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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현지 르포:
“나토의 폭탄이 조카를 죽였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 군의 마르자 대공세가 시작되자 수많은 현지 주민들이 헬만드 주를 빠져나와 피난길에 올랐다. 포토저널리스트 가이 스몰만이 난민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 토르 잔 씨는 대뜸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이렇게 거지 꼴로 살고 있는 건 당신들 때문이야!”

하지 토르 잔이 나토 폭격으로 죽은 자기 형제의 아들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사진 가이 스몰만

비록 병 때문에 극도로 쇠약해진 몸이었지만 왕년의 무자헤딘 전사였던 하지 씨는 분노로 인해 잠시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그는 마치 나를 한 대 칠 듯한 기세였다.

나는 통역을 통해서 영국인 대다수가 전쟁에 반대하고 있고 그러한 정서는 갈수록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제서야 하지 씨는 화를 가라앉히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같이 좀 앉자고 했다. 그는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며 주머니 속을 뒤졌다.

그가 꺼낸 사진 속에는 피로 물든 시트 위에 작은 소년이 죽은 채로 누워 있었다. “이 아이는 제 조카입니다. 하늘에서 날아온 나토 군의 폭탄이 이 아이를 죽였지요.”

그는 또 한 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쪽은…”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 누이입니다.” 사진 속 중년 여성의 시신은 온전히 남아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만난 곳은 카불 외곽의 카르가 도로 난민 수용소였다. 텐트와 개방 하수로(오물을 흘려 보내기 위해 얕게 판 도랑)가 밀집해 있는 난민촌은 1년 전쯤 방문했을 때에 비해 더 커져 있었다. 그동안 거의 1백 가구가 집을 잃고 이곳으로 합류했는데, 최근에는 교전 중인 마르자와 나드 알리 지역에서 도망쳐 나온 헬만드 출신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난민촌 규모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긴 지역 출신들이다.

그들이 여전히 가난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서 나토 군이 이루고 있다는 진전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총알

점령군의 총격으로 팔을 다친 사람 ⓒ사진 가이 스몰만

또 한 사람은 자신의 팔을 보여 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그는 총알이 자기 손을 관통하면서 뼈를 분쇄한 탓에 손을 못 쓰게 됐다고 한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한 일이었지요. 저는 무장도 안 한 상태였는데 그 병사는 아무 경고도 없이 총을 쐈어요. 이제 무슨 수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까?”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로서는 농사밖에 먹고 살 길이 없었다. 따라서 손을 못 쓰게 된 것은 그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때쯤 카불에서는 마르자 대공세에 관한 언론 보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예상과 달리 나토 군이 별다른 저항에 부딪히지 않은 것에 적잖이 놀랐다.

아프가니스탄 사람인 친구 한 명이 자기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들[탈레반]이 근본주의자이긴 해도 바보들은 아니잖아? 슬쩍 빠졌다가 다른 곳에 나타나서 또 치겠지. 결국 현지 주민들만 죽어나는 거 아니겠어.”

하지 씨는 사태의 끝이 안 보인다고 내게 말했다. “우리는 30년 동안 전쟁을 겪어 왔어요. 처음에는 러시아인들이 쳐들어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지요. 나토 군은 더 심해요. 우리의 긍지인 우리 문화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어요. 미군이 개를 데리고 여자들을 몸수색하는 것을 우리는 참을 수가 없어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는 오랜 전통에 따라 마을 원로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종 현안을 의논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지르가’ 제도가 아프가니스탄 정부보다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이런 문제는 지르가를 소집해서 탈레반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대화로 해결할 일이지, 폭탄이나 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하지 씨의 말이다.

헬만드에 살던 시절에 하지 씨는 신발과 외투를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다가 한 달 전, 하지 씨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집이 공습으로 파괴됐고 그의 동생이 목숨을 잃었다.

죽은 동생의 일곱 자녀를 돌보는 것은 하지 씨의 몫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그를 만나기 하루 전에는 요리 도중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그의 텐트가 몽땅 타 없어졌다.

미어터진 난민 캠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싸구려 버너와 히터를 사용하다 보니 이런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난민촌의 아이들 ⓒ사진 가이 스몰만

그렇게 하지 씨 일가는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날려 버렸고 이제 아이들에게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막아 줄 이불조차 없다.

“여길 떠나시기 전에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지 씨는 이렇게 말하더니 근처에 진흙 벽돌로 지은 작은 처소로 나를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처소의 한 쪽 구석에는 피골이 상접한 노파 한 명이 누워 있었다. 천을 덮어쓴 채 벌벌 떨고 있는 노파는 넋 나간 사람처럼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단 하루 만에 자식과 손자 일곱 명을 잃었어요. 여기에 온 직후에 그만 실성을 하셔서 지난 한 주 동안은 아무것도 안 드셨지요.” 하지 씨가 설명했다.

“자비로운 알라께서 어서 이 분의 목숨을 거두어 주시기를 다들 기도하고 있어요.”

이 끝없는 전쟁 속에 그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꺼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