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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게으름과 강요된 혹사:
청년실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

안타깝게도 필자가 이 졸고를 쓰는 동안에 한국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선구자인 김수행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고(故) 김수행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참으로 애쓰신 분이었고, 노동운동을 열렬히 지지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필자도 그의 책과 번역서들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참고했던 글들 중 상당수가 고(故) 김수행 선생님의 손을 거쳐간 글이었다. 약간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고(故) 김수행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필자는 이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졸고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서론: 오늘날의 청년실업

2008년의 세계적 경제공황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오늘, 경제 위기의 고통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악몽처럼 짓누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지배계급은 임금 삭감, 복지 후퇴, 연금 개악 등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해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실업이다. 저명한 좌파 경제학자였던 고(故)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을 인용하자면, “자본주의에서 착취 받는 노동자의 고통은 끔찍하다. 그러나 착취 받지 못하는 고통은 더 끔찍하다.”

특히 오늘날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청년실업이다. 모든 연령대 노동자들의 실업률이 매우 높지만, 청년실업률은 이를 훨씬 웃돌고 있다.i 공식 통계를 보면, 현재 청년실업률은 10퍼센트에 육박하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데, 서울노동권익센터의 발표를 보면 청년층의 실질실업률은 적어도(!!) 30.9퍼센트는 된다.ii 공식실업률은 실업률을 과소평가한다고들 하는데, 예컨대 ‘취업포기자’는 아예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가 된다(실업자는 경제활동인구 중에 실업인 사람만을 지칭한다). 당신이 당장 고정수입원이 없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단기 알바를 뛴다면 당신은 ‘취업자’로 분류된다. ‘취준생’도 실업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물론 얼핏 비현실적인 이런 방식의 실업/취업 규정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약간 쓸모라도 있을지 모른다. 당장의 가용노동력을 얼마나 활용했는지를 보고자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실업자나 노동자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실업 통계는 현실의 참혹함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숫자놀음일 뿐이다.

어쨌든, 아무리 과소평가된 수치를 인용한다고 해도 현재 청년실업 문제가 아주 중대한 문제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제 ‘88만 원 세대’라는 말은 약하다. 사람들은 절망적인 청년들의 현실을 묘사하려고 적어도 ‘3포 세대’같이 패배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말을 쓰곤 한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누구도 이견을 표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이 문제에 관해선 자본과 노동자의 입장이 명확히 갈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려면 청년실업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단해야 할 텐데, 이 역시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국가관료들과 자본가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청년실업은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할 숫자다. 그러나 평범한 청년·노동자의 눈으로 문제를 보자면, 청년실업 문제는 체제가 강요한 가혹함이요, 사람다운 삶의 영위가 달린 문제다. 이 글은 당연히 후자에 적극 공감한다. 동시에 이 관점이 청년실업 문제를 진정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서, 나는 우리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 포장하면서 정부와 기업이 내세우는 ‘해결책’들을 폭로하고 진정한 원인과 대안을 얘기하고자 한다.

정부와 기업가들의 대안: ‘노동시장 구조 개악으로 청년일자리 창출!’

물론 지배계급의 눈으로 봐도 높은 (청년)실업률은 골칫거리다. 이는 경제위기의 징후이기도 하고, 실업 탓에 소비가 위축돼 이윤의 실현이 곤란해지면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도 손해다. 또한 뭐니뭐니해도 자본가들은 노동력을 하나의 ‘생산요소’로(자원으로) 취급한다. 그들은 자원이 남아도는데도 이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면 ‘활용 가능한 최대한의 생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아까워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생산가능곡선’상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잠재 GDP’보다 낮은 수준의 생산이 이뤄졌다. 잠재 GDP와 실제 GDP 사이의 ‘GDP갭(gap)’이 크고, 경제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쉽게 말해, 노동력이 남아도는데도 자본가들은 이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지 못했으니 이윤수준이 기대 이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지배계급도 나름의 방식대로 실업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최경환 부총리가 청년실업문제를 두고 한 말들을 보면 지배계급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어떤 대학생들은 최경환이 “중규직” 발언 등을 했을 때 ‘협박 편지’ 형식의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iii) 최경환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현장과 괴리된 교육 시스템이 청년층 고용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iv 대기업·정규직·유(有)노조·중장년 노동자들과 중소기업·비정규직·무(無)노조·청년·노년 노동자들로 노동시장이 나뉘어져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처지에 놓인 전자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꿰차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이 임금을 너무 많이 가져가서 대기업들이 청년 노동자들을 신규 채용하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전형적인 이간질 논리고 호들갑이다. 한편 ‘현장과 괴리된 교육 시스템’이라 함은 청년들이 너무 많이들 4년제 대학에 다녀서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말하는 것이거나 청년들 개인의 역량을 탓하는 말이다.

얼핏 보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등쳐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청년들 개개인이 눈높이를 맞추면 취업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으니 말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청년실업 문제는 기존 노동계급의 고임금이나 청년들 개개인의 탓인 것 같다.

우선 실업 문제를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주장부터 보자. 실제로 주류경제학의 유력한 일파인 새고전학파(New Classical)의 실물경기변동이론은 실업을 개인들의 ‘합리적 반응’으로 본다. 저명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였던 고(故) 제임스 토빈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꼰 바 있다. “미국에서 실업률이 1978년 5.7퍼센트에서 1982년 11퍼센트로 상승한 현상을 노동자들이 앞으로 실질임금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가를 즐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 이것은 분명 가소로운 해석이지요.”v

또한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의 청년실업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한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청년실업은 근본적으로 경제 위기와 자본축적에서 비롯된 문제다. 개인적 특수성은 이런 요인들을 고려하면 조금도 중요치 않다.

그런데 이보다 더 힘있고 더 위협적인 담론은 전자,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청년실업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박근혜도 최근 대국민 담화문(사실상 협박문)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vi 아쉽게도 좌파 일각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받아들이는데, 청년 실업자를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규정하는 주장 역시 그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가이 스탠딩은 불안정 노동자가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계급이고 기존의 노동계급과 이해관계가 뚜렷이 다르다고 주장한다.vii 그리고 청년 실업자들을 프레카리아트에 포함시킨다.viii 물론 이 이론의 좌파 버전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우파 버전을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근본에서 둘 다 약점이 있긴 마찬가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청년 실업의 근원으로 찾는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단단히 잘못 짚고 있다. 첫째로는 인과관계를 거꾸로 보고 있다. 노동자들의 고임금 때문에 고용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말하자면 임금의 높낮이가 경제상황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력 공급은 ‘독립변수’가 아니고 축적과정에서 노동력의 흡수와 축출에 의해 결정되는 ‘종속변수’이다. 후술할 ‘산업예비군’과 같은 장치,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독점 덕에 임금 수준은 지배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낮게 유지되는 것이 현실이다. “임금 등귀는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토대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더 확대되는 규모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 머물” 뿐이다.ix 그런데 최경환은 이와 반대로 높은 임금이 (자본 역시 필요로 하는) 고용 창출에 방해된다고, 즉 임금 상승이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방해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 주장의 논리는 딱 ‘임금기금설’과 같다. 19세기에 유행한 임금기금설은 임금이 임금 지급을 위해 따로 떼어 두는 일정한 기금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따르면 임금은 “노동자의 고용에 사용되는 기금 총액이 증가하거나 취업 경쟁자 수가 감소할 때만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리대로라면 자본이 더 성장해 임금 기금이 증가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임금 기금의 증가없는 임금 상승은 절대 불가능하다. 즉 임금기금설은 임금 인상에 맞서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했던 것이다.x 이것은 오늘날 지배계급이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완전 판박이다. 이들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본받아 ‘실업급여 축소, 해고요건 완화, 임시직 고용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xi(하나같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과 같은 처지로 몰아넣거나 임금을 직·간접적으로 삭감하겠다는 정책들이다). 즉, 청년들을 고용하고 돈을 주려면 임금 기금이 그만큼 필요하므로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임금기금설의 논리는 사실 말이 전혀 안 된다. ‘임금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기금’이라는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나?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그리고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시피) 사회 전체의 부(富)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차지하는 몫이 더 많아지고 자본의 몫인 이윤이 그만큼 하락한다면, 임금은 얼마든지 상승할 수 있다.xii 사실 존 스튜어트 밀도 스스로 비슷한 이유로 임금기금설은 ‘과학적 근거를 잃었으므로 버려야 한다”고 자기 비판한 바 있다.xiii

오류투성이 이론에 근거한 지배계급 담론은 현실과도 다르다. 실제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에서 청년고용이 딱히 늘지도 않았다.xiv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초임을 삭감한 경우에도 신규 채용은 크게 늘지 않았으며, 오히려 중고령자 고용과 청년고용은 보완적 관계이지 상충관계가 아니라는 연구도 많다. 즉 청년들이 겪는 고충은 노동계급 전체가 겪는 고통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일부다.xv

그런데 지배계급이(그리고 그들의 대표자인 박근혜 정권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형편없는 이러한 분석들을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렇게 청년실업 문제를 노동계급 탓으로 호도하면 노동자들의 불만이 국가와 자본으로 향하지 않게 하는 이데올로기 효과가 있다. 둘째로 지배계급은 이간질과 분열 통치를 통해 (일부가 아닌) 전체 노동계급의 처우를 악화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xvi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고 말하면 기존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함은 물론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미명하에 새로이 취업하게 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저질의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인건비를 쥐어짜면 그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경제 위기에 시대에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에게서 이윤을 한 방울이라도 더 짜내려고 노력하므로, 이간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배계급이 내세우는 이론과 대안이 이렇게나 사악한 것이라면, 좌파는 어떠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대안을 뒷받침하는 분석은 무엇인가? 다행히도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실업이라는 주제를 광범하게 다뤘다. 이하에서는 자본축적과 노동시장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참고로 하면서 청년실업에 대한 대안적 분석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분석: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과 산업 예비군, 그리고 청년실업

우선 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해 논하기 전에 몇 가지 개념을 짚고 나갈 필요가 있겠다. 한 가지 먼저 알아둬야 할 용어는 ‘자본의 구성’이다. 이는 “불변자본[생산수단의 가치]과 가변자본[노동력의 가치 혹은 임금의 총액]”의 비율을 뜻한다.xvii 공정에서 생산수단에 돈이 상대적으로 많이 투여되면 자본의 구성이 높아지고, 노동력에 많이 투여되면 자본의 구성은 낮아진다. 자본의 구성에 변동 없이 축적의 규모가 급속하게 확대된다면, 노동에 대한 수요는 그에 비례해서 증가하며 임금 역시도 상승할 것이다. 또한 “자본의 축적은 프롤레타리아의 증식이다.”xviii

그런데 자본가들의 축적 경쟁은 단지 ‘몸집 불리기’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몸집 불리기도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같은 품목의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에 직면하면, 그들은 “더 많은 상품을”, “더 큰 시장”에서, “자신의 경쟁자들보다 싸게 판매”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을 “확대된 분업을 통해, 기계의 전면적인 도입과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상승”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자본가들이 똑같은 기계, 똑같은 분업을 도입”하여 “우리 자본가의 특권은 오래 가지 않”는다.xix 따라서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경쟁은 자본가들 사이의 하루 이틀의 투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패턴이 된다. 그런데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자본의 구성을 높인다. 즉, 이제 “사령관인 자본가들은 누가 가장 많은 산업 병사들을 떠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서로 다툰다.”xx

사실 이러한 광경은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데, 예컨대 대학생들은 자신의 캠퍼스에서 시설자동화로 인해 경비, 시설관리, 주차관리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될 위험에 처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격화되고, 이에 따라 임금이 낮아지곤 한다xxi.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축적 과정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축출된 노동자들의 집단을 ‘산업예비군’ 혹은 ‘상대적 과잉인구’라고 불렀다. 산업예비군의 발생은 “추가자본이 전반적인 노동수요에 주는 충격”을 “중화”시킨다.xxii 즉, 산업예비군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임금상승이 자본가들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 머무르도록 하는 기제이다. 마르크스의 논리에 따르면 “임금의 일반적인 변동은” 오히려 “노동자 계급이 현역군과 예비군으로 분할되는 비율의 변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xxiii이지, 임금상승 때문에 산업예비군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한편 마르크스는 자본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과잉인구’(=산업예비군)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여기에는 “유동적(流動的: floating)”, “잠재적(潛在的: latent)”, “정체적(停滯的: stagnant)”형태가 있다. 과잉인구의 유동적 형태는 자본의 필요에 따라 축출과 흡수가 반복되는 형태를 뜻한다. 잠재적 과잉인구는 농촌인구와 같이 도시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는 상태에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정체적 과잉인구는 “취업이 불규칙적인 현역 노동자집단의 일부”로, “자본에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무진장한 저수지를 제공”하며, “그들의 특징은 최대한도의 노동시간과 최소한의 임금”이다. 예컨대 오늘날 청년실업자들 중 장기실업자인 일부는 최저임금 수준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긍긍하는 “정체적 예비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형의 과잉인구 외에도, “산업순환의 국면 교체에 의해” “공황 시에는 급성의 형태”로, “불황 시에는 만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과잉인구도 존재한다.xxiv

오늘날의 청년실업은 자본축적과 경제 위기(산업순환의 국면교체) 모두가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청년실업은 부분적으로는 2008년의 공황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세계 자본주의의 침체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종종 과장한다. 그러나 최경환 등이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예산을 편성한다면서 청년실업을 운운하는 것을 그저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장기적인 추세 속에서 볼 때, 오늘날의 청년실업은 자본구성의 고도화에서 비롯한 부분 또한 상당한 듯하다. 우선 오랜 기간 한국기업의 자본의 구성은 꾸준히 높아져 왔다.xxv 이와 동시에(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을 구가해 왔다. “청년실업의 증가는 경제 성장에 따른 고용 효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하락하는 근본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의 고용탄력성(경제 1퍼센트 성장에 따른 고용증가율)은 …… 매우 낮다.” 물론 이 외에도 기업가들이 고용된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신규 채용을 회피해 왔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세가 상당히 장기간 이어졌다는 점을 볼 때, 청년 실업 문제를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2001년부터 2011년 사이 한국의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49.7퍼센트나 증가했지만, 고용률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같은 시기 청년고용률은 44퍼센트에서 41퍼센트로 오히려 하락했다.”xxvi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자본의 구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왔다고 해서 그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즉각 해고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제조업이건 서비스업이건 공정에 신기술이 도입된다고 해서 바로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기술변동에 의거한 구조조정은 많은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우선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는데, 첫째는 계급투쟁이다. 노동조합이 어느 정도 조직화된 곳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도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공하는 케이스가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과 계급투쟁은 구조조정의 성사 여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수다.xxvii 대학생 독자들은 학교에서 경비나 시설관리 업무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더라도(혹은 그런 것을 도입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고용승계를 보장받은 사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둘째로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노동력을 해고하지 않고 신규설비를 가동시킴으로써 생산 규모 그 자체를 단지 늘리려고 할 수 있다. 구성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생산 확장의 유인이 강하다면, 고용이 증가할 수도 있는데, “기술 혁신을 통해 잉여가치를 증가시킨 자본가가 그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생산 규모를 확대한다면 실업자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xxviii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인데 경제 위기로 시장상황이 워낙 안 좋기 때문이다. 물론 위기일수록 경쟁이 심화할 수도 있지만, 2008년 이후 경제가 회복되지 못하고 장기침체 국면이 전개되는 오늘날 자본가들이 그렇게 과감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로 자본가들은 신규채용보다는 기존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을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신규채용은 우선 노동자들을 새로이 교육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다. 또한 자본가들은 그들이 기껏 훈련시켜 놓은 숙련노동자들을 단숨에 내보내기보다는 그 단물을 최대한 빨아먹으려고 애쓴다.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엄청 늘었지만 이들이 마냥 일회용품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xxix 이들 또한 상당수 수년에 걸쳐 한 직장에 붙어서 일하곤 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과감하게 기존의 노동자들을 당장 해고하기보다는 대체로 서서히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하는 방식을 더 선호할 것이다.(물론 그들에게 이른바 ‘경영 상의 긴박한 이유’가 생기면 정리해고를 단행하기도 하지만.) 또한 이러한 방식은 앞서 말한 계급투쟁(노동조합의 저항)이라는 요인에도 대처하기 좋은데, 채용인력 감축이나 자연감소분에 대한 인력 확충을 하지 않는 것이 정리해고보다 대개는 저항에 덜 직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실업문제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신규 채용의 상대적 감축이 꼽히곤 한다.xxx

이러한 요인들을 보면, 왜 하필 ‘청년실업’이 산업예비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본가 계급이 구조조정을 단행함에 있어서 신규 채용 감축과 같이 우회적이고 장기적인 방식을 쓸수록, 기존의 노동계급보다는 청년층에 산업예비군이 집중되기 쉽다. 기존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도 당장에 해고하기보다는 최대한 써먹은 뒤에 떠나 보내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또한 기존에 채용된 노동자 일부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기 때문에 그러한 보호장치가 없는 미조직 청년들과 달리 일자리를 지킬 자기 방어 수단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귀족노조가 일자리를 꿰차고 있어서 청년들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 전체’를 향한 지배계급의 ‘사악한 이간질’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을 잘 방어하고 있는 것이 기존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라는 뜻이다. 또 청년유니온이나 알바노조 같은 조직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청년들도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중장년층’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과 ‘청년층’ ‘실업’ ‘미조직’ 예비 노동자들의 연대는 가능한가?

우리들의 대안: 단결

아이러니하게도 “일반법칙은 노동자계급이 공통으로 겪는 경험의 기초를 이루며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xxxi 청년실업자들과 기존 취업자 모두 ‘강요된 게으름과 강요된 혹사’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또한 〈노동자 연대〉 기사 제목대로, ‘박근혜의 사악한 이간질은 노동계급 전체를 향하고 있다.’ 바로 기존의 노동계급이 겪고 있는 고통의 토대는 청년실업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토대와 동일하다.

지배계급은 청년실업을 빌미로 아직까지는 비교적 안정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하려 든다. 또한 청년실업의 해결책이랍시고 하르츠 개혁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지배자들은 청년층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자들은 그저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그리고 민심의 불만을 수습하는 시늉을 하고자 청년노동을 값싸게 쥐어짜내고 싶어할 뿐이다.

청년층이 ‘산업예비군’으로 존재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도 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임금 노동과 자본》에서 지적했다시피 이는 (일자리를 위한) 노동계급 내의 경쟁을 강화시킨다. 이윤 경쟁에 종속된 자본축적과 경제 위기라는 자본가들이 만들어 낸 재앙이야말로 청년에서 노년까지 모든 노동계급의 악몽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자본가 계급의 책임이다. 이 문제는 단지 노동계급 내의 양보와 ‘사회연대전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단일한 적에 맞서 단일한 전선을 이루고 싸우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해답이다. 이는 기존의 노동자 운동의 입장에서나 청년세대의 입장에서나 이로운 일이다. 예컨대 “그동안 공공기관의 사업·투자가 늘어 총 지출액이 대폭 증가한 와중에도 인력 충원은 억제돼 왔다”는 점을 보라. 인원 충원 억제는 기존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도 노동강도를 높이는 일이었던 만큼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투쟁으로 혁파해야 할 대상이었다. 따라서 공공서비스 확대, 정규직 인력 확충 등의 요구를 걸고 싸우면, 조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동시에 청년실업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xxxii

이 외에도 임금총액을 삭감하지 않으면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는 OECD 최상위권을 달리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체제에 도전하는 동시에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다. 우리 청년/대학생들도 노동자들이 이렇게 맞서 싸울 때 이에 맞물리는 여러 항의운동을 조직한다면 두 투쟁이 갈마들면서 20,30대의 머리를 악몽처럼 짓누르고 있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노동계급이 청년들의 호민관이 되어주고 청년들은 강고한 연대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장그래살리기’를 위해 힘차게 전진한다면 청년/대학생들이 지지를 보내자. 그렇다면 이 글에서 제시한 대안이 결코 공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족일지 모르나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극복이 대안일 수밖에 없다. 이번 경제 위기는 (비록 여전히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떻게는 넘길 수 있지 모른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을 고려할 때,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는 결코 반복되는 경제공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볼 때 지금과 같이 ‘강요된 게으름과 강요된 혹사’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트로츠키의 유언대로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그를 위해 우리는 민주적 참여에 의해 통제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도록 혁명적 정치를 건설하고 강화해야만 한다.

대학 마르크스주의 포럼

청년 실업 ― 기성세대 정규직의 기득권 때문인가?

  • 일시: 2015년 9월 14일 저녁 7시 30분 (날짜가 16일에서 14일로 바뀌었습니다)
  • 연사: 박한솔(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김종현(대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 장소: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백양관 S111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 문의: 010-5443-2395(문자 환영)

후주 및 참고문헌

i 조슬기나, 2015, ‘청년실업에 점점 커지는 ‘실업률 갭’…외환위기 이후 최대’, 〈아시아경제〉 2015-06-01.

ii 김하영, 2015 ‘왜 청년은 실업으로 내몰리나: 청년과 정규직 노동자 사이 이간질에 속지 말라’, 〈노동자 연대〉 151호. 이 수치조차도 주18시간 미만 노동을 하는 ‘불완전 취업자’는 배제한 것이다.

iii 이재훈, 2014 ‘다시 붙은 대자보… ‘최경환 아저씨에게 보내는 협박 편지’, 〈한겨레〉 2014-12-04

iv ‘최경환 “디플레이션 우려… 청년실업 아주 심각”’ 〈한국경제〉 2015-03-04

v Snowdon & Bane, 2009, 《현대거시경제학》, 서울경제경영. 147pg.

vi 허완, 2015,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 〈허핑턴 포스트〉 2015-08-06.

vii 키어런 앨런, 2014,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계급인가 허구적 개념인가?’, 《마르크스21》 14호. 270pg.

viii 조계완, 2010, ‘21세기 위험계급 ‘프레카리아트’–가이 스탠딩 교수 인터뷰’, 〈이코노미 인사이트〉 제 5호.

ix 사이먼 클라크, 2013, 《마르크스의 공황이론》, 한울아카데미, 320pg. 카를 마르크스, 2004, 《자본론》(김수행 역) 1권(하), 비봉출판사, 879pg.

x 리오 휴버먼, 2000,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책벌레. 256~257pg에서 인용 및 재인용.

xi ‘이인제 “독일 하르츠 개혁이 노동시장 개혁 모델”’, 〈한국경제〉 2015-07-28. 하르츠 개혁에 대한 비판으로는 강동훈, 2015, ‘독일*네덜란드 모델의 실상 –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자 간 격차도 줄이지 못한다’, 〈노동자 연대〉 141호.

xii 카를 마르크스, 1999, 《임금 노동과 자본》, 박종철 출판사. 55pg.

xiii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260pg, 허나 부르주아들의 임금체계 정당화 이데올로기는 지속되고 있다. 요새는 노동자 스스로 창출한 만큼의 액수를 임금으로 받는다며 착취를 은폐한다.

xiv 김민경, 2015, ‘임금 피크제 한다고 청년 고용 늘진 않는다’, 〈한겨레〉, 2015-05-27

xv ‘청년과 정규직 노동자 사이 이간질에 속지 말라’. 〈노동자 연대〉 151호.

xvi 김하영, 2015, ‘박근혜의 사악한 이간질은 노동계급 전체를 향하고 있다’, 〈노동자 연대〉 145호.

xvii 《자본론》 1권(하), 836pg. 엄밀히 말해, ‘자본의 구성’은 자본의 기술적/유기적/가치 구성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자본의 구성으로 통칭한다.

xviii 같은 책, 837-838pg. 사실 이는 직관적으로 파악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xix 《임금 노동과 자본》 60-62pg.

xx 같은 책, 67pg.

xxi “생산적 자본이 성장할수록 분업과 기계 적용은 더욱 더 확장된다.…... 그만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더 확장되며, 그들의 임금은 더욱더 수축한다.” 같은 책, 69pg.

xxii 《자본론》 1권(하), 873pg.

xxiii 같은 책, 869pg

xxiv 같은 책, 875-877pg

xxv 한국 경제에서 자본의 구성이 상승해 왔다는 실증연구로는 류동민, 2014, ‘마르크스보다 더 급진적인!’, 〈한겨레21〉 제1019호. 여기서는 ‘자본생산성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계의 용법으로 이 둘은 실상 같은 말이다.

xxvi ‘청년과 정규직 노동자 사이 이간질에 속지 말라’, 〈노동자 연대〉 151호.

xxvii 이 점에 관해서 참고할 만한 문헌은, 크리스 하먼&빌 던, 2010, 《세계화와 노동계급》, 책갈피

xxviii 김수행, 2014 《자본론 공부》, 돌베개, 117pg. 폴 스위지, 2009,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필맥, 28pg에서 지적하듯 “그 법칙의 수식어로 사용된 ‘절대적’이라는 말은 헤겔적 의미의 ‘추상적’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며, 따라서 그 법칙은 결코 미래에 대한 구체적 예측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모든 법칙과 마찬가지로 이 법칙도…… 많은 상황에 의해 수정[된다].”.

xxix 이 점에 대해서도 《세계화와 노동계급》을 참고하시오.

xxx 한승주, 2015, ‘불황에 정년연장까지……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門’ 〈국민일보〉, 2015-04-13.

xxxi 《마르크스의 공황이론》, 318pg.

xxxii 이정원, 2015, ‘본격화하는 공공기관 2단계 ‘정상화’ 공격: 청년 고용 빌미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 반대한다’, 〈노동자 연대〉 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