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2009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올해 성평등 순위는 전체 백 서른 네 나라 중 115위로,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래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경제 참여·기회(113위), 유사 직업 임금 평등(109위) 등이 모두 최하위권이다. 남녀 성 격차지수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8년 한국 여성의 83.5퍼센트가 대학에 가고, 여성의 70퍼센트 가량이 임금노동에 종사하지만 여전히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는 여성의 삶을 더 후퇴시켰다. 남성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특히 여성들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졌다. 올해 8월 고용동향을 보면, 남성 취업자수는 6월부터 지난해 같은 달보다 증가했지만 여성은 여전히 감소세다.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남성의 갑절이나 된다.
50대 여성들의 일자리는 늘어났지만, 증가분의 상당수가 공공근로 등 저임금 일자리다.
여성 노동자의 70퍼센트가 비정규직이므로 이명박 정부의 비정규법 개악 문제는 곧 여성의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분리직군제는 일은 똑같이 하면서 승진은 막혀 있고 체계적으로 임금을 차별하는 또 다른 비정규직일 뿐이다. 분리직군으로 포함된 노동자 압도 다수가 여성(우리은행은 98.6퍼센트)이라는 점에서 분리직군제는 여성차별적이다.
한국 여성들은 주요 OECD국가들과 달리, 여전히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중도 포기해야 한다. 출산연령대인 30대 초반에 여성 취업자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가 그 후 다시 증가한다(소위 ‘M자 곡선’). 그러나 돌아온 여성들이 주로 얻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다. OECD국가 중 공공 보육 지출 최하위권· 전체 보육시설 대비 직장내 탁아소 비율 1퍼센트라는 형편없는 보육 지원이 문제다. 여성들은 마음 놓고 육아 휴직을 쓰지도 못한다. 5인 미만 기업 여성 노동자의 11퍼센트만이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고용차별은 임금차별로 이어져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보다 턱없이 낮다. 여성들은 남성과 거의 같은 시간을 일하지만, 남성 임금의 62퍼센트밖에 못 받는다.
더 높은 임금, 더 좋은 일자리, 더 많은 일자리를 쟁취하는 일은 남성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여성과 남성 노동자의 이익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딸, 부인, 동료 여성들이 차별받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남성 노동자들의 삶도 팍팍해진다. 위기 속에서도 부자들의 이윤은 보장하면서, 보육도 저임금도 비정규직도 모두 여성들에게 전가하는 이 체제는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들이 모두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