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과 긴축의 실패를 보여 준 키프로스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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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리스와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키프로스 위기에 쏠렸다. 주류 언론은 이렇게 주장한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소련 해체 후 성장한 재벌 세력)의 자금 세탁으로 굴러가는 키프로스 경제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러시아의 ‘큰손’들이 런던 주택 시장이나 축구 구단에 투자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그들이 키프로스 은행들에 돈을 맡기면 “카지노 경제”라는 식으로 말하는 셈이다.
사실 키프로스 사태는 유로존 위기가 확대되고 있고 긴축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에 지급한 이른바 ‘구제’금융이 성공을 거뒀다면 키프로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키프로스에 필요한 돈은 어림잡아 그리스에 준 2차 구제금융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자구책
그러나 그 구제금융들은 실패했다. 그리스는 6년째 침체를 겪고 있고 포르투갈은 트로이카가 정한 목표를 달성할 시한을 1년 연장 받았다.
이것이 키프로스에 유례 없는 “자구책”을 강요한 진정한 이유다.
지금까지 은행들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임금과 연금과 복지가 삭감됐다. 은행 구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공격 대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저축으로까지 확장됐다.
우파 대통령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는 지난달 대선에서 당선했다. 독일과 프랑스 지배자들은 분명 그가 좌파의 선거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노동자들을 잘 공격하리라 봤을 것이다.
그들은 틀렸다. 키프로스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급진화하고 있다.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에 있는 의사당 앞 시위에 참가한 한 중년 부부의 사진은 키프로스 노동자들의 정서를 아주 잘 보여 준다. 그 부부는 “유로존 반대”, “문제는 자본주의다. 멍청이들아” 하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이런 아래로부터 압력에 밀려 키프로스 의회는 [처음에 제시된] “구제안”을 거부하고 유로존 관료들은 협상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트로이카(IMF·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와 키프로스 대통령은 여전히 긴축안을 도입하려고 애쓴다.
키프로스의 은행 노동자들이 이 계획에 맞서는 파업을 벌이자고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좌파는 긴축과 빈곤에 맞서는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채무 이행 거부, 은행 국유화, 유로존 탈퇴 요구를 통해 좌파는 대중적 지지를 얻고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키프로스의 기존 좌파들은 주저하고 있다.
키프로스 공산당은 한 달 전까지 키프로스 정부를 운영했다. 공산당은 ‘정당 정치 지도자 위원회’에 참가해 민족적 단결을 얘기하며 아나스타시아데스와 함께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 정부는 이 위기가 그리스로 “전염”될까 봐 두려워한다. 이 “전염”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리스 정부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반란의 정신이 “전염”되는 것이다.
트로이카는 4월 초 그리스를 방문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대규모 해고하고 현재 가계에 부과한 세율 인상 조처를 연장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스 총리 안토니스 사마라스는 현재 이런 조처를 도입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자신보다 한참 오른쪽에 선 자들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최근 독립그리스당 대표 파노스 카메노스를 만났다. 독립그리스당은 신민당에서 분열해 나온 정당으로 신(新)나치인 황금새벽당과 공조하는 유일한 의회 정당이다. 시리자와 독립그리스당은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키프로스 노동자들이 자랑스러운 투쟁으로 열어 놓은 기회를 낭비한다면 무척 창피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