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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즈음해:
왜 한국 지배자들의 뿌리에는 ‘친일’이 아로새겨져 있는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펴내자 조중동과 우익들의 광기어린 히스테리가 폭발했다. 확실히 친일 문제는 우익들의 트라우마인 듯하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노린 좌파 사관(史觀) 친일사전” 운운하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우익들은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친일진상규명법을 만들려 했을 때 이를 누더기로 만든 바 있다. 당시 열우당은 꾀죄죄하게 타협해 사실상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반발을 샀는데, 이번 《친일인명사전》은 당시 열우당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박정희의 만주군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

이에 비해 노무현 시절 생긴 대통령직속 기구 친일진상규명위는 매우 소심하다. 그래서 일제에게 ‘견마(犬馬)처럼 충성하겠다’며 만주군 입대를 간청하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조차 친일파로 규정하지 못했다.

사실, 우익이 친일파 청산 노력을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은 제 발 저린 도둑의 심리만큼이나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한국 사회 핵심 지배자들이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친일파 청산 노력을 거의 본능적으로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식민지 조선의 ‘민족 부르주아지’들은 하다못해 인도의 민족 부르주아지들이 내세울 수 있던 알량한 ‘민족 정통성’마저 전혀 가지지 못했다.

일제시대 어지간한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했던 조선인 자본가들은 자본축적을 위해 총독부와 협력했고, 특히 1930년대 일본의 만주침략을 사업 확장의 호기로 여겨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민족 고대’를 창립한 김성수 일가의 성장 과정을 추적한 책으로 유명한 카터 에커트는 이렇게 썼다. “경방[경성방직]이 최대로 확장한 때는 총독부 전시[戰時] 정책의 충실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 1937~1945년이었다.”

이광수 등의 ‘친일 내셔널리즘’은 이런 조선인 자본가 계급의 사상을 대변했다. 이들은 일본제국 안에서 조선민족의 서열을 올리는 게 실현 가능한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했다. 이들이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어쨌든 일제는 조선인 자본가와 지주를 하위 파트너로 삼았고, 그들은 일제의 품 안에서 부를 쌓았다. 일제의 비호 덕분에 조선인 자본가와 지주 들은 같은 민족 노동자와 농민을 가혹하게 착취할 수 있었다. 해방이 되자 친일파는 한민당으로 결집했는데, 한민당 창당 대회 때 농민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땅마지기나 가진 것들이 대대로 착취하더니 오늘 또 당을 만든다고 하니 말도 안 된다”고 규탄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일제시대부터 ‘민족모순’은 ‘계급모순’과 나란히 중첩돼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친일파는 양대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과 소련의 경쟁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국과 이승만은 반공 독재정부 수립을 위해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했고, 이들이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 됐다. 우익들이 ‘친일파 청산=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하고 주장하는 데는 일리가 있는 셈이다. 친일파는 친미파가 됐다. 이들은 일제시대 그랬던 것처럼 미국 제국주의에 편승해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을 도모했다.

물론, 이 사실이 현재 한국의 핵심 지배자들이 단순한 ‘매판 세력’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친일파의 후예들은 미국 제국주의자들에게 ‘견마처럼 충성’하지 않고도 민중을 착취하고 부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이 점은 조중동과 뉴라이트 같은 우익 들이 단순한 시대착오적인 좀비들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서 친일파가 남긴 유산을 극복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 변혁과 맞닿아 있다. 이 좀비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것은 제국주의에 빌붙어, 그들의 침략전쟁에 편승해 이득을 얻겠다는 사상도 포함된다. 이명박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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