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양보론은 개악 저지 투쟁의 대의명분을 약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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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은 경실련 자문을 지낸 김진수 연세대 교수안을 토대로 자체 개혁안을 만들려 하는 듯하다. 김진수 교수안은 상한선을 두고 재취업 시 연금 지급을 중단하는 등 고위 공무원들의 특혜를 제한하고 있다. 하한선도 둬 일부 하위직 공무원들의 연금을 인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공무원이 받을 연금 액수로 보면, 김진수 교수의 ‘개혁’안은 새누리당보다 삭감폭이 더 큰 개악안이다. 그는 새누리당 개악안의 재정 안정화 효과가 얼마 안 된다고 비판할 정도로 시장 지향적이다.
김진수 교수는 모든 공무원 노동자의 연금을 15퍼센트씩 삭감하고 심지어 퇴직한 공무원의 연금까지 똑같이 깎자고 제안한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당장 60세로, 이후 65세로 늦추자고 한다. 신규 공무원은 연금이 40퍼센트나 삭감된다.
‘파격적인’ 삭감에 비해 하한선 1백50만 원의 혜택을 보는 노동자는 10퍼센트 정도 밖에 안 된다. 연금이 가장 적은 기능직도 평균 월 수령액이 하한선보다 높은 1백59만 원이다. 몇 년 뒤면 임금이 인상돼 그조차 대폭 줄 것이다.
이처럼 최하층 일부에게 생색을 내며 전체 복지 수준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전 세계 주요 정부들이 써 온 수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논리
문제는 진보진영 내에 이런 양보론을 수용하는 입장이 많다는 것이다. 하위직 공무원 노동자들의 애환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재정 안정화 논리를 절반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투본 소속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김진수 교수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지지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김진수 교수안을 “긍정적인” 안이라고 했다. 이충재 위원장은 노동자연대 공무원모임 등 기층 활동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단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에 서면, 연금을 조금 더 받는 노동자들이 정부에 양보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쉽사리 나아가게 된다. 고위 공무원의 연금을 더 깎는 것은 공평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재정 절감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김진수 교수안을 지지하면서,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연금 급여 삭감은 최소화하고, 중위 공무원부터 누진적으로 줄이는 방식을 모색하자.” 그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총액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노동팀장은 김진수 교수 안보다 좀 덜 삭감하자고 제안한다. 재정 위기론도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고 주장한다. “공무원[평균적인 공무원을 말함 ─ 장호종 기자] 연금을 깎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높이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공무원연금마저 대폭 축소된다면 국민들은 국민연금의 향상을 요구할 근거를 잃게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일부는 양보해야 한다. “기득권층(현재 연금수령자, 고소득공무원)의 적극적인 양보를 통하여 취약한 미래 세대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연금을 ‘상대적으로’ 더 받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공무원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양보한다고 해서 박근혜가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하후상박’을 내세워 정부 안보다 더 나쁜 개악안을 들고 나왔듯이 이런 태도는 저들의 기를 살려줄 뿐이다.
노동자들이 양보한다고 해서 ‘국민적 지지’가 늘지도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려 할 뿐 아니라, 자기 공약인 보육과 고교 무상교육 예산조차 전액 미편성하고 담뱃세 등 간접세를 대폭 인상해 전체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이 모든 것을 재정 절감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재정 적자는 복지 지출이 아니라 경제 불황과 부자 감세 때문이다. 혹은, 미군 기지를 짓고 유지하고 무기를 구입하는 데 쏟아붓는 수십조 원을 복지로 돌려도 되는데 말이다.
따라서 양보가 아니라 단호한 투쟁으로 대중적 지지를 끌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