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양보론과 ‘사회연대전략’,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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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이후 진보진영 내에서 고소득

이런 주장이
사회연대전략의 가장 최신판은
당시 정용건 후보의 선대본부장이기도 했던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임기 중에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조직된 정규직
이 밖에도
물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연대해야 한다는 정신 자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
오히려 박근혜와 역대 정권은
그러니 정부가 추진하는 개악을 저지하고 정책 방향을 돌려놓지 않는 한 그 정부가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훨씬 많은 재정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공격을 저지하고 마지못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려면 기업주

계급투쟁
사회연대전략 제안자들은
진정한 힘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에서 나온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반발에 꿈쩍도 하지 않던 새누리당은 지난해 11월 1일 공무원 노동자 12만 명이 집회에 나온 것을 보고 나서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회 개혁이 이뤄진 시기는 거의 예외 없이 계급투쟁 수준이 높은 시기였다. 지배자들은 양보하지 않았다가는 체제를 위협할 더한층의 저항에 부딪힐까 봐 개혁을 제공해야 했다.
예컨대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후 급성장한 투쟁적 노동운동 덕분에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빠르게 인상되고 노동조건이 개선됐다. 오늘날 민주노총의 토대가 될 민주노조들이 설립됐다. 1973년부터 약속만 하고 이행하지 않던 국민연금 제도가 이때 실시됐다.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던 건강보험제도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확대 시행된 것도 1987년이었다.
유럽에서도 사회복지 제도들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였다. 전후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분출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노동자들의 보편적 이익에 기여할 사회 개혁을 쟁취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지배자들의 고통 전가에 맞선 투쟁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노동자들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경우 자신들에 대한 공격에 맞설 조직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저항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노동자들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연금 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해야 그 동력으로 국민연금도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과 노동자 연대
물론 계급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을 때도 정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복지 확대나 노동조건 개선을
박정희는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고 국민연금 제도를 입안했다. 연금을 실제로 지급하기 전까지는 막대한 기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가 폭등으로 경제가 위기를 맞자 시행 며칠 전에 갑자기 폐기해 버렸다.
또, 정부와 행정기관들은 국회 합의나 제도들, 법률들을 무시하기 일쑤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 삭감을 추진할 때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국민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초연금
의료 민영화는 또 다른 사례다. 박근혜 정부는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영리병원 등 의료 민영화 정책을 시행규칙 개정, 가이드라인 제정 등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불법파견을 금지한 법과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정부는 그 사이에 오히려 법을 개악하려 한다.
한편, 사회연대전략이 어떻게 노동자 투쟁을 마비시키는지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이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5월 6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등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NGO 지도자들이 합의안을 통과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공무원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무산되자 일부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이런
요컨대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나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양보적 합의는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꺾어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
국가와 복지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고용 복지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국가가 중립적이어서가 아니다.
계급투쟁의 압력에 떠밀려 복지와 고용 제도를 일부 개선할 때도 국가는 이를 자본가들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방향을 조정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최우선 목표가 언제나 기업들의 이윤 극대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복지제도나 고용 관련 규제 자체는 자본가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지만, 자칫 과도한 이윤 경쟁이 착취의 원천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에서조차 노동자들이 받은 복지 혜택이 사실은 노동자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됐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입어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복지제도를 대폭 도입했지만 그 비용은 근로소득세와 간접세를 인상해 마련했다. 반면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 등 기업의 부담은 최소화했다.
스웨덴
1987년 투쟁의 여파 속에서 자리를 잡은 한국의 국민연금도 노동자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노후 생계수단이지만 자본가들에게 더 유리하도록 설계됐다. 노동자들이 보험료의 절반이나 부담해야 하고 정부 지원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지역 가입자들에게는 더욱 불리하다.
게다가 노인들이 빈곤에 지쳐 자살하고 있는데도, 쌓아 둔 기금으로 정부는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엄청난 기금을 주식 투자에 쏟아부은 결과 한국의 어지간한 대기업은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거나 대주주다. 기금 관리는 밀실에서 이뤄진다.
건강보험 도입은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병원과 제약회사에 안정적인 이윤을 보장해 주는 구실도 한다. 국내 대형 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것은 건강보험이 안정적인 재원을 공급해 주기 시작하면서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냐 무상복지냐 하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부담을 지워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국가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노동자들이 더 내도
사회연대전략에 깔려 있는 잘못된 가정들
일부 좌파는 사회연대전략을 절반쯤만 반대하는 듯하다. 개혁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결과다. 이런 주장들은 대개 노동자들의 조건에 대한 잘못된 이론이나 인상론적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계급투쟁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
첫째,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가 너무 커져 이제 더는 같은 이해관계를 갖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격차를 키우는 구실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전체 노동자의 임금 몫이 정해져 있다는

정용건
또,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몫을 가져간 것은 기업주들이지 정규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은 함께 오르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 간격은 때로는 더 좁아지거나 넓어지기도 하지만 결코 완전히 반대로 향하지는 않는다. 또, 완전히 같아지지도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경쟁 체제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반면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면 자본가들은 그만큼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 둘 사이의 관계는 정확히 반비례한다.
둘째, 일각에서는 노동자들의 조건이 비슷해져야 자신들이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물론 삶의 동질성은 같은 계급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먼저
앞서 살펴봤듯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건을 지키거나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서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게 되고 그럼으로써 계급의식을 획득하게 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셋째, 그럼에도 최근 노동자 투쟁이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흔치 않다 보니 종종 엉뚱한 데서 패인을 찾곤 한다. 더도 말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벌어진 노동자 투쟁만 보더라도, 핵심적인 걸림돌은 평조합원들의
좌파의 과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하고 승리에 이를 수 있는 전술을 제시하며 기층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연대전략의 문제점을 잘 간파하고 불필요하게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