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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 서평: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

《오만한 제국 ―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 하워드 진, 당대, 2001

지난해 말 미국 대선의 혼란은 미국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던 프랑스 학자 토크빌의 칭송은 낡은 수사로 전락했다. 투표 용지의 공정성 시비에 관권 선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미국의 위신은 완전히 추락했다.

《오만한 제국 ―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은 한층 더 나아가 미국이 아예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 지배 이데올로기 전반에 대한 총체적 비판서인 이 책은 시의적절하게도 지난 1월에 번역·출판됐다.

이 책의 지은이 하워드 진은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좌파 활동가인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반인종차별 운동에 참여해 흑인 민권운동 등을 지원했다.

하워드 진은 《미국민중저항사》(일월서각)에서 미국의 역사를 백악관 중심이 아니라 투쟁하는 민중의 삶을 통해 서술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하워드 진은 《오만한 제국》에서 이런 세계관에 바탕해 미국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선을 철저히 폭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조선일보〉는 이 책을 대단히 학술적이고 추상적인 것처럼 소개했다. 이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해 미국 이데올로기의 뿌리에 도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 과정은 대단히 쉽고 직설적인 문체, 풍부한 사실적 근거와 유쾌한 풍자로 이루어져 있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는 생각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부모나 학교, 교회,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을 통해 보고 듣는 특정한 생각들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선택권의 제한은 우리가 걷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제한은 생각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굳어져 결국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이룬다."

인간 본성·역사·전쟁

미국 역사는 전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 전쟁들에서 언제나 학살자였다.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는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 때문에 벌어진다", "정당한 전쟁도 있다", "미국은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다”등.

하워드 진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을 던져 놓고 그것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미국 정부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을 때,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쟁에 나서는 악의에 찬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 정부는 7만 5천 명의 연설가들을 파견해 75만 차례나 연설을 하게 하는 대대적인 전쟁 참가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차 세계대전이 "성전(聖戰)"이며, 이 전쟁은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처참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과 살상은 계속됐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유태인을 구하기 위한 것"도, "식민지들의 민족자결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도,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 패권을 둘러싼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전이었고, 미국은 이 전쟁 이후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가 됐다.

미국은 종종 자신들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도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최근 미국은 발칸에서 ‘인도주의적’ 전쟁을 위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된 조지 W 부시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는 대통령 재직 당시 화학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는 10년에 걸쳐 판매한다는 조건을 붙여 여론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인도주의이다.

하워드 진은 수많은 역사적 예를 들어 미국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 주장한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절대로 객관적이지 않다. 공식 역사책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을 알려 준다. 그래서 하워드 진은 미국의 역사를 백악관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미국 정부가 1914년 콜로라도 주 탄광 파업 당시 장갑차와 산탄총, 기관총으로 어린이 11명과 여성 2명을 학살한 사실과 거기에 대항해 더 넓은 연대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 이야기에서 역사를 찾는다.

미국의 공식 역사는 1920년대를 ‘재즈 시대’, 곧 미국인들에게는 재미와 번영의 시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당시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만이 실질적인 소득의 증가를 누렸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미국의 영웅 중에 전쟁 영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반전 운동과 전쟁의 어리석음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대해 역사는 얼마나 무관심한가."

하워드 진은 처참한 대규모 학살들이 미국 이데올로기의 가장 철저한 수혜자들인 엘리트들에 의해 계획된 사실을 폭로한다. 캄보디아 농촌 마을에 비밀리에 폭격을 퍼붓는 작전을 세운 전략가는 하버드대 교수 헨리 키신저였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단언한다. "역대 대통령과 법안들과 대법원의 결정을 아는 것을 주된 강조점으로 삼는 역사는 배울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자신들의 영향권 안으로 세계와 우리의 정신을 묶어넣으려고 드는 정부의 광기에 새로운 세대가 저항하도록 고무시키는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법과 언론 자유

1949년에 성난 군중이 반 유대주의자인 한 신부의 연설에 항의하자 경찰은 그 신부를 체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 신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그의 생각이 반대자들을 자극했다는 사실이 연설을 중단시키는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며 "우리 정부 제도에서 언론 자유의 기능 중 하나는 논쟁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거리 한 모퉁이에서 어빙 페이너라는 대학생이 시장과 경찰과, 미국재향군인회,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경찰은 그를 체포했고, 법원은 그 체포가 적합하다고 판결했다.

미국의 법 제도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법은 태생부터 민주와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 헌법은 영국의 왕실 헌장에 비해서는 확실히 나은 것이지만 여전히 부유한 사람들, 상인들, 노예 소유주들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문서였다. 그들은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는 원했지만,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찬성하지 않았다.

하워드 진은 미국 헌법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가 얼마나 간단히 무시돼 왔는가를 지적한다.

생사의 문제, 즉 전쟁과 평화를 가름하는 문제에 접근할수록 이른바 미국 민주주의 체제는 더욱더 반민주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정부가 모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전쟁에 돌입하고 나면, 전쟁에 대한 비판은 투옥으로 다스려진다. 베트남전에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은 투옥됐고, 반전 언론들은 탄압당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한 손은 다른 사람의 주머니 속에 집어 넣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있으면서, 고도로 문명화됐다고 자부한다.

계급

미국의 성공과 실패는 이런 것이다. 경이로운 기술적 진보와 함께하는 가난과 기아. 엄청난 부자들과 어마어마한 풍요를 지켜보면서 절망과 비참함 속에 살아가는 남자·여자·아이들.

이토록 극명한 대조 속에서 범죄와 폭력, 마약중독이 생겨난다는 게 과연 놀라운 일일까? 이런 불안정 속에서 정신질환, 결손 가정, 알콜 중독이 생겨난다는 게 또한 놀라운 일인가?

미국 민주주의의 일부인 자유방임주의는 가난한 사람이 굶주리고 병원비를 낼 수 없어 죽어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제 탓일 뿐, 절대로 사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과 부자들에게는 공짜 땅과 융자금과 세금 혜택이 돌아간다.

한 흑인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는 달러에 의한, 달러를 위한, 달러의 정부가 있죠." 하고 단적으로 말했다.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는 사고 방식은 조금만 따져 봐도 금방 거덜난다. 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부류에 속한다.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의 임원은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부류에 속한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미국 사회를 예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통렬한 고발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여러분은 미국 사회에 대한 본질을 깨달아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 가운데 많은 부분이 한국과 매우 유사함을 느낄 것이다.

《오만한 제국》은 역사의 진전은 소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치열한 계급투쟁에 의해 이루어져 왔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입증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공식 역사가들이 애써 외면하는 사실에서, 특히 억압받은 흑인들의 역사와 노동자 투쟁의 역사에서 진실을 찾아낸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하워드 진이 느끼는 미국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냉정한 비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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