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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가혹행위 ― 근본적 원인과 직접적 원인

한동안 윤 일병 사건을 비롯해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들이 잇달아 폭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국방부는 병영 문화를 개선하고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국방부가 진지하게 이 문제 해결에 나서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군대 안에서 온갖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날까?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한국 군대만의 특수성에 있다고 얘기한다. 즉, 일제와 권위주의 시절의 잔재, 인권 의식 부재 따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학교 폭력”의 경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 주장들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고, 그래서 한국 군대가 좀 더 억압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군대 내의 가혹행위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본질이 다른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미군에서도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사병 2명이 장교까지 가담한 집단 가혹행위를 참지 못하고 잇달아 자살했다. 그리고 미군 당국은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얼마 전 해상자위대 대원이 선임의 지속적인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피해자는 자살 전에 자위대 장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당했다.

군대 내 억압과 폭력은 자본주의 군대의 본질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지정학적 경쟁에 뛰어들어 다른 국가들한테서 자신과, 자신과 연계된 자본가들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또한 국내에서 노동계급의 저항을 막고 계급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군대에서 장교들은 사병들이 다른 나라와 자국의 노동계급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배자들은 군대를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묻지 않고 오직 상관의 명령에만 충실한 폭력 집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와 서해에서는 남북한 군대가 몇 차례 교전을 치렀다. 그때마다 남한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상대방을 공격했다. 비극적이게도 남한의 평범한 청년들이 일면식도 없는 북한의 동년배들을 상대로 살상을 벌인 것이다.

군대는 자국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데도 동원된다. 지난해 철도 파업이 일어나자 박근혜 정부는 주저 없이 특전사 군인들을 대체인력으로 동원해 철도 파업을 파괴하려 했다. 지난 8월 미국 퍼거슨 시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 저항이 크게 일어나자, 퍼거슨 시에 주방위군이 투입됐다.

그러나 멀쩡한 사람을 영혼이 없는 살인병기로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군대는 억압적이고 철저한 상명하복을 강요한다. 이를 위해 지휘관들은 사병들 사이에 위계적 서열 관계를 부추기며 이용한다. 군기를 세우는 과정에서 위계서열에 따라 폭력과 처벌이 일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군대는 사회의 복사판이기에 사회의 모든 질병에 감염돼 있고, 그 열도 대단한 고열이다” 했던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폭력 집단이 존재하는 한, 군대 안팎에서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본적 사회 변혁 과정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폐지하고, 자본주의 군대는 노동계급이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봤다.

실제로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노동자 정부는 첫 포고령에서 군대 지휘관을 사병들의 투표로 선출하도록 했다. 또한 장교의 특권을 모두 폐지했다. 비록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도 개입한 내전으로 러시아 혁명이 처했던 객관적 어려움 때문에 이런 변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불안정과 군대 폭력

최근의 동아시아 불안정과 남북 관계 악화도 군대 내 가혹행위에 악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국방부 장관이 된 이상희는 소위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다 발생한 사고는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흐름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더 강화된다. 당시 국방장관 김관진은 “단순히 사고의 유무와 건수로 지휘관과 부대를 평가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군을 “실전적 전투형 부대”로 전환시키겠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불안정이 커지고 남북관계도 악화하자, “선 조치 후 보고”, “원점 타격” 등이 강조되고 군기는 더욱 세진 것이다. “야전에서는 주로 몸으로 때우는 ‘천리 행군’, 기온 등 날씨를 고려하지 않는 훈련이 늘어나면서 병사들의 피로가 가중됐다.”(〈경향신문〉 2011년 7월 11일). 일선 부대에서는 병사들의 군기를 다잡으려고 닦달했고, 그런 만큼 가혹행위도 더 심해졌을 것이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군 인권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병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구타·가혹행위·언어폭력의 경험을 묻는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 비율은 2005년 국가인권위의 연구용역조사 때보다 모두 늘었다. 그중 구타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9월 2일 포로 체험 훈련 중에 특전사 군인 2명이 사망한 사건도 “실전적 전투형 부대”를 만들겠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망한 군인들이 받은 훈련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미국과 영국 등의 실전을 치르던 군대들이 하고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특전사 간부들은 1991년 걸프전에 투입됐던 영국군 특수부대를 다룬 영화를 보고 자극을 받아 이 훈련을 처음 실시했다고 한다. 미국이 시리아·이라크에 군사 개입을 강화하고 한국군의 파병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는 상당히 불길한 조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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