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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투자국가론과 박근혜·민주당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 발표에 “재원 마련 방안을 비롯해 아무 내용이 없다”는 안팎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심재철조차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 주겠다고 하는 것은 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한국형 복지’를 추진하겠다며 한 얘기들은 전임 정부들이 추진하던 ‘사회투자국가’의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영국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면서 만들어낸 ‘제3의 길’ 노선의 결과물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복지 지출이 단순히 지출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투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주들이 보기에 복지를 쏟아부어 봐야 거기서 얻을 게 별로 없는 노인 복지(연금, 무상의료)가 첫째 공격 대상이 된다.

또 교육이나 여성에 대한 복지 지출도 그것이 믿을 만한 투자가 되려면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쟁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다른 하나는 투자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입증하라는 것이다. 실업급여를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할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한 뒤에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수레나 그 수레나 …

기존에 보편적 복지 체계를 갖고 있던 유럽의 복지 국가들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은 어떤 식으로든 복지 지출 총액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노동자들은 기존에 받던 복지 급여를 받기 위해 더 번거롭고 힘든 절차를 거쳐야 했고 일부에서는 급여 자체가 줄어들었다.

따라서 사회투자국가론에 기반한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는 복지 확대를 바라는 대중의 기대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도 믿기 어렵다.

재원 마련 계획도 없고, 투자의 관점에서 복지에 접근하는 것도 박근혜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박근혜의 복지론을 “철학, 비전, 대안이 없는 빈 수레”라고 비판하자 진보신당 노회찬 전 대표는 “그 수레나 그 수레나 비슷한 수레들”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은 복지에 조금 더 투자하는 것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사회 불안 요소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처럼 대중의 불만이 크고 요구 수준이 높을 때 이런 생각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지지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 확대 시도는 결국 어디서 재원을 마련할 것이냐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기업주·부자 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민주당이 그들의 이익을 거슬러 부자 증세에 나서기는 어렵다.

결국 1987년 이후 한국 복지의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지금 저들이 내뱉고 있는 복지 미사여구들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