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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처벌을 면한 은행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 어느덧 3년 전이다. 당시에는 이 위기를 “신용경색”이라고 불렀는데, 다소 기이하고 지엽적인 현상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미국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19세기 말과 1930년대의 불황에 이은 “제3의 불황”이라 부르는 것으로 발전했다.

한 가지 괄목할 만한 점은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지배계급이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토니 블레어가 훌륭한 총리였다고 믿는 것만 빼면 꽤나 통찰력 있는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필립 스티븐스의 7월 30일치 칼럼이 이 점을 보여 준다.

스티븐스는 금융 규제의 새 시대를 열겠다던 정치인들의 호언장담에도 은행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꿋꿋이 지켜냈다고 지적한다.

스티븐스의 결론은 이렇다. “3년이 지난 지금, 대다수 사람들이 더 가난해졌다는 것을 빼면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시장이 우리를 지배한다. 불만 있나?”

당연히 불만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위기를 촉발한 미국과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정부의 규제 시도를 대체로 잘 막아 냈다는 스티븐스의 지적은 옳다.

스티븐스의 동료인 존 개퍼는 7월 31일치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이번 주에 세계 각국의 금융 감독 기관들은 은행의 자기자본과 유동성에 관한 새로운 기준에 합의했다. 원래대로라면 규제를 피해 가려는 은행들에 맞서 국제 사회의 단호하고 일치된 제재 의지를 보이기 위한 기준이었으나, 국제결제은행(BIS)은 애초의 기준을 희석시켜 은행들에게 8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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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또 한번 승리한 것이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가 금융개혁 법안에 서명하기 직전에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규제 법안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금융가들은 다른 모든 이들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

“미국의 포괄적인 금융 시스템 개혁은 크고 작은 방식으로 … 미국 은행들의 이윤을 갉아먹을 것이다.

“이를 막으려고 막대한 로비 자금을 투입한 금융가들은 이제 고육지책으로 새로운 규칙에 적응해서 그것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큰 91개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가 있었다. 이 스트레스 테스트는 그리스를 둘러싼 5월의 대소동 이후 유럽의 은행 시스템이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조처였다. 많은 독일 은행들이 주택시장 버블이 한창일 때 위험한 미국산 금융상품을 과다 복용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를 수행해 보니 스페인 은행 다섯 곳, 독일 은행 한 곳, 그리고 그리스 은행 한 곳만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테스트가 조작됐다는 비난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독일인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차우는 길길이 뛰며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유럽연합이 적용한 기준을 누군가가 자동차나 아이들 장난감의 안전성을 실험하는 데 똑같이 적용했다면 그는 감옥에 갔을 것이다. 이 웃기지도 않는 테스트의 목적은 유럽연합이 마치 뭔가를 해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는 것일 뿐이다.”

이 모든 사실은 대서양 양쪽에서 은행들의 로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실감케 해 준다. 그러나 은행들의 힘을 진정으로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유럽 전역에서 도입되고 있는 긴축 정책이다.

이번 위기는 민간부문에서 시작됐지만 엄청난 공공지출 확대 덕분에 그 충격이 완화됐다. 경제학자 마크 잔디와 앨런 블라인더는 만약 미국 정부가 1조 7천억 달러를 지출하지 않았다면 2009~2010년에 미국 GDP의 하락폭이 4퍼센트가 아닌 12퍼센트를 기록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국가 부채가 크게 늘어났고, 이를 줄이려고 각국 정부는 이제 공공부문을 공격하고 있다.

이는 은행들에게 또 하나의 승리다. 은행들은 거의 말 그대로 돈을 ‘먹고 튀고’ 있다.

그러나 이 스토리에는 아직 반전이 남아 있다.

만약 각국 정부의 긴축 시도가 좌절된다면 시장의 지배를 재확립하려는 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투쟁의 결과에 실로 많은 것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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