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파업 예고:
은행은 고금리로 떼돈, 노동자는 실질임금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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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가 9월 16일 하루 파업을 예고하자 친사용자 언론들은 일제히 비난 공세를 폈다. 경제난이 심각한데, 고임금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파업으로 생떼를 쓴다는 것이다.
7월 말에 임단협 교섭이 결렬된 데는 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의견 차가 결정적이었다. 사용자들은 올해 물가상승률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1.4퍼센트 인상을 고집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물가 상승률이 6.3퍼센트인 것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을 대폭 삭감하자는 것이다.
사실 노조의 6.1퍼센트 인상안도 간신히 실질 임금을 유지하는 요구다. 최근 몇 년간 금융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도 물가 상승을 겨우 따라잡는 수준이었다(2퍼센트대).
금융노조는 노동시간 단축(4.5일제)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도 임금 불만과 겹쳐 있다. 임금 총액을 늘리기 어렵다면, 노동시간을 줄여 시간당 임금이라도 올리겠다는 것이다.
장시간노동 자체도 문제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금융 노동자들은 장시간으로 유명한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보다도 1년에 두어 달 정도를 더 일했다.
한편, 은행 노동자들의 고용도 불안정해졌다. 지난 5년간 시중은행 순익이 꾸준히 느는 동안 영업점 549곳이 폐쇄돼, 일자리 7570개가 없어졌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1000명이 늘었다. 정규직을 자르고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채운 것이다. 사용자들은 신규 채용도 줄였다.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은행권 인력 감축의 주된 형태는 정규직을 희망퇴직 형태로 내보내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적게 받는 대신 정년을 연장해 준다며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임금을 대폭 깎아 정년을 보장받는 식으로 실행된다.(최근 대법원은 이런 임금피크제는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윤석열이 긴축의 일환으로 내놓은 공공기관 ‘혁신안’에 대한 반대도 투쟁의 요구다. 혁신안에는 임금 인상 억제, 임금 체계 변경(임금 억제 목적), 공공기관 구조조정(인력 감축 포함), 민영화 등이 담겨 있다.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도 정규직 고연봉을 줄이려는 것이지,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려는 게 아니다.
노동계급 전체의 고통, 공통된 요구
금융 노동자들의 투쟁도 화물연대, 대우조선 사내하청, 하이트진로 운송, 택배 등에서 연쇄적으로 벌어진 생계 방어 투쟁의 일부이다. 본지 독자들은 더 많은 노동자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의 생계비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가 장기 침체 속에서 팬데믹 위기, 기후 위기,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라는 복합 위기를 낳은 것의 결과물이다. 모든 위기가 하나의 근원을 가리킨다.
물가뿐 아니라 가파른 금리 인상도 큰 문제다. 한국은 원화 가치 폭락을 막으려고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속 따라갈 계획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더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고금리 고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금리는 경제를 더욱 침체케 할 것이다.
노동계급 청년 다수가 사회 생활을 채무자로 시작하고 있고, 많은 노동자들이 부족한 생활비를 대출로 메워 왔다. 늘어난 이자 부담에 노동계급 사람들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도 대출 없이 집을 마련할 수 없다.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분양가가 3.3제곱미터당 2820만 원, 부산이 1800만 원에 이른다.
고금리
부동산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노동계급이 기존 주거지에서 밀려나면서 최근 18평 소형 아파트, 도심 외곽 빌라 등 서민층 주거지의 매매가·월세 등이 모두 치솟았고, 서울에서 밀려나는 노동자가 늘면서 경기도 집값이 올랐다.
집과 직장이 멀어지면서 (대중교통(전철) 증설 요구도 커졌지만) 자가용 출퇴근도 늘었다. 그런데 올해 기름값이 폭등한 것이다.
전기와 가스 요금이 이미 인상됐는데, 겨울을 앞두고 한 차례 더 인상이 예고됐다.
이처럼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모든 노동자들이 고물가·고금리로 말미암은 생계비 위기를 겪고 있다.(세 모녀 사망은 이러한 자본주의 위기의 일부 산물이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노동자 임금을 억제해야 이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윤을 위해 재정 긴축, 감세, 공공요금 인상,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동개악 등을 바란다.
고유가 위기를 심화시킬 미국의 대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돕는 것만으로도 위기에 책임이 있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사용자들의 이런 기대에 충실하려고 한다.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생활필수품과 공공요금 가격을 낮추고, 가계대출 금리를 억제하고, 복지 지원을 대폭 강화하며, 임금 억제 정책을 중단하라는 것은 노동계급 공통의 염원이다.
이런 염원을 실현시키려면 저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도 적극 지지해 계급 일반의 투쟁이 벌어지도록 고무해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의 조건 개선이 중소기업·비정규직과 충돌하나?
근래 십 년간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더 나은 노동조건이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의 몫을 일부 빼앗은 결과라고 보는 경향이 늘어 왔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노조 서울 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해 투쟁 지지 발언을 하면서, 임금 인상 요구 지지는 쏙 뺀 것도 그런 경향의 발로일 것이다.
첫째, 앞서 봤듯이, 이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4대 금융지주회사들은 늘어난 가계대출로 지난해 순익이 14조 원을 넘겼다. 올해는 1분기에만 6조 원에 육박한다. 그 이익으로 주주 배당을 늘리고(14.5조 원에서 3.7조 원 배당), 경영진들이 십수억 원 연봉과 스톡옵션 등을 받는 동안,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임금 인상은 억제돼 왔다. 계급 간 불평등이 근본 분단선이다.
노동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의 조사를 보면, 올해 상반기 임금 인상률은 지난해보다 높다. 그러나 인상률은 4~5퍼센트대로, 물가 상승률에 못 미친다. 노동부 조사를 보면, 기업 규모 간 인상률 차이는 거의 없다.
적전 분열
그나마 정유업계, IT, 반도체 등 일부 호황 산업에서 임금이 많이 올라 평균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가장 많이 올랐다는 IT 산업 임금 인상률조차 10퍼센트로, 업황과 고물가 조건을 고려하면 대단한 인상으로 보기 어렵다. IT 노동자들은 자기 직장을 자조적으로 “판교의 오징어잡이배”로 부를 만큼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둘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탓하는 주장은 괜히 그 노동자들을 죄책감과 주눅 들게 해서 자신들의 강점을 약점으로 느끼게 만든다. 금융노조 하루 파업 찬반투표에서 (찬성률은 높지만) 투표율이 예년보다 낮은 것도 “노동귀족” 운운하는 비난에 압박감을 느껴서일 것이다.
셋째, 특권적 노동자층 운운하는 주장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내 몫을 늘리려면 상대의 몫이 더 늘면 안 된다고 보는 경향을 조장한다. 사용자에 맞서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적전분열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부문주의적이고 투쟁회피적인 개량주의자들에 유리하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전체 노동계급의 조건 향상을 위한 투쟁에 함께 나서게 되도록 고무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임금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 투쟁도 지지해야 한다. 현재의 임금 투쟁들은 모두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 공동으로 그 뿌리(이윤 시스템)를 공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