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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적용 확대?:
복지와 자본주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업무계획에서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 항목 중 2백여 종을 ‘급여화’(건강보험 적용) 하겠다고 밝혔다.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그동안 병원이 환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환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병원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해뒀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를 추진해 온 박근혜가 노동자들을 보살피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는 말인가? 진보진영 내의 흔한 오해와 달리 복지는 노동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너무 궁핍한 처지로 내몰리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려고 하지만 그들이 다 죽어버리면 착취를 할 수 없다. 게다가 일정한 국가 개입은 경쟁으로 빚어지는 시장의 위기를 피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다시 말해, 복지 제도는 기업주들을 위한 측면도 작지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병원들은 서로 이윤 경쟁을 벌이며 몸집을 불려 왔다. 특히 대형병원들은 수익성이 높은 상급병실과 값비싼 의료기기를 대폭 늘려 왔는데 그러다 보니 일종의 ‘공급과잉’ 상태가 됐다.

물론 실제 필요에 견줘 병실과 서비스가 많아진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많은 상품들처럼 그만한 비용을 낼 수 있는 사람, 즉 유효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경쟁하는 각각의 병원은 이런 몸집 불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대형 병원들의 일부도 상당수의 병실을 비워 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중소병원들은 문제가 더 크다. 지난 몇 년 새 이 ‘과잉 공급’ 문제는 병원 자본가들 사이에 커다란 위기감을 낳았다.

유효 수요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일부 확대하면 경쟁에서 밀려난 병원들이 입은 손해를 보전해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경쟁에서 낙오하는 병원들에게 숨돌릴 틈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는 3대 비급여에(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계획을 발표한 뒤 병원장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보험 적용 때문에 생기는 “손실분을 1백 퍼센트 보전해 주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1980년대 말 이후 민간 대형 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건강보험 제도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 준 덕분이었다.

다른 한편, 이런 조처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병원들의 불만을 살 수 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애써 밀어낸 경쟁자들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조처를 의료 민영화처럼 전체 시장 규모를 키우는 정책 속에서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조처는 결국 복지 비용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자본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그만큼 세금 부담이 커지거나 정부 재정이 악화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으로서는 그 비용을 자본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야 한다.

1970년대 말 이래로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추진한 복지 개혁은 바로 이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제 상황이 나빠질수록 오히려 복지의 총량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배자들은 그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해 왔다. 동시에, 선별적 복지를 강화해 저소득층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고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과 경쟁을 강화시키려 했다.

복지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보장성을 일부 확대하는 한편,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과 재정 지원 축소 문제를 꺼내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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