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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 재산보다 소득에 보험료 부과?: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은 노동자 증세다

박근혜 정부가 조만간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이하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부과체계란 보험료를 어떻게 걷을 것인지를 정한 것이다.(아래 기사 참고)

개편안을 준비해 온 ‘국민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은 지난해 9월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노동자연대〉 117호, 135호에 실린 관련 기사를 참고하시오.)

개편안의 핵심은 재산 규모에 따라 부과하던 보험료를 없애고 소득에 따라 부과하는 보험료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부동산과 자동차 등을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연금, 2천만 원 이하 이자·배당소득 등에는 보험료를 부과한다. 또, 피부양자 인정 기준을 강화한다.

금융소득에 대한 부과를 강화하는 것은 일부 부유층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보진영과 노동자 운동 내에서도 일부 혼란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개편안은 자본가들이 부담해야 할 복지 비용을 임금 수준이 덜 낮은 일부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보험료를 부과해야 할 만큼 재산이 많은 것은 기업주 등 부자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늘려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 한다. ⓒ이미진

정부는 재산에 대한 부과가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며 개편안의 취지를 정당화한다. 예컨대 주거용 주택과 자동차밖에 없는 저소득층 노인이 어지간한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그래서 이들의 보험료는 인하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기업주·부자들의 재산에 대한 세금(보험료)이 너무 관대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첫째,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이 너무 작다. 정부는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고작 14퍼센트만 지원한다. 정부는 부자 감세로 재정 규모를 줄이고는, 쓸 돈이 없다고 엄살을 피운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체에 필요한 의료비를 노동자들이 떠받치고 있다.

2016년에 재정 지원 기한이 종료되는데 정부는 이참에 지원을 줄일 방안도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이번 담뱃세 인상에는 일반재정 지원을 담뱃세로 대체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는 듯하다.(지금은 담뱃세를 거둬 건강보험에 추가로 6퍼센트를 지원하고 있다.)

둘째, 엄청난 재산을 보유한 자본가들이 직장가입자로 분류돼 터무니없이 적은 보험료를 낸다. 이명박이 대표적인데, 재산을 수백억 원이나 보유한 자가 건강보험료는 3만 원도 안 내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바 있다. 이런 편법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인데도 정부는 방치해 왔다.

셋째, 재산이든 소득이든 애당초 모든 부과체계가 불공평한 것도 문제다. 보험료 상한선(월 소득 7천8백10만 원 기준)이 있어서 이건희 같은 재벌 총수나 연봉이 수십억 원씩 되는 CEO들, 지역 유지들과 부동산 부자들에게 커다란 특혜를 주고 있다.

개편안의 초안이 된 건강보험공단의 2012년 보고서를 보면 “사용자 및 경영자 단체의 거센 반발” 때문에 상한선을 없애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자들의 보험료는 계속 인상했으면서 말이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소득을 축소 신고한다. 따라서 건강보험료도 실제 소득에 견줘 적게 내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사실상 이를 방조해 왔다. 양도, 상속, 증여 등에는 아예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바꾼다면서도 이런 것들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부자 감세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큰 부담을 지운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건강보험료에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기업주들이 보험료의 절반을 내도록 했다지만 기업주들은 애초에 이를 고려해 임금을 책정한다.

정부는 의료 이용 증가율보다 보험료 인상율을 높게 책정해 흑자를 만들고는, 재정 지원을 줄일 궁리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산이 아니라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개편안은 진보적이기는커녕 불평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가·부자 들의 ‘소득’은 대부분 재산으로 전환되는 반면 노동자들의 소득은 고작해야 생계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재산 부과 완화는 자본가·부자 들에게 훨씬 큰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줄어든 보험료는 담뱃세, 주세 등 서민 증세로 메우려 할 것이다.

그리고 연금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연금 삭감이나 다를 바 없다. 피부양자 요건 강화는 파렴치한 부자들을 단속하지는 못하면서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은 늘릴 것이다. 개편안은 여기서 더 나아가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에게도 ‘최저보험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등은 정부의 개편안을 반대하고, 오히려 재정 지원 확대와 부자 증세,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과 의무 완화, 보험료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해야 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정부 지원

현재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임금의 6퍼센트를 기업주와 절반씩 부담한다. 즉, 월급이 3백만 원인 노동자는 건강보험료로 9만 원을 낸다.(나머지 9만 원은 기업주가 낸다.)

다른 하나는 기업주들과 중소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소유 재산의 크기와 소득에 따라 부담한다. 이들을 지역가입자라고 한다.

이처럼 부과체계가 나뉜 까닭은 애당초 건강보험이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 등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0년에 들어서야 하나의 건강보험으로 통합됐지만 그 제도는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예컨대 피부양자의 보험료를 면제해 주는 제도는 직장의료보험에만 있는데, 그러다 보니 지역가입자들 중 일부 저소득층은 보험료 부담이 지나치게 크기도 하다.

정부는 통합 전에 지역가입자들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해 왔는데, 통합 이후 이를 차츰 줄여왔다.

2006년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이 이를 다시 전체 재정의 14퍼센트만 지원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기한도 2011년까지만 하기로 했다. (비록 5년 연장돼 2016년에 종료될 예정이지만) 그만큼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져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