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가를 서로 떠넘기려는 미중 환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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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에 위안화 절상을 두고 “환율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중국 통화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키려 한다. 미국 재무장관 가이트너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환율시스템 개혁을 위한 지지 규합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반발해 위안화 절상 압박이 “중국에 대한 보호무역주의를 펴기 위한 핑계”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중국이 미국산 닭고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그 보복으로 미국은 중국산 동(銅)파이프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양국의 무역 마찰은 경제 위기 이후 계속 심해지고 있다. 미국은 올해 초 중국산 전기담요, 철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지난해에는 중국산 타이어에 덤핑 판정을 한 바 있다.
환율전쟁이 최근 다시 격화한 이유는 2010년 상반기에 조금 회복하는 듯하던 경제가 최근에 다시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6월 들어 고용과 주택시장 상황이 악화하면서 경기가 다시 악화하는 ‘더블딥’ 가능성이 부각됐다. 미국 취업자수는 1∼5월에 월평균 20만 명씩 증가하다가 6∼8월에는 월평균 9만 명씩 감소해 10퍼센트에 이르는 실업률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의 국가 부도 위험과 은행 부실 등 금융 위기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은 올해 10퍼센트 넘게 고속 성장하고 있지만 내수와 수출이 둔화되고 있고 부동산 가격 등이 급등하면서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 지배자들은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의 대가를 가능하면 외국과 외국 자본가들에게 떠넘기고 싶어 한다. 자국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려 하는 것이다.
최근 경제 성장률이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국가들도 환율을 낮게 유지하고자 한다.
일본이 엔화 강세에 대응해 수조 엔을 풀며 개입한 것뿐 아니라 한국, 인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등도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있거나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달러를 대규모로 푸는 것도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집중 공격하는 이유는 중국이 명시적으로 환율을 관리하고,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빠른 성장을 하며, 미국 무역 적자의 상당 부분이 대(對)중 무역적자라는 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급성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최근 천안함 사건과 센카쿠 열도 문제 등을 놓고 미중일 간에 지정학적 경쟁도 격화해 왔다.
물론 ‘환율 전쟁’으로 나타난 경제적 경쟁과 영유권 분쟁 등의 지정학적 경쟁이 앞으로 계속 격화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국에 진출한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위안화 절상에 반대하는 것에서 보듯이, 세계경제가 예전보다 훨씬 긴밀해져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는 미국·중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환율 전쟁’은 심화하는 경제 위기가 제국주의 간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을 더욱 격화시켜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