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분위기를 흠뻑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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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인종 학살 멈춰라!” “라파흐 공격 중단하라!”
봄기운이 완연한 3월 23일 토요일 2시, 광화문 교보문고 정문 앞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렸다. 재한 팔레스타인인, 아랍인들과 국내 단체 41곳이 함께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집회였다.
한국인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미국인, 유럽인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연령대도 다양했는데, 대학들이 개강한 이후라 대학생과 유학생의 비율이 더 늘어난 듯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을 지나는 여러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집회를 지켜봤다.
이날 집회는 이스라엘의 라파흐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열렸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라파흐로의 군사 작전 계획을 이미 승인했다”며 “전력을 다해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이스라엘군은 지난 5개월간 3만 1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죽였다. 가자지구 주민 약 250만 명 중 재앙적 굶주림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도 110만 명에 이른다.
라파흐 공격은 더 끔찍한 재앙을 낳을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의 알시파 병원을 공격하며 야만성을 다시금 드러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로부터 오는 압력을 의식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오로지 미국과 서방의 막대한 지원 덕분에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데, 미국과 서방은 그 지원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전날 미국은 휴전의 “긴급한 필요성”을 언급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그 결의안은 하마스의 포로 석방을 휴전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등 이스라엘의 라파흐 공격을 사실상 허용하는 결의안이었다.(그 결의안은 러시아,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끔찍한 만행을 규탄하며,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 친서방 정부들을 규탄했다.
첫 발언을 한 재한 팔레스타인인 유학생 나리만 씨는 이스라엘의 병원 공격을 규탄하며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들춰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병원과 의료 시설들을 계속 폭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폭탄이 실수로 떨어져서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얘기합니다.
“오늘 아침 알시파 병원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부상자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병원에서 나오기를 거부한 의사 무함마드 자헤르 씨를 살해했습니다. 민간인들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것이 과연 실수란 말입니까?
“미국은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받을 항구를 건설한다며 팔레스타인인들이 묻혀 있는 건물 잔해를 자재로 쓰고 있습니다 … 미국은 전쟁 범죄를 규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자신도 인종 학살의 공범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서 빛을, 희망을 봅니다. 이렇게 매주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서 5개월이 넘도록 집회에 참석하고 계신 여러분이 바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3월 21일은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아랍 지역의 ‘어머니의 날’이기도 하다. 이에 자녀들과 함께 지난 수개월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가해 온 이집트인 활동가이자 의사인 모나 씨가 팔레스타인인 어머니들과 연대하는 발언을 했다.
“저는 뱃속에 아이를 9개월 동안 품었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 어머니들은 [가격이] 20센트도 하지 않는 총알에 아이들이 산산조각난 시체가 되는 고통을 매일매일 겪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인구의 49퍼센트는 여성입니다. 가자지구에는 5만 명이 넘는 임산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임산부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크나큰 고통과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감옥에는 4천 명이 넘는 여성과 여성 청소년이 갇혀 있습니다.
“어머니로서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에게서 ‘엄마, 배고파’라는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배고픔과 굶주림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 모든 아랍 정부의 배신 행위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나 씨는 “어머니를 죽이지 말라” 하는 구호를 힘 있게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집트인 알리 씨는 가자지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정부들의 엄청난 위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됐다고 지적했다. 알리 씨는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아랍 정권들도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학살에 모든 아랍 정부가 협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입니다.
“지난 5개월 동안 여기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해 온 우리의 구실이 중요합니다. 연대에 나선 전 세계 사람들의 구실 또한 중요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연대합시다.”
사회자는 완연해진 봄기운만큼 팔레스타인에도 자유, 정의, 평화의 기운이 깃들기를 바란다며 행진의 시작을 알렸다. 참가자들은 명동을 거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며 거리에 팔레스타인 연대의 기운을 퍼뜨렸다.
따뜻한 날씨에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팔레스타인인과 한국인뿐 아니라 이집트인 어린이도 함께 구호를 선창하며 행진을 이끌었다. 행진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행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많은 행인들이 주최 측 활동가들이 나눠 주는 리플릿을 받아서 읽었고, 리플릿을 받은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행진인지 설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행인, 관광객, 주변 상점의 직원 등 가리지 않고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최 측이 나눠 주는 팻말을 받아, 행진 대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행진의 분위기는 명동 거리를 지날 때 가장 고조됐다. 거리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높이 들며 , 함께 구호를 외쳤다. 명동 거리를 가득 메운 행인들이 행진 대열을 주목했고, 일부는 행진에 합류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지지를 흠뻑 느낄 수 있는 행진이었다.
행진이 끝나고 미국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한 미국인 유학생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했다.
“오늘처럼 대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내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경각심을 갖고 집회에 참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매우 좋았습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프랑스인 유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이 집회를 우리의 일로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행동은 수많은 어린이와 여성, 남성 수천 명을 살해하는 명백한 인종 학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에 맞서 연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3월 30일(토) 오후 2시에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많은 동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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