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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
“진보의 대의를 죽이는 통합을 인정할 수 없다”

이 글은 김소연 전 기륭전자분회장이 진보매체에 기고한 글이다.

정확히 15년 전이었다. 한나라당이 한미FTA를 날치기 처리했던 것처럼, 12월 26일 새벽 김영삼 정부와 신한국당은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에 항의해 민주노총은 연일 전국적 총파업을 벌였다.

한국노총 사업장의 조합원이었던 우리는 파업 동참은 못 하더라도 리본이라도 달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노조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리본 달기를 폐기하자 조합원들은 위원장을 불신임하고 새 집행부를 선출한 후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96~97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이렇게 노조를 민주화하는 기폭제 구실과 함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획기적 계기가 됐다.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라고 손짓했고,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늘 차악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아무리 기다려도 최악을 물리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죽 쒀 개 주는’ 시간만 흘러갔다. 가끔 정말 최선에 가깝다는 정당과 후보가 승리해 우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역시나 결과는 참혹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우리 사지를 결박했다. 침략을 반대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우리에게 파병을 강요하고 더 큰 세력을 위해 곳간의 문을 여는 것도 모자라 안방 문도 내 주자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죽 쒀 개 주는 일 그만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자고 했다.

96~97 총파업을 힘차게 진두지휘 했던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내고 대선용 조직인 ‘국민승리 21’이 4년 만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2004년엔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했다.

지금도 나는 그날의 설레임을 잊지 못한다. 2004년 노동절 전야제 때 우리의 후보들이 당당히 국회의원이 되어서 노동자들 앞에 섰다. 아~ 우리도 할 수 있구나! 뿌듯한 마음 가득 헤벌쭉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동지 하나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을 정도다.

지역에서 돈 내고 몸 대면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휴가 내고, 주말 반납하고 밤마다 민주노동당 이름을 입이 부르트도록 알리며, 무상교육·무상의료가 가능하다고,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정말 발에 땀나도록 뛰어 다녔다.

그 결과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고 믿는다. 우리의 땀과 노력으로. 그리고 이제는 지역구 국회의원, 지자체 일꾼들을 대거 배출하는 당이 되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투쟁하는 정당의 모습이 사라졌다. 당원들의 발품 손품을 믿고 나서는 당풍이 약해졌다. 그리고 오직 의석수를 늘리는 일만 채워졌다. 노동자·서민을 위해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릴 뿐, 원외 투쟁에는 점차 무뎌지고 있었다.

원외 투쟁

분당으로 인해 당뿐만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아픔을 겪어야 했다. 많은 대중들에게 ‘너희도 기성 정당과 똑같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노동자·민중의 진보정치는 다르다는 희망을 세우기 위해 진보정치의 대통합이 불가피하고 절실했다. 부러진 뼈가 붙으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민주대연합과 이름 자체가 다른 ‘진보 대통합’이 추진되면서 기대가 부활했다.

‘이제는 제대로 해볼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들이 피어났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상했다.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고, 보이는 것과 속으로 흘러가는 것이 달랐다.

그동안 나뉘어졌던 진보정당, 진보 단체, 개인 들이 크게 하나로 통합될 거라 기대했는데, 갑자기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심각한 논쟁이 있었고,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은 부결됐다. 그런데 부결된 참여당과의 통합이 진보대통합을 위해 구성됐다는 통합연대와 함께 갑자기 급물살을 타며 추진됐고, 통합 선언 기자회견까지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결과 진보대통합은 사라졌다. 진보 소통합을 빙자해 노동·계급·민주·운동이라는 진보정치가 출세와 당선으로 바뀌었다. 터무니없이 자유주의를 진보라고 하는 희한한 상황이 도래했다.

‘참여정부 10년을 계승하겠다’는 참여당! 참여당이 계승하겠다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은 우리 노동자·민중에겐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우리는 죽어도 잊을 수가 없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나 싸웠지만, 1997년 IMF가 오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노동법 개악이었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시작됐음을. 그래도 우리가 기대했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총파업 투쟁으로 막았던 그 노동법을 밀어붙여 통과시켰고, 정리해고법·파견법·비정규직법 등 3대 악법이 도입됐음을.

절박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농민들을, 대추리를, 대우자동차 노동자를 경찰력으로 짓밟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음을.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의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감옥에 가고 공장에서 쫓겨났는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나 역시 2005년부터 기륭전자 투쟁을 하면서 노무현 정권에 의해 구속됐고,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1천8백95일이라는 긴 시간을 투쟁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투쟁을 하게 만든 가해자와 새 세상을 꿈꾸며 피와 땀으로 일궈온 진보정당이 통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쳐 왔고 그 과정에서 무상급식을 주장해 왔다. 많은 대중이 그게 가능하냐고 했고 기성 정당들도 비웃었다. 하지만 뚝심 있게 밀고 온 결과 아직 부족하지만 무상급식은 실현됐다. 바로 이런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와 어용의 구별이 사라진 현장에서 실리를 앞세운 노사 협조주의가 생겨나듯, 파리를 보고 새라고 하는 것과 같이 자유주의를 진보라고 믿는 사람이 다수라는 기이한 민주노동당이 됐고, 이제는 민주적 절차도 없이 내리 먹이기식 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는 서러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호소했다.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당 대의원대회에 가서 선전판을 들고 서 있었을까? 오직 민주노동당의 민주와 노동이라는 그 첫 마음을 지키자는 것 하나뿐이었다.

첫 마음

그런데 이제 모든 희망이 타락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김주익과 곽재규, 배달호, 이해남 열사의 죽음이 저렇게 선명한데, “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싸늘하게 우리를 비웃던 그 웃음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이제 권력의 맛을 봐 더 교활하고 또 교활할 저들, 이익을 위해 대의를 언제든지 헌신짝으로 만드는 저들과 연대의 친구도 아니고 세상을 바꾸는 길의 동지가 되자고 한다.

진보는 그 중심에 계급이라는 말을 품고 있다. 한국에서 진보는 반미·반제라는 것을 품고 있다. 진보정당은 거리에서 저들이 쳐 둔 선을 넘고 법을 넘어 나가는 것이다.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는 정광훈 전 의장님의 말을 정치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길이 과연 그 길을 걷고 있는가. 바리케이트 저편에서 권력을 휘두르다 실추한 이들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 과연 진보라는 말로 가능한 것인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능욕을 당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진보적 정치세력화라는 말 자체다.

혹자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자고 한다. 진보정치가 커진 것이라 한다. 심지어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면 우리도 그들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 꼼수와 위선의 정치를 하지 말자고 만들었던 민주노동당 아닌가? 그때 그때 소신이 바뀌는 치졸한 소인배 정치를 하지 말자고 만든 진보정당 아닌가?

‘승리’를 위해서라며 민주와 어용을 가르는 선을 지워 ‘실리’를 가장한 노사 협조주의와 어용노조가 판을 치게 만들었던 민주노조의 역사처럼, 자칫 진보정치가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이 보여 나는 두렵다. 진보정치에 대한 설레임이 오욕으로 바뀌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꿈을 근본에서 부정하는 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부정의 대상이다.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한나라당의 다수를 앞세운 한미FTA를 인정할 수 없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에 담긴 노동자·민중의 대의를 죽이는 잘못된 통합을 죽어도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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