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안전은 돈벌이 대상이 아니다:
부대사업 확대 방안, 자법인 가이드라인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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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월 10일 노동자연대가 발표한 성명이다.
세월호 참사로 벌어진 대중 항의와 이런 항의가 선거에 끼칠 영향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박근혜 정부는 선거 직후 의료 민영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는 6월 10일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또, 병원이 자회사를 세워 이런 부대사업을 전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병원이 영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의료 민영화 조처다.
첫째, 외국인 환자 유치를 명분으로 한 조처들(국제회의 시설 운영, 병상 수 확대, 유인 알선 허용 등)은 장차 국내 보험사가 내국인을 특정 병원으로 유치·알선하는 디딤돌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미 한미FTA 등에는 국내 기업이 외국인과 내국인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둘째, 정부는 부대사업 확대가 병원 진료와 관계 없다지만, 병원 측은 이 부대사업을 (노골적이든 간접적으로든) 환자들에게 권할 수 있다. 의학 지식이 부족한 환자들로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러면 병원비가 폭등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예컨대,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병원이 숙박업을 맘대로 할 수 있게 되면,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병원에서 가족을 돌본다. 그런데 병원이 숙박업을 허용하면 이 가족들을 병실에서 쫓아내 숙박 시설로 보내려 할 것이다.
한편, 민간보험사는 얼마든지 이런 부대사업을 보장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 특정 병원과 연결시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전체 병원비에서 민간보험이 보장하는 부분이 절반을 넘어갈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보다 민간보험이 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무 가입제도인 건강보험제도의 정당성이 공격받기 쉽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에는 아무 영향이 없기 때문에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지만 민간보험의 구실을 대폭 확대하면 건강보험 제도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셋째, 병원이 직접 “맞춤형 장애인 보장구 등(의수·의족, 전동휠체어 등)의 맞춤제조·개조·수리”를 해 환자로부터 추가로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각종 규제 완화로 병원 측은 (의학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보장구를 팔아 건강보험 재정을 축낼 수 있다.
넷째, 무엇보다 병원이 병원 건물을 다른 사업주에게 임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처는 황당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것도 어떤 사업자에게 허용할지를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정하려 한다. 법에 명시된 사업 외에는 다 허용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건강보조식품’ 등을 하는 일부 사업자에게는 임대할 수 없도록 규정하겠다고 하지만 건강보조식품의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 정부가 각종 고시 등으로 언제든 그 기준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3월 호텔업자가 의료관광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메디텔’을 허용했는데 이번에 임대업을 허용하면서 메디텔 내에 의원을 개설할 수 있는 조처도 추가했다.
이렇게 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특정 업체가 병원 일부를 빌려 들어와 있는 것인지, 그게 병원이 하는 (의학적 근거가 있는) 사업인지, 특정 업체가 병원에 공간을 임대해준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병원 간판으로 환자들을 불러들여 여러가지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병원이 자회사를 내세워 이런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병원의 영리 행위를 허용하는 것이다.
자회사에 대한 병원의 출자비율을 순자산의 30퍼센트로 제한한다지만, 병원은 순자산의 30퍼센트나 투자한 자회사의 수익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병원 측보다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들의 입김이 강해질수록 병원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병원은 자회사가 운영하는 부대사업의 수익률을 높이려고 이러저러한 합법·편법·불법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용할 것이다. 지금도 병원들은 각종 비보험 진료와 부대사업으로 영리를 추구하고 있는데 영리 자회사 도입은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것에서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은 부대사업에서 제외하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의료 민영화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일부 피해보려는 꼼수일 뿐이다. 지금 추진하겠다고 하는 조처만으로도 의료비 폭등과 의료의 안전 파괴는 불가피하다. 이 끔찍한 계획은 당장 폐기돼야 한다.
의료 민영화에 맞서 6월말 파업을 예고한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해 의료 민영화 저지 운동 진영은 세월호 참사로 규제 완화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이 높아진 지금 고삐를 늦추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