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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은 분절되고 파편화됐는가?:
임금 격차, 노동조합, 그리고 연대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저임금과 청년 실업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상위 10%의 자율적 임금인상 자제와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상위 10%”는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을 겨냥하는 코드명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탐욕스럽게 너무 많은 임금을 받는 게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임금 격차의 진실

우리 나라에서 상위 10%의 임금 비중은 1995년 23.9퍼센트에서 2013년 35.2퍼센트로 빠르게 늘었다. 그렇다면 지금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으로 임금 억제를 강요받고 있는 우리 나라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과연 “상위 10%”의 임금 상승을 누리고 있을까?

임금소득 통계가 자산 통계는 물론 소득 통계(자본소득 포함)와 비교해서도 진정한 부의 집중도를 보여 주지 못한다는 점은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통계를 보면 자산 상위 10%가 전체 부의 66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임금 불평등 추세의 특징은 상위층의 임금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이 아니라 최상위층의 임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한 논문을 보면, “상위 10%” 가운데서도 하위 5%의 임금은 2008년 이후 정체 상태여서 “상위 10% 임금 비중의 변화는 상위 5% 집단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홍민기, ‘최상위 임금 비중의 장기 추세 1958-2013’)

위 홍민기(노동연구원) 논문은 정보 제한 탓에 스톡옵션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만약 최고 경영·관리자들의 스톡옵션을 계산에 넣었다면 최상위 1%가 상위 10%의 임금 비중 증가 추세를 이끌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상위 1% 임금 집단은 관리자, 경영·금융 전문가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2000년 이후 특히 관리자들의 임금이 거의 갑절로 대폭 올랐다. 이 가운데는 연봉이 수십억 원이 넘는 ‘수퍼리치’들도 있다.

임금소득 격차를 최상위 1%가 이끄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특히, 임금 불평등 추세가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는 미국에서 이런 양상이 두드러진다. 피케티는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파헤쳐서 보여 줬다. 특히, 최상위 0.1%의 60~70퍼센트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로, 천문학적 연봉을 받고 있다고 폭로했다.

최상위층이 임금소득* 증대를 누리는 동안 우리 나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인상은 경제 성장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직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노총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2012년 한 해 제외) “협약임금 인상률은 명목경제성장률(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하회하는 수준”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상위 10%”에 관한 신화를 퍼뜨림으로써, 마치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해야 저임금층의 조건이 개선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임금 총량이 정해져 있고 노동자들이 그 가운데 얼마를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시소게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부문의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으면 다른 부문의 몫이 줄어드는 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시소게임 관계인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가 자본가와 노동자가 각각 자기 몫(이윤과 임금)을 끌어 내야 하는 밑천이고, 둘은 “한 쪽이 더 많이 받으면 그만큼 다른 쪽은 적게 받게 되는” 반비례 관계다.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있고, 고용주들과 정부가 이 추세를 더 지속시키고자 하는 지금, 노동 몫을 방어하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이 개선되는 가운데 격차 축소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격차를 증대시키나?

고용노동부는 “노동운동이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생산성 이상의 임금수준을 확보해 온 관행”이 문제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의 개입 때문에 가만 놔뒀다면 원활하게 잘 굴러갔을 노동시장의 균형이 깨지고 임금 격차가 증대하는 등 ‘이중구조화’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임금 불평등을 확대시킨다는 것은 전 세계 지배자들이 애용해 온 아주 오래된 노동조합 비난 레퍼토리다.

물론 노동조합은 노조가 없는 부문에 비해 임금을 상승시키는 뚜렷한 효과를 낸다. 그렇지 않다면, 희생을 무릅쓰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킬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이와 같은 상대적 임금효과는 1988년 8.4퍼센트에 이르렀고, 현재도 3.7~5.5퍼센트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IMF 위기와 그 직후, 상대적 임금효과가 높았다(7.3퍼센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조건을 방어하고 경기 회복 시 조건 개선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또, 남성보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임금 프리미엄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이 임금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한 결과들은 대체로 한국의 노동조합이 성별, 생산직-비생산직, 기업 규모 간, 학력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노동조합은 사업체 내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내고, 사업체 간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도 줄이는 효과를 낸다. 노동조합들이 하후상박의 연대 원리를 적용한다는 점, 조직부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이 일종의 기준설정자 구실을 해서 다른 노동조합들이 유사한 임금수준을 요구한다는 점 등이 작용한 결과다. 반면 비노조부문에서는 사업체 내 노동자 간 임금 격차와 사업체 간 임금 격차가 모두 노조부문에 비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한 조사 결과는 이런 효과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강승복·박철성, ‘임금분포에 대한 노동조합의 효과’). ‘가장 잘 조직된 부위가 잘 싸워서 전체 노동자 조건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며 ‘오히려 잘 싸울수록 노동자 간 격차만 벌릴 뿐이다’는 냉소가 노동운동 안에도 퍼져왔는데, 이는 참말이 아님이 드러났다.

강승복·박철성(각각 한국노동연구원과 한양대 경제금융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임금 격차가 확대된 것은 노동조합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비노조부문에서 사업체 간 임금분산[격차]이 급격히 확대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강승복·박철성은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서 여전히 한국의 노동조합은 “전체 임금분산[격차]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노동조합의 격차 축소 효과는 단지 조직부문 내에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연구 결과들은 노동조합이 미조직 노동자의 임금에 미치는 효과가 대부분 긍정적임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거나 사기 저하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막으려고 동일업종의 유(有)노조 기업만큼 임금을 올려 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제·정치 환경에 따라 효과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될수록 기업 내 그리고 기업 간 임금 격차가 훨씬 더 증대할 것임을 보여 준다. 박근혜 정부와 고용주들이 어떤 거짓말을 지어 내든 말이다. 이는 저들이 1987년 투쟁으로 대공장들에 정착된 “비경쟁적이고 동질적인” 임금체계(단일호봉제 같은)를 깨고 싶어 안달이라는 점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노동시장 분절은 노동계급을 해체시키나?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는 주장이 안타깝게도, 정부와 기업주들 측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매우 다양한 버전이 있긴 하지만 진보·좌파 내에서도 내부노동시장-외부노동시장, 내부자-외부자, 핵심-주변 이론이 대유행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론’,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고 나왔을 때 진보·좌파의 상당 부분은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정부가 이들의 약점을 이용하려고 이들의 무기고에서 쓸 만한 무기를 골랐던 것이다.

물론 분절 노동시장론 또는 이중 노동시장론은 노동시장을 단일 경쟁시장으로 보는 입장(신고전파)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면이 있다. 신고전파는 노동시장에는 아무 차별이 없고 다만 개인의 ‘인적 자본’(학력이나 숙련 등)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그의 위치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령 남성과 여성, 내국인과 이주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능력과 아무 관계 없고, 고용주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차별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분절 노동시장론자들은 노동시장에는 차별적 구조가 있고 분절돼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로막혀 있다고 본다.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시장은 더욱 파편화된다고도 본다.

노동시장 분절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는 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내부노동시장이다. 여기서는 고임금, 고용안정, 괜찮은 노동조건이 보장된다. 이와 달리 외부노동시장은 열악한 조건인데, 여기 노동자들은 내부노동시장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대기업, 원청, 공공부문, 정규직, 숙련, 조직 노동자는 전자에 속하고, 중소기업, 하청, 비정규직, 미숙련, 여성, 이주, 미조직 노동자는 후자에 속한다.

실제 현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노동계급 한 부문의 고통은(실업이든 차별이든 저임금이든) 다른 한 부문이 좋은 노동조건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다. 고용주와의 담합의 결과든, 이간질에 놀아난 것이든 말이다. 좀 더 나아가면 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부터 원청 노동자들이 득을 보고,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으로부터 남성 노동자들이 득을 본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계급이 노동시장 분절로 파편화되고 이질화돼 둘 또는 그 이상으로 완전히 분리됐다고 보는 것은 현실과도 맞지 않다. 우선,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변적’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특권적 지위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가령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았다. 연장 노동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들은 한국의 어떤 노동자 부문보다 가장 ‘유연화’된 집단이었다. 현대차 사측은 하청을 ‘착취’한(잉여가치 재분배) 결과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나눠 줬기는커녕 시급을 낮추고 연장 근로를 강제하는 식으로 그들을 착취했다.

노동시장에서의 위치

자본의 전략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도, 주변적 노동을 늘리는 대신 핵심 노동자에게 특권적 지위를 보장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영속적으로 분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격렬한 국제 경쟁 속에서 고용주들은 이렇게 할 여력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재벌이 국가의 도움으로 특정 국가경제 분야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국내외 자본의 경쟁 압력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쟁 압박은 재벌 기업들이 자기 노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좋은 조건을 제공할 수 없는 이유다. 독점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흔히 자본 간 경쟁이라는 요인을 간과함으로써 이런 점을 놓치기 쉽다.

분절 노동시장론을 수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내부노동시장도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주변화돼 불안정해지고 약화된다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위 ‘외부자’나 ‘주변적’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생산에 필수적이지 않은 비핵심 노동력인 것도, 또 너무 약해서 스스로 조직하고 싸울 수 없는 것도 결코 아니다.

분절 노동시장론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갈린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시장에서 형성된 다양한 집단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반면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지라도 모두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한다는 같은 이해관계가 있으며, 그래서 착취에 맞서 단결할 수 있다고 봤다.

노동계급 내부에 비록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잠재력도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계급 내 재분배와 그것의 제도화에 희망을 거는 데로 나아가기 쉽다.


격차를 줄이는 대안적 임금 체계?

진보사회학계나 노동운동 일부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 자본가 계급이 오래 전부터 깨뜨리고 싶어 한 연공급제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고 본다. 기업별로 정규직을 대상으로 연령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연공급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남성과 여성 간, 기업(규모) 간 임금 격차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 격차를 해소하려면 기업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합의된 직무가치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생각이다.

물론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직무급이 현재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직무성과급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 정부와 기업주들은 연공급을 폐지하고 직무성과급을 도입함으로써 지금껏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누려온 혜택을 빼앗으려 한다. ‘사람(성, 연령, 학력 등)’이 아니라 ‘일(직무)’에 따라 임금을 준다는 ‘합리성’을 내세워서 말이다. 요컨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억제가 핵심 목적인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을 하락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직무급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논의는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히려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 부문의 조건 개선을 위해 다른 부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에 따르면, 직무급이 도입되면 평균 기본급 기준으로 임금이 약 15퍼센트 하락하고, 특히 남성(21퍼센트), 중장년층(22퍼센트), 대졸(26퍼센트)의 임금이 대폭 하락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안적 직무급을 도입하려면 손해보는 노동자 부문에 대한 설득이 중요해진다고 한다(윤진호, ‘한국의 임금체계’,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1》).

이와 같은 직무급제는 그것이 아무리 정부와 기업주들의 직무성과급과 다르다 할지라도, 정부와 기업주들이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려는 핵심 목적을 좌절시키고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대안이 되기가 어렵다.

둘째, 직무급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은 직무급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가장 잘 구현해 각종 차별을 제거할 수 있는 임금체계라고 한다. 그러나 직무급이 그것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직무를 누가 나누고 그 가치를 누가 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최근에 기업들은 직무를 잘게 쪼개고 서로 다른 직무에 차별적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직무급은 노동자 간 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차별 정당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다. 또, 어떤 노동자들은 직무가 저평가돼 더 열악한 조건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험을 봐도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직무가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흔하다. 소위 과학적 직무평가라는 것은 속임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을까, 아니면 기계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을까, 아니면 돈을 ‘돌보고’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을까? 자본가라면 이것을 정하는 데 0.5초도 안 걸릴 것이다.

한국에 과연 직무가치의 기준을 공정하게 논의하고 결정할 산별 또는 중앙교섭이 보장돼 있느냐 하는 문제만도 아니다.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부당한 차별을 제거할 수 있느냐는 협상 테이블에서 노사가 직무평가를 엄밀하게 정하는 데서 나오기보다는 힘 관계에 달려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저들의 무기가 됐는가?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오히려 노동자 분할과 서열화, 차별 구조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됐다며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무급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직무급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들은 직무급을 반대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노동 다른 임금’을 정당화할 뿐이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버려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이해할 만한 면이 있다. 고용주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비정규직 차별과 여성 차별에 이용하고(가령 분리직군을 만들어 차별 임금을 정당화),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명분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철저히 직무능력과 직무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겠다며).

저들은 무엇이든 위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차별적 임금에 반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부적절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정 수당이 여성에게만 제외된다든가, 보너스가 비정규직에게는 제외된다든가, 유사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이 강요된다면 동일한 처우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물론 이것이 법률이나 고용주가 정한 ‘동일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동일노동’의 평가 잣대나 범위를 고분고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이런 기준은 매우 협소해 동일노동이라는 점을 입증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거나, 남성과 함께 일하지 않는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동일임금을 위한 국제 노동자 투쟁의 경험을 보면 그것은 낮은 직급 배치나 차별적 직무 평가에 대한 저항을 동반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동일임금 판결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만약 투쟁이라는 강제력이 없다면 말이다. 동일임금이 얼마나 폭넓게 적용되느냐, 차별 완화를 강제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투쟁의 논리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남녀 임금격차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었던 것은 남녀 노동자들이 중요한 투쟁들을 벌인 결과였다. 영국의 사례를 들면, 1930년대 이후 동일임금은 노동조합들에 중요한 쟁점이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1, 2차 세계대전 동안 군수산업 같은 남성 직종에서 일하게 된 여성들이 남성 임금의 절반 정도만 받는 것에 불만을 가진 데서 비롯했다. 다른 한편, 남성들도 이 문제에 못지 않게 적극 나섰는데, 여성의 낮은 임금이 자신들의 임금을 깎아내리거나 일자리를 빼앗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희석’*에 맞선 투쟁은 숙련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편협성도 있었지만, 당시 직장[현장]위원 운동이 강력했던 덕분에 노동조건 악화를 저지하고 미숙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개선할 수 있었다. 특히 직장위원 운동이 강력했던 클라이드의 노동자협약은 여성들에게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제공했다.

지금 한국에서도 이런 투쟁 경험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은 더 나은 처지의 노동자와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가 차별 임금에 맞서 단결해 싸움으로써, 더 열악한 노동자들과 처지가 좀 더 나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모두 방어하는 길이다.


연대임금과 “스웨덴 모델”

민주노총은 연대임금을 생활임금과 함께 임금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표방해 왔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채택한 차등인상 요구율과 동일금액 인상안(2013년 이후)은 하후상박을 통한 차별 해소 방안이다. 하후상박은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되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조건이 더 빠르게 개선하기 위한 바람직하고 필요한 방안이다. 문제는 그것을 관철할 힘인데, 민주노총은 오랫동안 임금 투쟁 전선을 강력하게 끌어오지는 못했다.

노동운동 안에서(민주노총 산하노조들 포함) 논의되는 연대임금 방안이 하후상박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 필요성을 적극 제기하는 흐름도 강력하다. 방식은 다양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해서 그 돈이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개선에 사용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위한 길이자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이 귀족으로 몰려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그동안 핵심적 반문에 부딪혀 왔다. 대기업 정규직이 양보를 하더라도 그것이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기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가령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1인당 10만 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한다면, 정몽구는 그 돈을 회사 계좌에 넣을까, 아니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줄까?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률 하락은 오히려 연관 중소업체 비정규직의 더한층의 임금인상률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노동조합의 임금효과는 앞에서 살펴봤다.)

물론 이런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모두 양보론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산별교섭의 틀이나 중앙적·지역적 교섭틀을 마련해, 전체 산업정책이나 노동시장정책 속에서 연대임금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래서 독일이나 스웨덴 연대임금모델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스웨덴의 연대임금 정책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균등화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경제 안정과 국제 경쟁력을 위해 인플레를 잡으려는 임금억제 정책이기도 했다. 당시 정부 개입은 흔히 생각하는 케인스주의 정책과 달리 재정 투여가 아니라 호황의 속도를 늦추는 데 맞춰져 있었다(즉, 긴축). 중앙교섭을 통해 연대임금 정책이 시작되던 해인 1951년 스웨덴 노총(LO)은 총회에서 임금 인상 자제를 위한 임금 조정자 구실을 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 전부터 추진돼 온 노동쟁의 통제 정책들(임금 격차를 벌리는 효과를 내는 파업에 대해서는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노동쟁의를 어렵게 하는 조처들)과 맞물려 있었다.

스웨덴 연대임금 정책이 잘 나가던 동안 스웨덴 경제는 성장을 누렸고 실업도 낮게 유지됐다. 그러나 이것이 연대임금 정책의 효과라고 할 수는 없다. 연대임금 정책과 관계없던 선진국들도 이 시기에 모두 생활수준 개선과 완전 고용을 경험했다.(그 이유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한동안 상쇄해 준 상시군비경제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작 빛을 발해야 할 경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연대임금 정책은 위기에 빠졌고,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1982년부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했다.

임금 억제

장기간 임금 억제를 유지한 연대임금 정책은 특히 고수익 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을 샀다. 얄궂게도, 저임금 부문으로서 연대임금 도입을 적극 주창했던 금속노조가 고수익 부문 노조로 처지가 바뀌면서 소속 조합원들의 불만이 증대했다. 이런 불만 때문에 연대임금 정책 하에서도 기업 간 임금 격차는 꽤 존재했다. 고수익 기업 노동자들은 직장별 협상에서 표준협약 이상의 임금 수준을 쟁취했던 것이다(“임금 유동”). 그런데 임금 유동은 다른 노동자 부문을 자극해 다음번 표준협약의 기준이 됐다. 이런 게 반복되면서 연대임금 정책의 전반적 임금 억제 효과가 사라지자 고용주들은 중앙단체교섭에서 이탈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자본주의의 안정적 성장에 종속시키는 정책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격차 축소와 임금의 전반적 상승을 동시에 이루려면 (특히 경제가 위기에 처한 1970년대 후반 이후 상황에서) 일관되고 단호하게 자본을 압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에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 이 점은 격차 축소와 산별·중앙교섭의 제도화만을 주로 연결짓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투쟁의 동학으로 보는 임금격차 축소와 연대

많은 사람들은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면 그 방안이 중앙적 교섭을 통해 위로부터 강제돼야 한다고 본다. 개별 기업의 투쟁, 특히 임금 수준이 높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격차 축소에 방해가 될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둘이 대립적인 관계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방법은 꽤 단순했다. 가장 강력한 산업, 숙련 부문의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강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임금 인상을 얻는다. 그러면 노동계급의 나머지 부문들은 잘 조직된 부문과 자신의 임금 수준을 비교하며 그 수준을 따라가고자 애쓴다. 이것은 비단 같은 산업부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가령 제조업 노동자들이 강력한 투쟁으로 높은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큰 자극을 받고 상대적 임금 수준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전반적 임금 수준이 정해진다.

물론 특정 시점을 보면 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쟁취했을 때 나머지 노동자 부문과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추세적으로 보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격차를 좁힌다. 한 부문이 상승하면 다른 부문도 상승하고 한 부문이 멈추면 다른 부문도 멈춘다. 이 추세를 이끄는 것은 십중팔구 잘 조직된 부문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부문의 임금 인상 투쟁은 그 성패가 다른 부문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도 흔히 그들만의 투쟁으로 보이기 쉽다. 특히 기업별 투쟁을 통해 성과를 얻을 때 이런 파편화는 더 강화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임금 투쟁이 바로 이런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노동운동의 흔한 대응은 파편화가 문제라고 하면서도 파편화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잘 조직된 부문이 잘 싸워 봤자 격차만 늘린다는 냉소와 맞물려, 개별 기업의 임금-노동조건 투쟁은 철저히 그들만의 일로 방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호타이어 임금피크제 저지 파업, 현대차의 주간연속2교대 투쟁, 현대중공업의 임금투쟁 등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경험은 파편화를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다행히 파편화의 압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정부와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일반화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과보호를 제거하겠다고 하는 동시에 파견 노동자와 단시간 노동자를 확대하려 한다. 임금을 공격하고, 노동시간 유연성을 강화하고, 공공부문을 쥐어짜고, 기업 구조조정으로 해고의 칼을 휘두르려 한다. 노동조합 권리를 공격한다. 이처럼 정부와 고용주의 공격은 특정 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이런 조건은 연대가 확대되고 투쟁이 정치화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적인 과정은 아니다. 가령 통상임금 문제는 이런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편으로, ‘통상임금으로 덕을 보는 건 대공장 정규직뿐’이라는 냉소와 다른 한편으로, 개별 기업에 대한 소송으로 끌고 가려는 해당 노조 지도자들의 제한적 대응이 맞물려, 이 쟁점은 정치색이 빠진 개별 기업 문제로 다뤄졌다.

통상임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제불능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2015년 투쟁은 가능성도 보여줬다. 그들은 ‘노동개혁’ 공격에 무관심하지 않았고, 높은 총파업 찬성률로 투쟁 의지도 보여 줬다. 비록 그 지도자들이 조합원들의 뜻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행동하거나 심지어 거슬렀지만 말이다.

또, 울산과 경남에서 3명의 민주노총 전략적 지지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은 그들이 정치적 대응에도 무심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방어하고 격차 축소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잘 조직된 부문의 임금 방어에 사용되는 힘이 전체 투쟁을 위해서도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노동조합 속 투사와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만약 노동조합 속 투사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잘 조직된 부문의 임금 투쟁이 격차만 벌린다며 무시해 버리면, 격차 축소에 효과적인 임금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나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상층 협상에 주목하게 될 수 있다.

노동조합 속 투사와 사회주의자들은 잘 조직된 부문의 임금 투쟁이 격차를 벌리는 효과를 내기는커녕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는 데서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잘 조직된 부문의 임금 투쟁을 지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다른 노동자들의 응원 속에 이런 투쟁이 성과를 거두면,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고무할 수 있다.

또, 노동조합 속 투사와 사회주의자들은 잘 조직된 부문의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개악을 둘러싼 저항에도 나설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이 처지를 개선하도록 돕고 연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들의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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