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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개혁은 북한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11월 30일 북한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구화폐와 신화폐를 1백 대 1의 비율로 교환하고, 구화폐 기준 10만 원까지 교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고 한다. 실제 북한에서는 2002년 7·1 조처 이후 엄청나게 물가가 상승했다. 노동자 평균 월급은 3천~4천 원에 불과한데 쌀 1kg 시장가격은 2천 원 수준까지 올랐다. 북한 당국은 이런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체제 위기를 재촉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남한의 우파들은 북한의 ‘계획 경제’가 문제라며, 시장 개혁을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지금 겪고 있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은 바로 2002년 7·1 조처와 같은 시장 개혁의 결과물이다.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단행한 2002년 7·1 조처 자체가 엄청난 물가 인상을 수반했다. 북한 당국은 쌀 1kg 국정가격을 당시 시장가격이었던 44원으로 맞춰 기존에 비해 5백50곱절이나 인상하는 등 엄청난 물가 인상을 단행했다. 반면 노동자 평균 임금은 2천 원으로 고작 18곱절 인상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다.

시장 개혁의 결과 북한 경제가 근본에서 회복되지도 못했다. 북한 경제는 2000년대 들어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2002년 이후 성장률도 연평균 2퍼센트 안팎 수준이었다. 생산은 여전히 활성화하지 못했고, 물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의 ‘계획 경제’는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미명 하에 엄청난 돈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투여하는 데 치중했다.

시장 활동은 주로 중국과의 무역에 국한됐고, 이를 통해 시장에 공급된 생필품은 여전히 부족하여 늘 비싸게 팔렸다. 시장 활성화 조처로 점점 국정 가격은 지배력이 약해지고 그 자리를 시장 가격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2002년 7·1 조처로 물가와 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없었던 정부가 화폐 발행으로 비용을 충당하려 하면서 시중에 현금 유통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것이 인플레이션 속도를 훨씬 부채질했다. 그 결과 7·1 조처 이후 7년 동안 노동자 평균 임금이 갑절도 채 오르지 못하는 동안, 쌀 시장 가격은 40곱절이나 올랐던 것이다.

이번 화폐 개혁이 통화량을 줄여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필품 공급과 주민들의 실질소득을 늘리지 않고서 화폐 개혁만으로는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벌써부터 화폐 개혁 이후 물가가 진정되지 않고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 평균 임금을 책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어떤 보도를 보면, 북한 당국이 애초 노동자 명목임금을 열 곱절가량 올리려 했지만, 이조차 물가상승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자 그보다 열 곱절 더 올려 신화폐 기준 3천 원 수준으로 책정할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 정도 수준으로도 물가 상승을 감당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한편, 이번 화폐 개혁은 인플레이션 억제뿐 아니라, 시장 개혁을 통해 형성된 현금 보유자들(이른바 ‘돈주’)을 통제하고 그들로부터 정부 재정을 확충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듯하다. 현금 교환 비율이 1백 대 1인 데에 반해 예금 교환 비율은 10 대 1로 정함으로써 예금을 유도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화폐 개혁으로 현금 보유자들 전체가 피해를 입지는 않은 듯하다. 실제 현금을 ‘징발’ 당한 쪽은 주로 중소 상인들인 듯하다. 정치와 경제가 긴밀히 융합돼 있는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큰 손’들은 북한 당국과 긴밀히 유착돼 있을 공산이 크고, 이들은 이미 현금을 달러나 위안화로 바꿔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즉, 이번 화폐 개혁으로 북한의 지배 계급은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으면서, 대신 중소 상인들을 쥐어짜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무마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화폐 개혁으로 단기간에 지배계급 내에서 커다란 권력 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중소 상인들의 반발이 크겠지만, 당장에 임금이 인상된 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화폐 개혁이 북한 체제를 안정화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은 그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라고 자처하는 것과 달리 전혀 주민들의 통제 하에 있지 않고, ‘계획’이든 시장이든 모두 서방 자본주의와의 군사적 경쟁을 위해 주민 대중의 생활상 필요를 체계적으로 희생하는 데 바탕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민주적 계획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이런 체제가 노동자들의 필요를 근본에서 충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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