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레프트21〉 51호 온라인 독자편지 ‘이집트 혁명의 현재 상태와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발전할 잠재력은 구분해야 한다’에 대한 재반론입니다.
김종환 동지는 이집트 혁명의 반제국주의적 성격은 잠재력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근거로는 친미정부가 다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나는 친미정부가 다시 들어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앨바라데이 등 친미적 자유주의 인사들이 혁명을 낚아채려 할 수 있고, 김종환 동지가 지적했듯 현실에서도 “아직 이집트의 권력은 군부의 손에 있”다.
“그러나 혁명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혁명은 과정이다. 혁명은 기복이 있고 전진과 후퇴가 있는 과정이다. 혁명은 몇 주,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에 걸친 과정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제국주의 권력을 완전히 타도하지 못해 최종적으로 친자본가 세력이 집권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애초 민중이 시작한 혁명의 성격을 규정짓지는 않는다.
운동이 ‘팔레스타인 해방’ 등 중요한 반제국주의 요구 중 일부를 내걸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자는 사물을 총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집트 민중의 주요 요구인 ‘빵’과 ‘자유’의 문제는 자본주의·제국주의와 긴밀히 결합해(지난 글에 다뤘으므로 다시 설명하지는 않겠다) 있고, 양자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않고서는 어느 것도 제대로 성취할 수 없다.
따라서 이집트 혁명은 단순히 반제국주의적으로 변화할 잠재력을 가진 투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본주의·제국주의 권력에 도전하는 성격을 가진 투쟁이다. 이 혁명이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노동계급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혁명을 확산해 중동에서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 일은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승리로만 최종 달성될 수 있다.
이집트 민중이 승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해방’ 요구 등을 채택하여 운동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이 투쟁에 반제국주의적 성격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매우 일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