문제 등이 [쟁점이 됐습니다.] [고이즈미가] 개혁을 한다고 했는데 그 개혁이 서민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었죠. 2005∼2006년부터 경기가 조금 나아진다고 했는데, 좋아졌다는 게 대기업 위주로 수출기업에 좋아졌다는 것이지, 일반 서민은 일자리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소득이 늘어난 것도 아니어서 실망이 굉장히 컸죠.
그런 상황에서 2007년 참의원 선거 때 오자와가 ‘아, 고이즈미식 개혁으로는 안 된다’ 하면서 색깔만이라도 [반]신자유주의 성격을 부각하면서 어필했다고 하거든요.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큰 요인이 그거라고 보는데, 사실은 이번 중의원 선거도 그 연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민당은 2007년 참패한 무드를 바꿔서 어떤 식으로든 [전환(?)]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고, 민주당은 그 무드를 그대로 끌고 온 거예요.
그러면 오자와가 진정 신자유주의의 맹렬한 반대파냐, 그건 아니에요. 이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이 선거에 유리하느냐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선거 기술자’[라고 하는 거죠.] 어쨌든 선거 기술자가 이번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은 고이즈미식 신자유주의 개혁 정책으로는 하등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폭로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자민당의 패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건 분명히 맞죠. 그런데 그것은 양면인 거죠. 이번에는 1993년 실패보다 더 뼈아픈 실패일 수 있어요. 1993년의 실패는 자민당이 아직 여력이 남아 있을 때였어요. 더욱이 그때는 선거제도 자체가 소선거제가 아닌 중선거구제여서 한 선거구에서 다수를 뽑는데, 그때는 여당이 야당과 적당히 나눠 먹을 수 있는 체제였어요. 지금은 중의원 4백80석 중에서 3백 석이 소선거, 한 사람만 뽑아요. 나머지는 1백80석은 비례대표로 뽑는데, 말하자면 그 2백60여 석을 민주당이 차지해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자민당은 완전히 참패했어요. 그러니까 선거제도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는 말이죠.
유권자들이 1993년에는 ‘자민당이 좀 밉다. 부패하기도 하고. 그러니 좀 바꿔 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그게 확실히 강해졌어요. 자민당으로는 안 된다는 걸 유권자들이 확실히 표로 보여 준 겁니다. 동반당선이 아니고 내가 이 표를 던지면 어느 당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던진 겁니다. 확실히 선택한 겁니다.
그러니까 자민당으로서는 1993년 패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주 뼈아픈, 어떻게 보면 자민당이 영원히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을 정도로 참패한 거예요. 물론 앞으로 민주당이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요. [아무튼] 그때하고는 강도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어떤 정당입니까. 한국의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와 비교를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지지 기반이나 정책은 어떻습니까?
민주당은 잡색당이에요. 온갖 사람이 다 있어요. 주요 멤버들[하토야마, 오자와, 오카다 등]은 자민당 출신들이 많고 그 다음에 심지어 사회당 출신도 있고, 무소속 등 하여튼 잡색당이거든요.
근데 정강정책을 보면 자민당하고 차이가 큰 것 같지는 않아요.
자민당이 주장하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죠. 그러니까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이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같은 편이라고 내세우는 데 비해서 그렇지 않은 쪽은 배제나 타도할 대상이죠. 예컨대 북한이 그렇습니다. 북한은 완전히 배제 대상으로 삼았고, 일본 자민당 우파들은 중국공산당에 대해서도 굉장히 불신합니다.
그런데 하토야마의 우애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가치가 달라도 좋다, 체제가 달라도 좋다는 거죠. 공존하는 거라는 거죠. 공존공생. 그 사람의 아시아공동체라고 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하토야마는 일단 자유민주주의 체제냐 아니냐 그걸 따질 필요는 없다, 다른 체제라도 공존공생할 수 있다,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민당이나 민주당이나 멤버 구성으로 보면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반의 차이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하토야마 보면 알잖아요. 할아버지인 하토야마 이치로도 자민당 안에서 55년 체제를 만든 주역 중 하나죠. 그런데 그 사람은 당내에서는 막 반대[하는데도]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관철시킨 사람이에요. 어쨌든 하토야마는 귀족집안[출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증조부도 중의원 출신이고 다 정치 귀족들이죠.
그리고 지금 민주당의 물적 기반이 어찌 보면 하토야마 집안의 돈이에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것도 있고, 그 처가가 브릿지 스톤, 유명한 타이어 재벌 딸과 결혼했죠. 하토야마는 돈 방석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자본주의의 핵심 멤버 집안이죠.
다음에 또 하나의 지주라 할 수 있는 오자와 이치로도 마찬가지예요. 오자와 이치로도 대대로 정치집안 출신입니다. 간 나오토는 색깔이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해요. 간 나오토는 시민운동단체 출신이거든요. 관료나 정통 당료 출신은 아니고, 그래서 신선감이 있죠.
민주당은 어찌 보면 55년 체제에서 반대 세력으로서 다른 정당이 다 몰락해 버리니까 몰락한 찌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대안정당으로 등장한 것일 뿐인 거죠.
새로운 이념이나 새로운 정강정책을 가지고 등장한 게 아니라 자민당이라고 하는 일당독재체제에 대응세력으로서 이합집산 하다가 뭉친 거예요.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동요하니까, 정권교체 가능성이 생기니까 잡색들이 다 모였죠.
민주당은 외교정책 관련해서 ‘탈미입아(脫美入亞)’를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탈미입아하면 좋긴 한데. 탈미입아는 아시겠지만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변형한 말인데 이번에 하토야마가 그런 얘기 했지 않습니까. 오바마와 전화통화에서요. ‘미일동맹이 기축이다’고요. 미일동맹이 기축이라고 하는 것은 자민당 이래 죽 들어 온 얘기죠. 즉 미일동맹이란 게 없으면 안 되는 죽고사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색깔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굉장히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예컨대 2000년 10월에 조명록 북한 차수가 워싱턴에 가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고, 거의 정상 방문도 이뤄질 듯한 분위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10월이고 11월에 미국 대선이 있었잖아요. 그때 엘 고어하고 부시하고 붙어서, 사실은 엘 고어가 표 더 많이 얻었죠. 대법원이 그냥 부시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플로리다 선거인단이] 부시 쪽으로 가버렸잖아요.
그때 부시가 아니고 엘 고어가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을 거라고 난 항상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엘 고어가 됐다면 클린턴이 마지막에 시도한 북한과 국교정상화는 달성됐을 가능성이 크죠. 그랬다면 북한 핵문제라는 거는 물론 없고, 미사일 문제도 없고, 미국과 북한이 국교정상화됐으면 남북관계도 획기적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2002년에 노무현 정권으로 정권이 이어졌고 그래서 뭔가 남북 간에 굉장한 변화가 일어났을 텐데, 부시가 되는 바람에, 클린턴의 모든 정책을 무로 돌렸잖아요. 1994년 했던 제네바 합의라든가 이런 게 다 없어졌죠. 미국이 다 깬 거죠.
미일동맹도 민주당이나 자민당이 큰 차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오카다 가쓰야의 생각도 그렇고 하토야마도 그렇고 미국 일방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이 거든요. 얼마나 실제로 그것이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현안 문제들이 있어요. 오끼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라든가 하는 거죠. 미국하고 자민당하고 짝짜꿍해서, 후텐마 기지 반대가 많으니까 옮기는데, 어디로 옮기느냐, 같은 오끼나와의 헤노코 연안으로 옮기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하토야마 같은 이들이 보기에 눈 감고 아웅하는 거죠.
오끼나와 사람들은 자기들이 일본 본토에 완전히 점령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은 피점령국이라는 의식이 강해요.
민원이 끊임없이 올라오니까 어떤 식으로든 그 미군기지 반대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미군기지를 줄이라고 요구하는데, 지금 자민당이 얘기하는 것은 조삼모사 식이지요. 요쪽에 있는 것을 저리로 하는 식이죠. 물론 그 속에서 해병대 8천 명을 괌으로 이전하는 문제들도 있지만, 사실 그것조차 6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일본이 다 대기로 돼 있다고요.
민주당에서는 당연히 반대하죠. 실제로 기지 이전 비용[60억 달러]을 왜 우리가 대느냐.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평택 이전 비용을 다 우리가 대고 있죠. 우리도 원칙적으로 지원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미국이 다 자기가 필요해서 주둔하고 있는 건데, 우리가 돈을 대주고 있거든요.
민주당은 그런 문제에 문제제기를 하는 겁니다. 사실 거기서 돈만 줄여도 자기들이 말한 재정 부족분의 상당분을 메울 수 있을 겁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거든요. 몇천억 엔씩 일본 정부에서 불법적으로 다 대주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게 뭐냐면, 민주당이 그런 요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자민당과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내가 볼 때 미국의 몰락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어요. 미국 일극체제가 끝난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민당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매달리는 거였어요.
외교도 미국 중심이고 안보 정책도 거의 미국에 [의존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마 기지 같은 경우는 워싱턴주에 있던 [미국] 1군단이 아예 일본에 와서 지휘부를 만든다거나 하는, 거의 양국통합체제로 가는 거였단 말이죠.
그런데 하토야마나 민주당이 볼 때는 그건 이미 시효가 다 돼가는 낡은 정책이죠. 미국 일극체제가 이미 무너진 거예요. 상징적인 게 완전히 수렁에 빠진 이라크죠. 아프가니스탄에도 개입했지만 그렇고, 그 다음에 경제적으로도 [그렇죠.] 서브프라임모기지 이후로 급처방했다지만 앞으로 낙관할 수 없고, 일단 미국 경제가 꺾인 건 사실이거든요. 더욱이 지금 일본이 수출을 제일 많이 하는 데가 미국이 아닙니다. 중국입니다.
자민당이 주도할 때는 중국이 어떻게든 분열하길 바랐죠. 일본 잡지나 책을 보면 중국이 이렇게 분열할 거다 하는 분석이 무지 많아요. 사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죠. 중국이 다시 일어설 수 없기를 바라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중국은 일어서 버린 데다 앞으로 점점 더 가속도로 붙을 수밖에 없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단 말이에요. 동아시아에서 일본 같은 경우, 개인이 이사 가듯이 국토를 떼어 미국 옆에 갖다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기서 살아야 한단 말이에요. 이건 현실이죠. 현실론으로 돌아서게 돼 있죠. 중국을 실세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토야마가 말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요.
민주당이 지금 당장 그 정책[동아시아 공동체]을 실행에 옮기거나 옮길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앞으로 세월이 걸리겠지만, 기본 과정은 미국의 일국체제는 끝났으니 현실적으로 중국을 실세로 인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게 될 거라고 봐요.
민주당이 미국과의 일방적인 관계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한 얘기는 바로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사사건건 미국에 반대하고 그러진 않겠죠. 하토야마와 오바마가 통화했듯이 ‘기축은 미일동맹이다’, 왜냐하면 이행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동안에는 미국을 끌어안고 가는 게 좋다는 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중국과 거래한다든가, 어차피 아시아 일원으로서 자기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작업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거죠.
그에 비해 자민당은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이제까지 관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는 일본에게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죠. 민주당의 그런 정책이 현명한 거죠. 물론 그런 정책이 얼마나 오래가고 변질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하토야마나 간 나오토의 아시아 안보정책이라든가 아시아공동체 구상 등은 굉장히 전향적이고 잘되면 일본한테도 좋고, 우리한테도 굉장한 변화가 될 수 있어요.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좋아지면 ―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라는 거죠. 이명박 정권은 반대할 거예요, 좋아지지 못하도록.
어쨌든 만일에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대미관계가 자민당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고 아시아 중시에 따라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다면 북일 관계도 바뀌겠죠. 이게 자민당과 분명히 대비됩니다. 자민당은 북한을 고립시켜서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을 이용하는 게 정책의 기본이란 말이에요. 그러러면 구실이 있어야죠. 핵도 있고 미사일도 있지만 제일 핵심은 납치예요. 일본인 납치만큼 국민들 감정을 자극하는 게 없어요.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가 전격적으로 평양선언을 하고 국교정상화하고 돈도 대주겠다고 평양선언에서 문구로 다 정해 놓았는데 그때 관방부장관으로 따라간 아베 신조가 [망쳤죠.] 김정일이 ‘고백하겠다. 우리가 한 거다. 잘못했다. 13명 데리고 와서 8명 죽었다. 5명 돌려주겠다.’ 이렇게 고백하고 잘못했고 책임자 처벌하겠다고 했는데도, 사실은 그 정도면 잘해 보자는 거였거든요. 일본만 오케이 했으면 잘될 수 있었죠.
근데 아베하고 딱 돌아오자마자 일본 열도는 완전히 광적인 반북 캠페인 속에 휘몰렸어요. 물론 북한이 잘못했지만, 일본은 심했죠. 그 후 무려 몇 년입니까? 7년 동안 계속 반북 캠페인하고 있어요. 그 반북 캠페인의 요체는, 2차대전이나 식민지 시절 일제 침략 이후의 자기들의 위치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꿔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히 상황을 뒤집는데 유리한 호재였죠. 일본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니까 자민당 정권 유지에도 도움이 됐단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 보면 이번의 민주당 압승은 [반북 캠페인의] 약발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어요. 약발이 떨어진다는 조짐은 여러 군데 있었어요. 그들이 납치문제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게 뭐냐면 북한이 분명히 13명을 납치했고 5명 돌려 준다고 했는데, 강경파 쪽에서는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납치됐고, 8명이 죽었다고 하지만 그 8명이 살아있다’고 했죠. 살아있을 리가 없죠. 나중에 DNA 검사까지 해서 [북한이 뼈를 보냈는데] 그걸 가짜 뼈라고 하고, 관쪽의 검사방법이 정당한 것도 아니어서 일본 쪽 주장이 타당성이 없었다고요. 그런데도 일본 여론은 계속 맹목적으로 했잖아요. 죽었다는 8명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최근에는 유가족들조차도 살아 있다는 것을 안 믿기 시작했다고요. 외고집이 한계에 도달한 거죠.
그러니까 일본의 대북정책이라는 게 사실 아무것도 없어요. 계속 제재 가하고 분단 상황을 이용하고 위협론을 제기해서 자기 정권 유지하고, 특히 자위대라든가 이런 보통국가 일본, 보통 군대를 가진 일본으로 헌법개정하는 데 계속 이용해 먹었잖아요. 그게 이제 한계에 왔다고 할 수 있어요.
워낙 7∼8년 동안 거짓말에 가까운 열광을 보냈기 때문에 민주당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 겁니다. 잘못하면 표를 확 잃을 수가 있어요. 더욱이 불안한 게 한국에서 지금 노무현이나 DJ처럼 북한하고 어떻게 해 보라고 권유하는 정권이 아니라 결단코 안 된다고 반대하는 정권이 있기 때문에 오카다 가쓰야 외상이나 하토야마는 우선 한국에 접근할 겁니다. 미일동맹이 기축으로 남아 있다고 했듯이 한일관계도 이쪽[남한]을 먼저 하고 북한하고 접근하겠죠.
그런데 아까 그 일본이 미국 일극체제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정책에서 좀 벗어나겠다, 아시아 중시로 가겠다, 일본의 독자노선을 추구하겠다는 민주당 정책은 장기적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전환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결과적으로 아까 말한 자민당이 그 토대 위에서 자기 정권을 유지해 왔던, 그 토대 자체가 허물어질 수가 있어요. 대북관계, 남북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정권에서는 이명박 정권은 떨떠름하고 가능한 이 기조를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이는 길어봐야 3년 남짓이고 일본이 민주당으로 정권교체한 것은 남한 정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가 있죠.
오자와 같은 경우 미국과의 대등과 동시에 자위대 해외파병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대등관계라는 게 실질적이라면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부활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민주당이 독자성을 강화하면 일본 내셔널리즘 대두가 우려된다는 그런 말씀인 것 같은데, 그게 꼭 그리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개헌하자는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이 호헌론자가 아닙니다. 하토야마도 자위대가 군대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어마어마한 전력을 가진 군대다, 그럼 실체로 인정하자고 말하는 거죠. 대신에 민주당은 자민당과는 조금 다르다고 하기 위해 하나를 끼워 넣었는데, 해외파병이나 이런 것들도 미국과만 짝짜꿍해서 미국 요구에 따라 파병하는 거는 안 된다고 하는 거죠. 하지만 평화유지 문제는 개입하겠다고 하거든요. 군대도 필요하면 보내고요.
대신에 유엔의 이름으로 하자는 거예요. 일본 안보주권의 상당 부분을 유엔에 이양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안전장치를 강화해서 일본 내셔널리즘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안전장치를 두는 거예요. 오자와의 얘기도 똑같아요. 지금 인도양에 [일본] 수송선이 가서 기름을 공급해 주고 있잖아요. 비군사 활동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작전에 동원되는 건데, 그게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일본 자위대를 보냈단 말이에요. 민주당은 거기에 반대해야죠. 당연히 그걸 잘한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앞으로 그런 활동을 일체 안 할 거냐. 그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미국이 하자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유엔 결의에서 유엔이 결정하면 거기에 따르겠다, 말하자면 좀더 국제적인 공조 체제 속에서 일본은 움직이겠다는 것이고요.
헌법 9조는 군대 보유도 금하고, 교전권도 금하고, 집단 자위권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전쟁 형태를 할 수 없게 돼 있어요. 군대를 갖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현실과는 너무 유리돼 있죠. 그래서 민주당은 그 허구를 없애고 실체화하는 대신에 주변에 아까 말한 내셔널리즘에 대한 우려가 있으니까 그런 안보 조건에 일부 양보하겠다, 국제연합과 하나의 양보를 해서 좀더 안전장치를 배가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런 정도의 것인데 그건 아주 실속 있는 계산의 결과일 수도 있고, 앞으로 미국에 따라 붙어가는 게 유리하지 않다는 계산도 있죠.
일본 내셔널리즘, 일본 우파들은 좀 다를지 모르겠어요. 지금 자민당 주류들의 꿈은 ― 옛날에 기시 노부스케도 그랬고 ― 사실 무식하게 말하자면 대동아공영권 부활이거든요. 그러니까 영토적으로 안 된다면 경제적으로라도. 사실상 어느 정도 달성했죠. 동남아시아·조선반도·만주까지 아우르는 대국으로서 옛 일본 영광을 되찾는 거예요.
이번에 몇 가지 사건을 보면, 다모가미 도시오 일본 공군 막료장[공군참모총장]이 자민당으로 넘어와 당선해 떠들다가 짤렸는데, 그 사나이 논문을 보면 과거 일제시대 일본의 지배는 정당했고, [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 전쟁이었고, 일본 때문에 한국이 잘살고 아시아도 다 잘살게 되지 않았느냐, 일본은 계속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런 사람들이 출세하게 돼 있고, 자민당 안에서도 다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요.
그런 사람들은 지금은 자기들 힘이 절대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에 미국하고 딱 붙어가지고 미국을 최대한 자기 입장에서 이용하는 거죠.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해서 동아시아에서 강자로서 자기의 위치를 구하는 거였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점점 불가능해져요. 중국이 저렇게 막강해지고 있고, 한국도 예전처럼 그렇게 맘대로 다룰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죠. 민주당 정책은 오히려 그걸 현실화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강한 일본을 지향하는 건 사실이되 말도 안 되는 과거로의 복귀라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렇게 하지 않고 좀더 현실화하는 게 민주당 생각 아닌가 그런 느낌도 있어요.
그렇게 할 때 현실 정치에 있어서는 자민당보다는 훨씬 더 합리적이고 온건하고 그런 색채로 나타나게 되겠죠. 그런데 얼마 전에 윤건차 교수에게도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윤건차 교수는 “[민주당에] 별로 기대할 거 없다”고 해요. 그 사람이 65년 동안 자이니치 2세로 살아오면서 일본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강해서 ‘일본은 조선 사람이나 조선이라는 나라를 단 한 번도 위한 적이 없다. 결국 배신할 거다. 민주당이 된다 해서 별 변화가 없다.’ 그렇게 믿고 있더라고요.
제 생각은 아까 말했죠. 근본에서 차이는 없다 하더라도 중앙부에서 나비가 날개짓 하면 변방에 있는 우리는 폭풍이 분다고요. 그런 정도의 변화가 있어요. 워싱턴에서 약간의 정책 차이나 정권교체라는 게 변방인 한반도에서는 엄청난 폭풍으로 몰아칠 수 있어요. 남북정책이라는 게 정권교체 하나로 180도 달라져 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근본적 변화가 아닐지라도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그리고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거죠.]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있고 역학관계가 바뀔 수도 있어요. 자민당이 민주당으로 바뀌어 봤자 별 거 아니다, 이렇게 해 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독도나 과거사 문제 등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나오겠죠.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까는 모르겠는데, 예컨대 과거사 문제는 가능한 문제가 안 되도록 애쓸 겁니다.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는 직접적 후원자들이 거의 다 자민당 간부들이에요. 아소 다로 자체가 후원자라고요. 그에 비해서 민주당은 그게 현안으로 부각되는 거를 아마 피하려 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 역사관 ― 자민당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닌데 ― 이 바뀌는 건 아니고, 현실적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해 봐야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생각하겠죠.] 자민당은 그렇게 해서 나오는 마찰음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했을지 모르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자기들에게 불리해요. 독도문제 같은 것들도 기본 자세는 당연히 바꾸지 않겠죠. 영토문제는 잘못 다루면 정권이 날라가 버리죠. 자민당 같은 경우 백서로 자기네 영토라고 명시를 해 놨는데 [민주당이] 갑자기 아니라고 하면 매국노로 찍히니까 갑자기 바뀌진 않겠죠.
대신에 그와 관련된 발언을 가능한 안 하겠죠. 수면 아래 잠긴 문제로 만들려 할 것이고. 역사교과서 문제도 내가 볼 때는 [한일]역사공동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을 자민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어요. 공동교과서라는 게 사실 기본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은 아니거든요. 근데 어쨌든 공동교과서를 계속 논의하는 한은 문제가 날카롭게 부딪히지는 않아요. 그런다고 해서 결코 영토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국제관계에서 영토문제는 결국 힘 관계로 결판이 나지 합의에 의해서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죠.
어쨌든 현실적으로 어떤 간 큰 정권도 독도는 우리 영토 아니라고 선언할 리는 없고, 대신에 드러나지 않게 쉬쉬하겠죠. 야스쿠니 문제는 대체 시설을 만들 거예요. 대체 시설이라는 거는 천황을 위해 죽었다는 형식이 아니고 그냥 한 시기에 전쟁이 나서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을 위문한다는 그런 식으로 정치색을 조금 퇴색시킨 것을 만들어 해소하려 할 것이고, 고이즈미나 나카소네처럼 가서 고개 숙이고 하는 짓은 안 할 거예요. 그게 또 아시아공동체 논리와 부합하죠.
결국은 일본의 피해의식인데, 제가 볼 때 일본 지배층이 절대로 현명하지도 않고 어른스럽지도 않고 유치해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방법은 그런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뭐 잘못했다고 고개 숙이는 게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면 되거든요. 빌리 브란트까지만 하는 거예요. 하다못해 일본 총리가 와서 제암리 교회나 금산이나 이런 데서 의병 전쟁 때 잘못했다고 무릎꿇으면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리고 일본을 칭송할 거예요. 일본을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못하잖아요. 왜 못하겠어요. 딱 하나의 답이 있어요. [일본 지배층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은] 천황제 때문이에요. 천황은 일본의 정신구조에서 절대적 가치예요. 구심점이죠. 헌법상으로는, 상징 천황제라는 말은 안 쓰지만, 내용상으로는 상징 천황제입니다. 옛날 히로이토 천황이 가지고 있던 권한의 상당 부분을 제한했지만 그래도 일본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해 놨거든요. 세련된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천황제는 그대로 존속한 것입니다.
미국이 존속시켰죠. 이용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천황 하나만 굴복시키면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온다는 것을 미국이 알았기 때문이죠. 근데 천황이 한 번도 자기들이 전쟁 잘못했다고 명시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어요. 우리 힘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거니 먼 앞날을 위해 참자고 하지, 이런 전쟁이 정말 잘못했고 이웃에 나쁜 짓을 했다고 인정한 적이 없어요. 무라야마나 이런 사람들이 그나마 종전 50년 돼가지고 했는데 그때도 그게 무라야마니까 가능했죠. 그때가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1995년에 종전 50주년 기념해 가지고 국회결의로 하려 했는데, 자민당이 반대해서 국회결의는 안 되고 총리 담화로 대체했잖아요. 총리 담화문이라는 게 한때 그런 불행한 결과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는 정도로 끝났단 말이죠. 근데 그것도 천황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아랫것들이 그렇게 하는 것인 거죠.
천황은 무오류의 절대적인 존재예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말을 못하는 겁니다. 그걸 하면 일본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국체라는 것인데, 2차대전 때 일본이 항복 조건 중에 제1의 조건이 국체호지예요. 그러니까 천황제 유지죠. 결국 관철됐죠. 미국도 그것을 알면서 살려 줬죠. 그러니까 일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잘못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윤건차 교수도 계속 주장하는 게 모든 문제, 모든 악의 근원은 천황제다 [하는 거죠.] 일본은 천황제를 없애지 않는 한은 어른이 되지 않을 거다. 책임있는 존재로서 그런 게 없어요.
일본 사민당이나 공산당의 성적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미미하죠. 사민당은 ― 옛날 사회당은 ― 냉전 붕괴로 몰락했어요.
또 자민당과 연립하면서 사회당은 완전 몰락해 버렸죠. 나중에 이름마저 유지하기 힘드니까 지금 사회민주당으로 있잖아요. 1980년대 자민당이 리쿠르트 부패 스캔들 터지고 할 때 유권자들이 대안 정당으로 생각했던 게 사회당이었어요. 그때 당수가 여성인 도이 다까꼬였는데, ‘마돈나 바람’이라고 해서 사회당이 엄청나게 성장을 했어요. 그게 끝이었어요. 그 이후로 급진직하로 몰락인데, 1993년도에 자민당 정권이 붕괴하고 호소카와 정권 다음 1년 뒤에, 자민당이 무라야마를 앞세워서 사회당과 연립 정권했는데, 그 후로 사회당은 사회당으로서 존립 이유가 없어진 거예요. 당연하죠. 대안 정당으로 기능했던 사회당이 자민당하고 연립해 버렸으니까. 천황제 문제나 미일동맹 문제나 야스쿠니 문제나 다 자민당과 차별성이 없어진 거죠. 그러니 사회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거죠. 그래서 완전히 몰락했죠. 지금은 중의원 의석이 7석밖에 안 되요.
공산당은 지역 순수 조직으로서 보면 아주 강해요. 점성이 굉장히 강해요. 어떤 점에서는 공명당하고 비슷해요. 공명당은 20석을 얻었는데 소선거구에서 직접 선출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전부 비례대표로 정당투표로 당선한 사람들이에요. 조직표죠. 공산당도 마찬가지에요. 공산당도 9석인가 그런데 직접 선출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공명당은 일련정종, 이치렌 ― 창가학회 남묘호랑개교라고 한국 남부에 가면 굉장한 위세를 떨치고 있어요 ― 그러니까 일종의 불교정당인데요. 공명당이 왜 자민당한테 중요하냐면 도쿄 같은 데서 소선거구 선거할 때 공명당표가 밀어주지 않으면 자민당 의원이 당선한다는 보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 정도로 자민당에게는 보조 세력으로서 아주 중요한 세력인 것이죠. 그래서 계속 연립을 시킨 것이죠. 참의원에서 의석수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명당표는 확실한 표예요. 종교적 신앙에 따라가기 때문에 정당 정책이 바뀌고 이런 데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지지표죠. 그에 못지 않게 공산당표가 그래요. 공산당이 절대로 집권할 수는 없지만 지역표가 굉장히 강한데 지역에서 공산당이 굉장히 성실해요. 못사는 사람들 도와주는 데 앞장서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에요. 종교 조직에 버금갈 정도의 순수성이 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도 흔들리지 않고 투표해요. 불행하게도 그 범위는 아주 제한돼 있죠. 지역조직으로서 건재한 거죠.
최근 공산당이 당세를 상당히 확장했다는 소식도 있던데요.
《게공선》 ― 1920년대 처음 나온 소설 ― 이 꽤 인기가 있었는데, 《게공선》이 다시 나온 시점이 아까 말한 아키하바라 난동사건과 시점이 일치해요. 일본 젊은이들에게 출구가 없으니까 옛날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자본론》은 어려우니까 《자본론》을 해설하는 책들이 지금 막 팔리잖아요.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죠.
일본 공산당 세가 늘어나는 것은 이런 것을 반영하는 거죠. 이념적으로 뭔가 자각이라고 할까 그런 게 분명히 있는 거죠. 전후 일본이 잘 나간, 한 반세기 동안 일자리 걱정 안 하고 굶을 걱정 안 하고 생각없이 [지냈는데], 최근에 와서 기본적으로 내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그런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공산당이 갑자기 세가 확 팽창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전성기를 지나 몰락하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그게 몇 년 안에 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인데다, 또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본은 아직도 2차대전 이후의 그 자본주의 체제의 큰 수혜자죠. 사실 우리하고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죠. 우리는 패전국도 아닌데 나라가 동강이 나고 전쟁까지 했지만,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독일과 더불어 가장 성공했잖아요.
이 체제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는 한은 그 혜택을 계속 누릴 것이고, 그 영광은 비록 노을이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요. 일본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여전히 규모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소득수준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은 편이죠. 1960년대 미일 안보투쟁 때 격렬한 게 있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 순수 계급투쟁과는 거리가 멀었죠. 어쨌든 그런 불만은 일본의 고도성장에 의해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반대 세력이 없어져 버렸잖아요. 사람이 배가 부르면 만족하고 순화되는 거죠.
일본은 국가 목표가 없어져 버렸어요. 한때는 미국을 따라잡고 유럽을 따라잡는다는 것이 국가 목표였는데 그마저도 어느 정도 달성되고 나니 목표가 없어진 거죠. 일본 우파들이 제일 우려하고 한국을 부러워하는 게 ‘통일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고 군대가 있어서 그나마 젊은 장교들 머리에 집어 넣어가지고 뭔가 만들어 내는데, 일본은 평화나 번영에 중독된 젊은이들만 남았다.’ 우파들 생각은 그런 거예요.
최근에 와서 뭔가 일이 일어나니까 중하층 서민 사이에서는 분명 변화가 있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은 길게 이어질 거고 단기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돼 가는 거 아닌가요? 우리도 통일이고 나발이고 북한이 굶어죽든 말든 우리와 상관없는 걸로 대충 그런 쪽으로 가기 쉽고, 계급의식이라는 것도 그런 말하면 거의 덜떨어진 사람처럼 돼 버리잖아요. 뭔가 19세기쯤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요.
일본은 2000년대 이전의 한국만큼도 진보 쪽에서 전진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인지요?
그렇죠. 한국은 전체적으로 일본보다 훨씬 역동적인 사회입니다. 일본은 죽은 사회예요. 움직임이 없어요. 고요해요. 그래서 이번에 이 총선은 정말 대단한 사건입니다. 이거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죠. 굉장한 변화가 일어난 거죠. 격동이에요. 〈아사히 신문〉도 보면 제목이 격동이에요. 윤건차 선생께 물어봤는데 당신이 65년 살아오면서 정치적 변동으로서 지난 총선만큼의 변동이 있었냐. 없었다. 그 충격이 어떤 식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충격이죠. 지금 당장은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예측을 하지만 예측 못할 사태가 올 수도 있어요. 어떤 식으로 발전할 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개번 맥코맥 교수 같은 사람은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 등에서 일본 시민들의 역량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한 바가 있었는데요.
맥코맥 교수야 부인이 일본 사람이고 일본말도 좀 하고, 이 사람이 사귀는 일본인 친구들이 9조를 지키는 모임이라든가 9조 수호 모임에 [많죠]. 여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와다 하루키나 오에 겐자부로 같은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이라 해서 반전평화하던 사람들이 모여 있죠. 무라야마 [전] 수상도 그쪽이고요.
그게 힘을 발휘하는 건 있어요. 핵 알레르기 때문에. 히로시마나 나가사끼의 경험이라는 게 굉장한 공포죠. 그래서 개헌하게 되면 다시 전쟁하게 되는 나라로 가게 된다는 광범한 국민적 거부감이 있어요. 9조 지키는 반대 세력들이 있기 때문에 힘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일본의 반전 무드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요. 왜냐하면 희한하게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뒤바뀐 그런 게 있죠. 히로시마평화공원이나 나가사키, 평화축제 가 보면 우리는 금방 느낄 수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걸 느끼지 못해요.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 자신을 피해자로 설정해 놓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이 한때 식민 통치를 했고, 아시아를 침략했고, 난징 사건을 일으켰다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자기들이 원폭 피해자고 도쿄 대공습 피해자고 그런 것만 기억하는 거예요. 그렇게 기억하도록 만들었죠.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일본 사람들이 오랫동안 평화 시기에 누려온 그 덕택에 고도성장을 하면서 성공했다는 그게 있기 때문에 헌법개정해서 전쟁을 하는 보통국가, 자위대를 일본 국군으로 만드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죠. 자민당이 개헌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게, 장담을 못해요.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데 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강행하지 못하고 분위기를 만들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맥코맥 교수가 한 말이 맞죠. 호락호락하게 이 체제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에 사태가 계속 나빠져서 민주당으로 바꿔 봤는데 별 볼일 없고 경제가 더 나빠지고 하면 전혀 다른 사태가 생길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천황제가 굉장히 무서운 거죠. 옛날에도 젊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결국 도조 히데키 군부와 결합시켜서 전쟁으로 가는 것에 결국 다 천황이 끼어 있어요. 전쟁하고, 쿠데타하고, 암살하고 하는 것도 다 천황 이름으로 한다고요. 절대 무오류의 천황이 어디로 가자 하면 일본은 일거에 아무런 제지 세력도 없이 다 쏠려 간다는 것 아니에요.
이런 극단적 위험은 지금까지의 세계 체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뭔가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섰을 때 일본 내셔널리즘이 반등할 때 대략 천황이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일본은 맹목적으로 천황을 따라갈 수 있다는 거죠. 이성적으로 그걸 저지할 사회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산당, 사민당 포함해서 천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정당이 없어요. 미일동맹도 대부분 인정하고. 옛날에 그런 걸 인정하지 않던 시절의 사회당 안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식민지인가 아닌가 그런 논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요.
시민운동 진영과 민주당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자민당보다는 확실히 관계가 있죠. 지금 간 나오토도 시민운동 출신이고 옛날 사키가케나 신생당이나 이런 쪽도 연계돼 있고. 그런데 일본은 우리 나라와 굉장히 달라요. 우리 시민운동은 기본적으로 정치색이 강하고 역동적인데, 중앙에서 어떤 협의체를 만들면 딱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있죠. 일본은 비정치적 생활밀착형, 일종의 소비자운동 단체들과 비슷해요. 일본 시민단체가 10만 개도 넘고, 아주 구체적인 현안을 다뤄요. 자기생활 개선에서부터 베트남 난민 도와 주는 거 등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탄탄해요. 생활밀착형이고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정치적 변화에 흔들리지 않은 데 비해서, 그게 하나의 힘으로 결집해서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거의 무용한, 절대로 안 되는 그런 형식이죠.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는 유권자들의 변화로 나타날 수 있을지는 몰라요. 이제까지는 그렇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민주당이 이번에 이렇게 된 데는 분명히 하층표가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고 봐야죠.
노조 ― 렌고라든가 교직원노조 ― 들이 옛날에는 사회당 쪽하고 가까웠지만 지금은 사회당이 몰락했으니까 어쨌든 민주당하고 가까울 겁니다. 양당체제적 성격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재야나 시민단체들은 일단은 민주당 쪽으로 몰리겠죠. 그런데 옛날의 사회당과 노조들의 밀접한 연계를 현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 같으면 그게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데, 현재 민주당은 모르겠어요.
일본 진보세력의 성장 가능성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실제로 없어요. 일본은 예전의 우리 낙천운동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도 그렇게 해 봤는데 실제 효과를 내지는 못했어요. 아까 말했듯이 전체 합의에 의해서 중앙부에서 결성되고 중앙부에서 결정한 것을 하부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하나의 정치적 결집체로서 형성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아까 말했듯이 뿌리가 깊지만, 특히 정치적 사안에 대해 동원하고 하는 것은 없어요. 일본은 생협 같은 것이 굉장히 발달돼 있어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발달돼 있어요. 유기농 문제 같은 것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하는데,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그런 것들은 잘 안되고 정치적 동원 세력으로서는 쉽게 잘되잖아요.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를 떠나서 이런 것은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는 거죠.
우리는 근대라고 했을 때의 미완의 근대 과제를 너무나 많이 안고 있고, 일본은 나름대로 달성한 게 많이 있죠. 일본 우파는 우리의 결함에서 비롯한 다이내미즘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거꾸로 보면 그만큼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거죠.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 인구구성의 변화 때문에 자민당 우파들이 위기 의식을 느낄 만하죠. 일본으로서는 정점에 와 있으니까 내려갈 일이 훤히 보이니까. 사실 일본이 극도로 올라와 있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게 아니죠. 동아시아에서 일본만이 저렇게 특출하게 된 것은 메이지 이후 중국 몰락, 조선 몰락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 서구가 동아시아를 침탈할 때 일본을 파트너로 삼아서 엄청나게 키워 준 것인데, 냉전 때도 완전히 교두보였으니까요. 그런 상태가 자연 상태는 아닌 것이죠. 지난 2천 년을 봐도 일본이 저렇게 올라간 적은 없죠. 일본의 몰락, ― 완전히 망한다는 게 아니라 ― 상대적 지위 격하는 정상화되는 것입니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올라가고, 조선도 본래 자리를 찾는 것이고 일본은 너무 극단적으로 올라갔던 것이 내려오고 그게 정상화, 균형화하는 거죠.
일본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죠. 자신의 특권 지위가 하락하는 것에 초조해하고, 그래서 일본 우파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고, 천황의 무오류를 주장하고, 사과하지도 않고, 미국의 힘을 빌려서 자기의 절대적 지위를 유지하려 하고. 그런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도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한 것이죠.
우리 우파들은 일본 우파를 너무나 부러워하고 그런 지위를 갖길 꿈꾸지만 그것도 해답은 아니죠. 일본과 똑같은 아류 일본이 되고자 하는데, 북한은 우리 지위를 갉아먹는 짐으로만 여기고, 스스로 무너지면 적당히 해서 흡수통합이나 할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이죠.
녹취 한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