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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6월 5일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가, SNS에 썼던 몇몇 글이 문제가 돼 물러났다.

우파는 ‘천안함 자폭’, ‘코로나는 미국발,’ ‘한국 대선에 미국 정보 조직이 깊숙이 개입’ 등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한 이래경 이사장의 비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이래경 이사장의 주장을 집중 공격했다.

〈조선일보〉는 이래경 이사장이 천안함 희생자를 모욕하고 “왜곡된 반미친중 발언”이나 하는 “음모론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내 비명계 정치인들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당 안팎에서 비난이 쇄도하자 이재명 대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며 물러섰다.

북한에 의한 폭침?

‘천안함 자폭’은 명확한 근거가 없고 음모론에 가깝다. 이래경 이사장 본인도 6월 7일에 쓴 글에서 “자폭”이 “과잉 표현”이라고 인정했고, 천안함 사건은 “원인 불명”이라고 정정했다.

반면, 우파는 천안함 침몰을 북한 소행으로 단정한다. 의도적인 규정이 아니라면 확증편향이다.

침몰 사고 두 달(2010년 5월 20일) 만에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하고 곧바로 대북 제재를 단행했다.

하지만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음을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북한도 자신들의 행위라고 인정치 않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사건 관련 기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 계속 제기됐다.

예컨대 참여연대는 정부가 수거했다는 북한 ‘1번’ 어뢰 부품의 증거 능력에 의문이 있고, 어뢰가 발사됐다는 북한 연어급 잠수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밝혀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연어급 잠수정의 존재에 관한 정부의 말은 이후 “소형 잠수정”이라고 부르는 등 바뀌었다.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는 어뢰 폭발 때 생기는 거대한 물기둥, 생존자들의 고막 손상 같은 증거가 천안함 사건에서는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합동조사단이 내세운 증거는 모두 기껏해야 방증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풀리지 않는 의심들에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조사 결과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을 내세워 대응했다. 그것이 무슨 증거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해 온 전력이 무수하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이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증거를 조작해 전쟁 명분을 만들어 냈다.

정의당은 이래경 이사장의 ‘천안함 자폭설’ 등을 두고 “음모론”이자 “상식 밖의 언사”(대변인 논평)라고 비판했다. 그 자체로는 틀린 지적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 공식 발표(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대선 때는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과 관련해 당시 정부 조사 발표가 국민적 의혹을 온전히 해소하기에 충분치 못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대변인 발표가 있었다.

진보당은 이 이사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우파는 천안함 사건에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해 왔다. 그러나 좌파는 정부가 증거 불충분 상황을 만들어 놓아 지금까지는 원인을 알아 내지 못했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증거 불충분 우파는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믿으라 하지만 그들은 숱한 ‘북풍’을 조작한 전력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사건 배경 체크

사건이 일어난 2010년은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중 갈등과 이명박의 호전적 대북 정책이 맞물리며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던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2009년 서해상의 교전수칙을 기존보다 더 공세적으로 바꿔 놨다. 서해상의 군사력도 증강 배치돼, 천안함 같은 대형 초계함이 북한 코앞에 전진 배치됐다.

그래서 3월 천안함 사건에 이어 11월 연평도 상호 포격까지 그해 서해에서 사건과 충돌이 이어졌다. 점증된 긴장이 충돌을 부르는 악순환이 작동하고 있었고, 설령 천안함 사건이 북한 당국의 소행으로 밝혀져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닌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오바마 정부는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의 ‘위협’을 부각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자국의 전략을 동아시아에서 관철하려고 했다. 오바마는 천안함 사건을 명분 삼아, 악명 높은 후텐마 미 공군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려는 하토야마 당시 일본 정부의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었다.

한국 이명박 정부도 위기 정국을 돌파하는 데 천안함 사건을 이용했고, 무엇보다 천안함 사건을 한미동맹 강화와 군비 증강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사건의 진정한 원인과 상관없이 천안함 침몰은 이명박의 대북 강경책이 실패했음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에 휘말린 한반도의 장래 불안정 심화를 힐끗 보여 줬다.


‘북풍’의 경험

그동안 우파 정부와 우파 일반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묵살하고 정부의 결론을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을러댔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에 남북관계에서 대중을 속이고 조작을 서슴지 않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남북 지배자들이 더러운 공모를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총풍 사건’이다. 1997년 당시 대선을 앞두고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 전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 대북 교역사업가 장석중 3인이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한 측에 돈을 주고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1996년 총선 직전에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격을 벌인 일에도 같은 의혹이 제기됐다. 김영삼 정부가 북풍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북한 측에 요청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영화 〈공작〉이 바로 이 일련의 북풍 공작을 다루고 있다.)

1987년 수지 김 사건도 한국 정부가 조작한 사건이었다. 진실은 한국 기업의 당시 홍콩 주재원 윤태식이 홍콩에서 자신의 처(수지 김)를 살해하고는 처벌이 두려워 월북을 시도하다 실패한 사건이었다. 안기부(국정원의 전신)는 이 사실을 알고도 국내 정치에 이용해 먹을 계산으로 이 사건을 ‘여간첩 수지 김의 남편 납북 기도 사건’으로 진실을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조작 발표를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동안 경찰·국가정보원·군에서 여론 공작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진압 등에서 과잉 진압에 관한 진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한 한국인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주장을 믿지 못하고 각종 음모론과 확증편향이 난무하는 것은 이래경 씨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