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파업으로 대량해고를 막아 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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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에 맞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파업이 승리를 거뒀다.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 10시간 만에 사측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고 노조와 합의했다.
노동자들은 지난 두 달 동안 집회, 부분파업, 시민 홍보전, 서울 상경투쟁 등을 했고, 사측이 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하자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런 투쟁이 결국 사측을 물러서게 한 것이다.
부산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가 강력하게 확산된 것도 사측을 압박했을 것이다. 사측의 정리해고 계획을 지원한 정부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량해고 때문에 시민들의 반감이 고조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대량해고를 둘러싼 충돌이 다가오는 금호타이어의 상황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금속노조의 주요 사업장 두 곳에서 동시에 투쟁이 벌어지고 연대 투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측은 ‘명예퇴직 권고 명단’이라는 것을 만들어 노동자 6백여 명에게, ‘정리해고될 수 있다’고 협박해 왔다. 내가 파업 기간에 만나 본 노동자들은 그 불안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명단 통보를 받았죠. 아들한테 ‘내가 사표 쓰면 너는 살려 주지 않겠냐’고 말합디다. 그걸 옆에서 보는데 우리들 심정이 어떻겠는교.”
“나이든 사람들은 압박이 심했어요. 죄 짓는 것 같고, 나 때문에 창창한 애들이 쫓겨나면 어쩌나 해서. 일하면서 자식처럼 아꼈는데.”
명단 통보를 받지 않은 노동자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옆에 친한 동료가 있는데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명단 통보를 받았어요. 차라리 내가 받는 게 낫지. 그 친구 얼굴을 볼 수가 없었어요.”이런 협박 속에 이미 노동자 4백여 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런 동료들을 지켜본 노동자들은 “싸워서 이기자”고 분노를 폭발시켰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전면파업에 동참했다. 이 파업이 쌍용차 때처럼 강력한 점거 파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 때문에 사측은 부담을 느껴 일단 사실상 별다른 조건도 없이 해고를 중단한 것이다. 저들은 ‘쌍용차처럼 싸우면 망하는 길’이라고 노동자들을 협박하며 위축시키려 했지만, 이번 승리는 결국 강력한 투쟁과 파업만이 진정한 대안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은 이번 싸움이 “전초전”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업계 불황 속에서 경영 위기가 지속된다면 회사가 또다시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투쟁에서 구조조정 철회를 명시하지 않고 “중단”이라고 합의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또한 “노사는 회사 생존을 위하여 수주 경쟁력 확보 및 생산성 향상에 노력한다”는 이번 합의 내용이 나중에 노동자들의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까 봐 걱정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아직 힘을 다 써 보지도 못 했는데, 더 싸울 수 있는데 좀더 확실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싸워 보지” 하고 아쉬움을 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전초전 승리
파업이 끝난 후 회사는 언론에 “조선 시장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구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희망퇴직자 모집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이후 투쟁을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바로 시작될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 잘 대응해야 한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철회했으니 노조도 양보하라는 압박을 할 것이다. 그러나 회사를 떠난 노동자들도 많고, 지난해 상당한 임금 삭감을 감수한 만큼 노동자들이 더는 양보할 이유가 없다.
노조 지도부가 전면파업에 돌입하기 전에 “50억 고통분담” 양보안을 내면서 수세적으로 대처한 잘못이 임단협 과정에서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한 조합원은 “50억 양보안 내는 것을 보면서 억수로 불안했다. 회사가 무능한 영업으로 위기를 초래한 것인데 갑자기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인정 한 것 아니냐. 이미 희생을 했는데 우리가 또다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집행부의 잘못된 생각이다”라며 현장에서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고 전한다.
또 한 조합원도 “구조조정 얘기만 나오면 임금 양보하고 단협 양보하고 다 줘야 하냐. 앞으로 임금 주기 싫으면 구조조정 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지도부가 양보 교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지도부는 이번에 투쟁으로 정리해고를 막아 낸 만큼, 다가 올 임단협에서도 더 큰 투쟁을 경고하며 물러섬 없이 임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1사1노조도 하루빨리 실행되어야 한다. 이번 투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 듯이 비정규직 규모가 정규직보다 더 큰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만으로는 파업 효과를 높이기 어렵다. 회사는 하청노동자들을 늘리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아예 일용직 노동자들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번 투쟁을 지켜봤다는 한 하청 노동자는 “2003년 김주익 열사가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노조 간부들이 공장 앞에서 함께하자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때 동참한 하청 노동자가 억수로 많았다. 1사1노조는 다 같이 살기 위해서 하는 거다. 하청을 같이 조직해서 노조를 강화해야 한다. 2007년 노조 설문조사에서 조합원들 다수도 1사1조직 동의했다. 정규직 노조가 나서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이명박에 맞선 투쟁이 더 확대되고 강화돼야 한다. 당장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금호타이어의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나아가 한 조합원은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잘 싸웠다. 또 구조조정 한다고 하면 그 때도 우리는 싸울 거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 있다. 정말 물량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지. 조합원들은 회사가 더 어려워지면 답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데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양보하면 전체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아니냐. 사회적 분위기는 더 그렇게 가는 것 아니냐.
“지금은 너희가 책임지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지만 나중에 정말 다 나가라고 할 때 이명박이 만든 조건을 넘어서려면 사회적 투쟁, 정치적 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앞장서서 해야 한다. 〈레프트21〉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처럼 국가가 책임지라고 말하면서 모두가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