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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옹호하며

지난주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개릿 데일은 ‘경제 성장이 지구를 죽이는가’에 대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의 의미와 마르크스주의와 제2인터내셔널, 스탈린주의에서 생태문제를 어떻게 설명했는가에 대한 청중 질문이 있었다.

이러한 질문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생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에 설명해보려고 한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 생태 및 환경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 이론의 올바름을 입증하는 중요한 책이다.

“변증법이란 자연과 인간, 사회 및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법칙과 발전법칙에 대한 과학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증법적 운동 법칙을 자연 그 자체에 적용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소련과 동구권에서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맹종에 가까운 목적론적 기계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국가 과학정책을 수립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 특히 루카치와 그람시는 (비판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엥겔스에 대한 평가는 마르크스주의자인 노먼 레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엥겔스주의는 스탈린 시대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바로 이어졌다 … 역사에서는 정해진 발전 방향이 존재한다고, 예정된 역사 발전 단계에 따라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엥겔스주의는 소련이 역사의 완성 단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 스탈린 시대에 온 세상이 마르크스주의라고 이해했던 것은 사실은 엥겔스주의였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후 마르크스 이론을 프로메테우스주의, 즉 생산력주의, 또는 생산력지상주의로 곡해하는 길로 빠져버렸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 이론은 생산력의 무한 증대가 가능하며 그것이 아무 문제없다고 옹호했으며 마르크스의 저작에선 자연에 대한 무관심이 일관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부정한 폴란드의 철학자 콜라코프스키는 1968년 (1978년 영국에서 출판)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에서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 안에 있는 생산력주의를 제기했다. 그는 정확하게 프로메테우스주의를 정의하지는 않았으나 자기창조자로서의 인간의 무한한 능력 신뢰, 전통과 과거 숭배 경멸, 역사를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아실현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서 프로메테우스주의적 기원을 찾았다.

이후 앤소니 기든스는 《사적유물론의 현대적 비판》(1981)에서 콜라코프스키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기든스는 이 책에서 “계급체계로 표현되는 인간의 착취적인 사회적 관계의 전환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심이 자연의 착취로 확장되지 않은” 점을 논증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프로메테우스적 태도’를 지목했다.

이러한 비판은 테드 벤튼, 라이너 그룬트만, 존 클락, 미카엘 뢰비 등과 같은 다양한 생태사회주의자들이 각자의 표현으로 마르크스가 자연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덧붙임으로써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동구 수정주의자들이 자연변증법을 거부한 이유는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성하는 ‘주관’이 없이는 ‘자연’은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과 분리된, 독립된 세계는 없고 모든 사물은 인간의 사회적인 주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 지식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변증법을 주체의 활동에‘만’ 관련시키는 것, 주체의 의식적 계기에‘만’ 관련시키는 것, 또 반영론을 부정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실천관은 변증법을 사회 역사적 영역으로 한정시키고 ‘자연 자체’의 변증법적 운동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귀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자연의 객관적 변증법을 인간의 실천과 대립시키고 동시에 실천의 능동성을 인간의 의식적 계기에서 찾기 때문에 실천을 유물론적으로 파악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 외부에 자연자체가 존재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 즉 외적자연의 선차성을 승인하는 것이고 이것은 유물론의 전제조건이자 최초의 노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엥겔스가 주장한 자연변증법은 자연 자체의 발전과 역사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인간적, 사회적 실천의 규정적인 계기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을 사회적 실천에도 일관되게 적용하면, 실천의 근거를 주관적 측면이 아니라 객관적인 물질적 관계속에서 찾고 그 결과 사회역사의 운동을 물질의 한 운동형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세계관의 토대를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 마르크스 이론에서 자연을 이해하는 훌륭한 길라잡이다.

스탈린 정권 아래에서 자연 문제를 ‘진정으로’ 취급하려는 마르크스 이론가들이 숙청됐고, 다른 한편 스탈린주의의 기계적 변증법을 비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연’이라는 문제를 기권 혹은 거부했다. 이런 역사는 이후 마르크스 이론 내에서 ‘자연’에 대한 이론의 빈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마르크스 진영 내의 지난한 역사적 궤적은 존 벨라미 포스터의 《마르크스의 생태학》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단, 내가 알기로 한국판은 오역과 비문이 많기 때문에 주의하시기를 바란다(오역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wwwww76@hanmail.net로 문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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