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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표절 논란이 남긴 몇 가지 문제들

내가 〈레프트21〉 16호에 기고한 ‘표절 시비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저작권 논란’을 두고 몇 가지 쟁점들이 불거진 듯하다.

나는 특정 노래에서 몇 소절 이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저작권 협회나 음반회사들이 가차 없이 표절로 몰아가는 이유는 결국 저작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저작권’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진정한 창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개인적인 평가를 하기 이전에 ‘왜 유독 가요계에서만 순수창작을 주문하고 높은 잣대를 들이밀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얼마 전 열렸던 국제 다큐 영화제에서 “찢어라 리믹스”라는 작품의 감독은 이렇게 일갈한다. “영화에서는 세대를 넘나드는 풍자와 인용 비슷한 장면들을 차용하고 똑같이 연출해도 문제 삼지 않는데 가요계는 왜 그렇지 않은가?”

문학과 예술 특히 무용이나 그림 등에서 어떤 것을 순수하게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특정한 무용가의 동작이 개인의 것일 수 있을까? 논문에서는 숱한 인용들을 활용한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 숱한 패러디 창작물을 보라. 얼마나 재기 넘치고 ‘독창적’이었나.

물론 완전히 새로운 예술품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독창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표절을 처벌해 창작하는 사람들을 기죽이는 사회에선 진정한 독창성이 발휘되지 못한다.

얼마전 쿠엔틴 타라티노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대부분 다른 작품들을 차용하거나 베낀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명한 ‘킬빌’ 이라는 영화는 이소령의 무술과 서부극 그리고 사무라이의 권법들을 다 차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쿠엔틴 타라티노의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는가.

오해를 막기 위해 내가 표절 범위를 나이브하게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해야 겠다. 고위 공직자들의 필수 코스(?)인 논문 표절과 중복기재 따위의 부도덕한 면을 침묵하거나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편 문화가 자유롭게 공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가 없이 음악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불법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 때문에 인디음악가들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다소 일면적이다.

이미 음악계는 엘피 음반을 듣던 세대와는 달리 너무도 빨리 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음악을 손쉽게 저장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장도 넓어졌다. 따라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컴퓨터 자체가 공유의 바다가 아닌가? 과거에는 음악가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았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들이 방송과 라디오를 독점하면서 음악구조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소위 인기 있는 음악만을 대접(?)하는 시장 때문에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던 사람들이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음악가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또한 ‘아이돌 중심의 음악이 문제다’ 라고 지적하는 것도 주되게 음악을 소비하는 젊은 세대들 특히 특정한 시대의 유행과 코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것을 문제 삼기보다는 대형 기획사들이 다양한 음악들의 설 자리를 가로막고 인디나 홍대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표절 논란이 있는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옹호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일면적이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특정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스타가 되기 위한 하나의 관문처럼 보이지만 흔히들 ‘노예계약’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고 선택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문제는 저작권법이 우리가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들을 제약하고 조건 없이 공유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런 숨막히는 사회에서는 어떠한 실험적인 작품도 진정한 창작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표절이다 아니다’ 라는 애매하고 주관적인 관점보다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대형 기획사들의 그 이해관계가 반영된 저작권법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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