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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레프트21〉 23호 김광렬 교수 글을 읽고

〈레프트21〉 23호에 실린 김광렬 교수의 글 ‘교육 공공성 포기, 국·공립대학 황폐화의 시작’을 읽는 내내 교수가 쓴, 교수를 위한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프트21〉의 주 독자층이 교수가 아닌 이상, 국립대 법인화 반대를 설명하려고 이런 글을 기고로 받았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운영을 시장 논리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 결과, 국립대가 앞장서서 청소년들의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지금도 높은 등록금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김광렬 교수의 글에 이런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국립대를 법인화 하면 총장 직선제가 폐지된다는 것, 대학 운영에 교수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의 격차가 커진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총장 직선제가 "대학 민주화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직선으로 뽑힌 총장이 등록금을 올리고 학교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징계하는 사례는 수도 없습니다. 총장 직선제는 교수들에게나 중요할 뿐, 학생들에게는 전혀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학생들의 수업 환경이 개선되고 장학금이 늘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대학생들의 투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교수들이 참여해 그런 것을 이끌어낸 적도 없습니다. 몇몇 진보적 교수들이 학생들을 옹호할 수는 있지만,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설상가상으로 기사에는 "등록금마저 정부가 분명히 통제할 것"이라며 사실상 등록금 인상을 해야 한다는 뉘앙스마저 풍깁니다. 지금 국립대 법인화를 막기 위해 〈레프트21〉이 운동을 호소해야 할 주된 독자가 교수층입니까, 아니면 학생들입니까? 이 기사는 독자를 잘못 파악해도 한참 잘못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의 격차가 커진다고 하는데, 과연 국립대 법인화나 대학 시장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격차가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 사이의 격차입니까?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지방 국립대들은 지방 사립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서열을 차지하는데,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통해 노리는 것은 이러한 지방 사립대를 시장논리에 따라 구조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사 자체는 논리적 모순도 있습니다. 앞에서는 "국립대학은 이미 헌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국가기관성과 법적주체성을 인정받고 있으므로"라고 하고선, 뒤에서는 "정부의 수많은 통제를 받아 온 우리나라 국립대학"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대학이 충분히 자율적이라고 하고서, 뒤에서는 간섭이 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립대 법인화가 가져올 진정한 문제는, 정부의 대학 지배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업의 대학 지배가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 국립대 총장을 인용하면서 아시아 명문대학들의 순위 급등을 마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인 것처럼 쓴 대목도 문제였습니다. 학생들은 대학 당국의 세계 대학 순위 경쟁 때문에 허리가 휘는 등록금에 시달립니다. 제가 다니는 연세대는 세계 20위권 대학을 만든다고 등록금을 천정부지로 올리고 있고, 이는 연세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학 순위를 높였다는 이유로 싱가포르 총장을 마치 우리가 존경해야 할 존재로 떠받들다뇨?

김 교수가 4년 만에 서울대 "논문실적"이 감소했다고 개탄한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논문실적"이란 대학 간 순위 경쟁을 위해 개발된, 전적으로 반(反) 학문적인 지표로, 연구자가 쓴 논문 수와 그 논문이 실리는 저널의 인지도(SCI)에 따라서 대학을 평가하는 수단입니다. 이 때문에 수년을 공들여서 논문을 쓰기보다는, 설익은 내용이라도 심사를 통과할 정도만 되면 빨리 논문으로 써 버리고, 심지어는 비슷한 내용을 바꿔 가며 논문을 쓰고, 학술적 내용보다는 SCI가 높은 저널에만 목을 매는 것이 오늘날 연구 현실입니다. 교수들의 논문 베끼기 시비가 불거지는 이유는 모두 이 "연구실적"을 뻥튀기 하기 위한 것이고, 황우석 교수 역시 그러했습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논문 한 편당 연구비 몇천만 원 또는 장학금 얼마"라는 식의 얘기가 도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을 압박하는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합니다.

김종환 독자의 비판은 글의 논지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기자 kdh@ws.or.kr

일단 제 생각에도 김광렬 교수님의 글(이하 기고글)에 불친절한 측면이 있어서, 떼어 놓고 읽는다면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김종환 독자는 정부의 법인화 정책에 반대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기고글의 전체적인 논지를 보지 않으려 해,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국립대 법인화의 본질을 밝히면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국립대 법인화 정책의 본질은 재정 지원을 줄여 대학 재정은 등록금과 시장에 내맡기면서도 대학 운영에서는 정부 통제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기고글이 지적한 서울대 법인 이사회 구성에서도 드러나며, 일본의 동경대 법인화 과정에서도 벌어진 일입니다.

따라서 김종환 독자가 기고글의 모순점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제가 보기에 법인화의 양 측면을 비판하는 내용을 매끄럽게 정리하지 못해 나온 듯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편견 없이 읽는다면 정부의 법인화 정책을 비판하고 대학 지원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논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고글이 “국립대학은 이미 헌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국가기관성과 법적주체성을 인정받고 있으므로”라고 지적한 부분은 ‘대학의 자율성’ 운운하며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밀어붙이지만 실제로는 대학 운영에 더 깊숙이 개입할 수 있도록 이사회 구성 원칙을 바꾸고 또 총장 직선제 같은 대학의 민주적 제도를 파괴하는 점을 비판하는 부분입니다.(사립대학들에서도 재단이 개입을 강화하려고 총장 직선제를 없애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기고글이 “정부의 수많은 통제를 받아 온 우리 나라 국립대학”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재정적 측면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아 왔으며 그 대신 사립대학들보다는 더 많은 지원을 받은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문단에서는 20퍼센트도 안 되는 국립대학 비율,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 기성회비로 운영해 온 국립대학의 재정 상황 등을 비판했으며, 바로 다음 문단에서는 “국립대학을 통한 고등교육의 책임과 의무를 통감”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연관해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에 대한 지원 격차 문제는 국립대 법인화 쟁점에서 부차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가 대학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학들에만 재정적 특혜를 줘 온 것은 명백히 비판해야 할 점인데다가, 국립대학에 대한 지원마저 끊어 버리려는 법인화 정책을 다루면서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에 대한 지원 격차를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지방 국립대학 교수들의 이해관계이기도 하지만 지방 국립대에 다니는 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 정도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많은 사립대학 교수·학생의 이해관계이기도 합니다. 지방 국립대학마저 생존이 어려워질 정도로 지원이 줄어들 공산이 큰데 일반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이 늘어날 리가 있겠습니까?

또, 기고글에서 논문 실적 부분이나 싱가포르 국립대 총장의 말을 인용한 부분도 대학의 연구가 “경기침체에 따른 연구비 지원 감소”에 좌우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지입니다.

지배자들은 대학·교수 평가의 주요 척도로 논문 실적을 언급하는데 그 논리에 따르더라도 법인화는 논문 실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일 수 있고,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국립대 총장(설사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같은 인물이 보기에도 법인화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고글은 대학의 세계적인 순위를 높이려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논문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학의 세계적인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지원이 더 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김종환 독자가 지적한 논문 실적 경쟁에서 비롯하는 온갖 문제들조차 주로 차별적인 연구비 지원과 연관된 상황일 겁니다.

그리고 김종환 독자가 현행 총장 직선제를 비판한 부분을 보면 학생과 교수 사이를 적대적인 계급 관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교수가 학생을 얼마나 더 잘 착취하느냐로 다른 교수들과 경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물론 보수적인 교수들이 많고, 한국의 대학에 교권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총장 직선제는 단지 교수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대학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진보적 요구를 제기해 달성한 역사적인 성과입니다. 따라서 총장 직선제는 민주화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과 진보적인 운동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둘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들도 총장 선거에 참가할 수 있도록 총장 직선제를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대학 운영에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교수들의 총장 직선제마저 없애려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부의 공격에 분명히 반대하는 데 강조점을 둬야지 우리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글의 논지를 파악하는 데서 가장 기본은 글을 왜곡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편견 없이 읽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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