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방한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서울 도심에 울려 퍼졌다. 민중공동행동·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이 공동 주최한 ‘NO트럼프 범국민대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방한 하루 전에 트럼프는 이란 바로 코앞인 카타르에 첨단 F-22 전투기를 배치하며 중동에 긴장을 더 부추겼다. 호전적인 제국주의자답다.

그런 트럼프를 환대하고 나선 문재인 정부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방한 당일에 청와대 인근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공무원노조와 법외노조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전교조의 농성장을 철거해 버렸다. ‘트럼프 오시는 길’을 청소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찰은 갑호비상령을 발동해, NO트럼프 시위대가 세종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그러나 정작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는 우익 시위대가 트럼프가 지나가는 세종로 양편에 도열해 트럼프를 맞이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방한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드높았다.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NO트럼프 시위대는 “대북제재 중단하라”, “평화위협 규탄한다”, “사드 철거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집회를 힘차게 시작했다. 후덥지근한 날씨도, 멀리서 들려오는 우익 시위대의 메아리도 기세를 꺾지 못했다.

집회 시작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 같은 장소에서 ‘문재인정부 노동탄압 규탄! 구속자 즉각 석방!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결의대회’가 열렸다. 그 집회에 참석한 건설, 공공, 공무원, 화섬, 서비스, 대학노조 등을 비롯해 대리운전노조, 기간제교사노조 등 노동조합들이 5시에 열린 NO트럼프 집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노동자연대, 민중당 등 여러 진보·좌파 단체들이 트럼프 규탄 집회에 모였다.

대회사로 집회의 문을 연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트럼프를 규탄했다.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 폭격을 자행하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정치 공작으로 정권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이란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중동 민중들에 전쟁의 위협과 긴장을 높이는 등 미 제국주의 정권들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제국주의 작태는 한반도에서 지금 다시 한 번 구현되려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약속해 놓고도 대북 제재 존속·강화를 위협한 트럼프를 비판하며 북·미 합의 이행 등을 촉구했다. 이어서 발언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박현동 위원장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트럼프의 방한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곧이어 시위대는 을지로·청계천·종로 등 서울 도심을 누비며 “세계 곳곳의 평화 파괴하는 트럼프 규탄한다”, “No Trump! No War!”, “한반도 내정간섭 중단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도 시위대의 구호를 주의 깊게 듣고, 시위대가 나눠 준 ‘No트럼프’ 손팻말을 함께 들었다.

광화문사거리에 도착한 대열은 사회자의 힘찬 발언과 함께 본대회를 시작했다. “전 세계 민중을 대상으로 ‘화염과 분노’, 전쟁 위협을 일삼는 상습협박범이 누구인가? 이란 말살 운운하면서 베네수엘라 우익 쿠데타 지원하는 민주주의 파괴범은 누구인가? 무슬림과 이민자들, 여성과 성소수자들, 난민들을 배척하면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자가 바로 트럼프 아닌가? 트럼프에 항의할 이유가 이토록 많고 많다.”

본대회 첫 발언에 나선 〈노동자 연대〉 김영익 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트럼프 때문에 전 세계가 위험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세계 우익들이 고무받고 있다. [트럼프 환영 집회에 나선] 우리공화당보다 더한 자들이 트럼프를 보고 따라하려 하고 있다.”

이어서 김 기자는 트럼프의 이주민 배척, 제국주의 긴장 강화, 대북 제재를 규탄했다. 비록 트럼프가 내일(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싱가포르에서 악수하고 하노이에서 뒤통수 치는” 트럼프와 미국 권력자들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김 기자는 “미국은 최강대국이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권력자들이 패권 전략을 놓고] 분열해 있기도 하다”면서, “진정한 평화는 노동자 서민 손으로 직접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인종차별의 아이콘”

이어서 발언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트럼프의 인종차별과 이주민 배척을 집중 비판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 인종차별의 아이콘이다. 트럼프는 당선 초부터 무슬림 입국을 금지[했고], … 이민자 권리는 줄이고 미등록 이민자에 대한 사면을 거부했고, 단속·추방을 강화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비극이었다. 트럼프가 집권 이후 혐오 범죄가 조장돼,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가 늘고 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런 트럼프와 꼭 닮은꼴인 남한 우파들도 비판했다. “이주노동자에 차등 임금 지급하겠다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황교안은 즉각 사과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이 다른 나라에 퍼지게 해서는 안 된다. …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자!”

사회자도 “환대받아야 할 사람은 트럼프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난민, 성소수자”라며 연대의 목소리를 보탰다.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 이종회 위원장도 연단에 올랐다. 사드에 맞선 성주 주민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염원 배신과 미국 제국주의와의 협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사드는 분명 미국의 안보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대중국 봉쇄이건만, 언론도 미쳤고 정치권도 미쳤고 다 미쳐서 결국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사드를 다 설치하고야 말았다. [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온갖 법률을 위반하고, 거기에 항의하며 싸우고 있는 시민들을 무참하게 탄압하고 짓밟았다. … 연대의 힘이야 말로 미국을 쫓아내고 진정으로 자주와 평화를 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당 권오민 대표는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트럼프를 비판하며 트럼프에게 평화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대가 높았지만 … 전쟁 연습은 이름만 바뀐 채 계속되고 있고 아무 것도 [변화]한 것이 없다.

“트럼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DMZ에서 만난다면 아주 흥미로울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는 DMZ를 가리키며 ‘저것이 진짜 국경이다, 아무도 통과하지 못한다’고 망언을 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민족 분단의 아픔, 그 아픔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이다. … 뒤로는 전쟁을 강요하고 앞에서는 평화를 원하는 척하는 트럼프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반도에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청년민중당 김선경 대표는 ‘미국의 군사기구에 불과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대북 제재는 유엔 결의와 국제 사회와의 약속 운운하며 강행하지만 정작 1975년 유엔의 유엔사 해체 결의안은 이행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모순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발언한 ‘감만동8부두 미군부대 세균무기실험실 추방 남구지역대책위’ 김은진 공동대표는 미국이 부산에서 벌이는 세균 실험을 규탄하며, 미군 실험실 철거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힘찬 트럼프 규탄 구호와 함성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사회자의 발언처럼, 이 집회는 “트럼프에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싸우는 민중의 규탄 목소리를 들려 주며 … 트럼프에 맞서 싸우는 전세계 민중에 연대를” 보낸 자리였다. 앞으로도 한국의 진보·좌파는 트럼프와 지배자들이 부추기는 제국주의 긴장 강화를 규탄하고 투쟁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트럼프에 보조를 맞추며 민중의 평화 염원을 배신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도 더 커져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