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옹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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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개릿 데일은
이러한 질문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생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에 설명해보려고 한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 생태 및 환경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 이론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중요한 책이다.
무엇보다 소련과 동구권에서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맹종에 가까운 목적론적 기계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국가 과학정책을 수립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 특히 루카치와 그람시는
이러한 엥겔스에 대한 평가는 마르크스주의자인 노먼 레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후 마르크스 이론을 프로메테우스주의, 즉 생산력주의, 또는 생산력지상주의로 곡해하는 길로 빠져버렸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 이론은 생산력의 무한 증대가 가능하며 그것이 아무 문제없다고 옹호했으며 마르크스의 저작에선 자연에 대한 무관심이 일관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부정한 폴란드의 철학자 콜라코프스키는 1968년
이후 앤소니 기든스는 《사적유물론의 현대적 비판》
이러한 비판은 테드 벤튼, 라이너 그룬트만, 존 클락, 미카엘 뢰비 등과 같은 다양한 생태사회주의자들이 각자의 표현으로 마르크스가 자연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덧붙임으로써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동구 수정주의자들이 자연변증법을 거부한 이유는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성하는
이처럼 변증법을 주체의 활동에
이렇게 귀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자연의 객관적 변증법을 인간의 실천과 대립시키고 동시에 실천의 능동성을 인간의 의식적 계기에서 찾기 때문에 실천을 유물론적으로 파악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 외부에 자연자체가 존재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 즉 외적자연의 선차성을 승인하는 것이고 이것은 유물론의 전제조건이자 최초의 노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엥겔스가 주장한 자연변증법은 자연 자체의 발전과 역사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인간적, 사회적 실천의 규정적인 계기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을 사회적 실천에도 일관되게 적용하면, 실천의 근거를 주관적 측면이 아니라 객관적인 물질적 관계속에서 찾고 그 결과 사회역사의 운동을 물질의 한 운동형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세계관의 토대를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 마르크스 이론에서 자연을 이해하는 훌륭한 길라잡이다.
스탈린 정권 아래에서 자연 문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