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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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서방의 후원을 받은 시온주의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인 수만 명을 대량 학살하면서, 팔레스타인인 75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났다. 아랍인들은 이 만행을 “나크바[재앙]”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
○ 1959년 야세르 아라파트가 주도해 파타가 결성됐다. 파타는 1960년대~70년대 팔레스타인 저항을 이끈 주요한 그룹이었다. 지금 파타는 마흐무드 압바스가 이끌고 있다.
○ 1967년 이스라엘이 3차 중동 전쟁에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연합군에 승리했다. 이 때문에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역이 이스라엘에게 점령돼,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가혹한 통치를 받게 됐다.
○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미국의 중재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었다. 이집트가 아랍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고 친미 국가로 돌아서면서,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지 않던 아랍국가들의 합의도 깨져 버렸다.
○ 1987년 이슬람주의 조직인 하마스가 결성됐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에서 파생된 하마스는 훗날 오슬로 협정으로 파타가 저항을 포기한 후, 저항 운동의 주요한 구실을 맡을 수 있었다.
○ 1987년 팔레스타인의 대규모 항쟁인 1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이때 팔레스타인 민중은 총파업, 보이콧, 세금 납부 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인티파다는 어느 특정 그룹이 주도한 게 아니었고, 지역 의회와 지역 조직 들이 이끌었다.
○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세워졌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난민 귀환권을 사실상 포기해야 했고, 궁극적으로 서안지역의 많은 곳을 이스라엘이 차지할 수 있었다.
○ 1994년 오슬로 협정 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자치정부에 치안과 자치권을 이양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서안지역에서만 통치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 1995년 오슬로 2 협정을 맺으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문제 삼으면서 팔레스타인의 무역과 관세 징수도 통제하게 됐다.
○ 2000년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나, 5년 동안 지속됐다. 이번 항쟁에는 파타에 대한 기층 민중의 배신감도 바탕에 있었다.
○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하마스가 압승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마스를 제거하려고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 2006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타격하려고 레바논을 침공했지만, 레바논 민중의 영웅적 저항에 부딪혀 실패한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 2008~09년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를 위해 가자지구를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가자지구 주민 1천4백여 명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약화시키는 데 실패한 채 위신이 추락하며 결국 철수해야 했다.
○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한 아랍 혁명이 아랍 전역으로 확산했다. 이집트 혁명으로 친미 독재자이자 이스라엘에 타협해 온 무바라크가 퇴진했다.
○ 2012년 11월 14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기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