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혁명의 성격과 방향 논쟁:
카다피와 서방은 공범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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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부 자주파 인사들은 카다피를 반제국주의 지도자로 묘사해 왔다. 반대로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카다피의 독재가 서방의 인권·민주주의 가치와 대립해 왔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둘 다 진실이 아니다.
카다피는 한때 제국주의와 갈등하고 그것으로 독재를 정당화했지만, 이미 2003년부터 태도를 바꿔 제국주의에 빌붙어 왔다.
미국은 그 대가로 2004년 리비아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2006년에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이 과정을 중재한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리비아가 서방과 돈독한 파트너가 되면서 전 세계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미 국무부 대변인 숀 맥코믹도 “리비아는 … 미국과는 물론 국제사회와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앞으로 발전 여지도 많다”고 말했다.
서방 지배자들은 카다피를 “지역의 실력자”로 부르며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리비아의 석유 자원 수입, 유전 개발과 각종 건설 투자, 무기 수출로 돈벌이에 나섰다.
카다피도 화답했다.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정부에게 유전 개발 등 거액의 사업권을 줬고, 자유시장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는 2008년 ‘혁명’ 39주년 연설에서 “내년 초부터 자유시장 경제 조처들을 도입한다”며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면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위선
2004년 영국 블레어,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2008년 미 국무장관 라이스가 리비아를 방문해 카다피와 회담했다.
블레어는 회담과 동시에 영국계 석유기업 셸과 BP의 석유 탐사권을 확보하고 미사일과 방공시스템, 시위 진압 장비 등도 판매했다.
영국은 리비아 장교들을 영국사관학교 샌드허스트에서 교육시키고 군사자문단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는 EU 회원국 가운데 리비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팔고 있다. 2007년 정상회담 후 프랑스도 원자로와 비행기, 군수물자 등을 1백억 유로어치 판매했다.
전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8년 리비아 방문 때 카다피에게서 20만 달러가 넘는 선물을 받았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양국 관계 개선 전망에 매우 흥분해 있다”고 카다피에게 전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2009년에는 카다피를 G8 회의에 초청했고,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서방과 카다피 모두 위선자인 것이다.
서방의 강대국들은 카다피가 저항 세력을 학살하도록 무기와 돈을 제공한 당사자다. 카다피가 ‘주권’을 말하는 것도 위선이다. 그가 해외에서 용병을 불러들이는 데 쓰는 돈은 막대한 석유개발 이권을 독점해 다국적 기업들에게 나눠 준 대가로 받은 돈이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중동을 순방하며 무기 세일즈를 한 직후에 ‘카다피의 학살을 막아야 한다’며 위선을 떨었다.
그가 “영국이 아랍 정상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하고 얘기하는 동안 리비아 학살 동영상에는 영국제 장갑차가 진압에 사용되는 장면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을 지낸 ‘네오콘’ 리처드 펄은 세계적 컨설팅 기업인 모니터그룹 소속으로 연간 3백만 달러를 받는 카다피 자문팀에 참여해 왔다.
오바마 정부도 바로 몇 달 전에 카다피와 무기 수출 계약을 추진했다. 카다피는 ‘테러와의 전쟁’을 돕겠다며 미국의 전투기, 헬기, 탱크를 수입해 왔다.
결국, 카다피는 반제국주의이기는커녕 제국주의에 빌붙어 온 독재자일 뿐이고, 서방은 카다피의 독재와 학살을 도와준 공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