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악을 둘러싼 쟁점들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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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은 무엇을 노리나?
윤석열이 내놓은 노동개악은 임금 억제, 노동시간 유연화, 비정규직(파견) 확대, 쟁의권 후퇴 등을 노리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경제 침체 속에서 기업과 사용자들의 이윤을 지키려고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노동개악의 목적을 ‘노조 탄압’으로 보는 것은 협소한 관점이다.
2020년 기준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퍼센트인데, 노동개악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의 조건 전반을 위협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조의 ‘기득권’을 타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단지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만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 칼날은 전체 노동계급을 향하고 있다.
물론 단체협약 같은 보호망이 없어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더 불리한 처지에 있는 미조직·중소·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격에 더 취약할 것이다. 그리고 최저임금, 파견법 개악 등은 저임금·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경제적인 노동조합주의의 눈으로 보면 노동개악에 정치적으로(즉, 전 계급적으로) 맞서기 어렵다.
윤석열이 노동조합을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마녀사냥식 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노동조합 전반을 무력화하려 한다고 보는 것도 부정확하다. 윤석열 정부를 “군부 독재”나 심지어 “파쇼 정권”으로 묘사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정부 탄압이 노리는 것은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저항이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내의 갖가지 기존 분열을 한껏 활용하려 할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의 상대적 고임금은 임금 격차만 벌릴 뿐인가?
임금체계 개악은 윤석열 노동개악의 핵심 목표다. 특히,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연공급제를 손보려 한다. 고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해 전체 노동계급의 임금을 억제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일각에서는 임금체계 개악에 확실하게 반대하길 주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가령 정의당은 직무성과급제를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고 있다. 일부 노동단체도 임금체계가 무엇이든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직무성과급제 반대하기를 삼간다.
이런 회피적 입장들의 인식의 바탕에는 대기업 정규직의 상대적 고임금이 중소기업·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갉아먹거나 격차만 벌릴 뿐이라는 관점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기업·하청 노동자들의 조건도 결국 동반 상승한다. 한 부문의 임금 인상은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싸울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격차는 투쟁의 결과와 기업주들의 이윤몫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대립된다고 보면, 정부의 ‘기득권 개혁’ 논리에 일관되게 반대하기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가진 힘을 전체 노동계급의 조건을 함께 방어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연결시키기보다 조합주의(부문주의와 경제주의)를 부추길 것이다.
직무급제는 차별을 해소하는 공정한 임금체계인가?
노동운동의 일부가 임금체계 개악을 분명히 반대하지 않는 데에는 직무급제가 차별을 해소하는 ‘공정한’ 임금체계라는 생각도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직무급이 차별 해소를 고무하는 것은 아니다. 되레 직무에 따른 임금 차별을 정당화한다. 가령 무기계약직이 된 많은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호봉제 적용을 원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먼저 무기계약직 전환자에 대해 직무급제(임금 표준모델)를 마련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비정규직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전체 노동계급의 임금 상승이 억제되는 효과를 내기 쉽다. 정부가 정규직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것도 주로 이 목적을 위해서다.
직무급제가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을 해소하는 것도 아니다. 직무 평가는 대개 시장 임금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존의 임금 차별을 그대로 반영하기 일쑤다. 직무급제가 흔한 서구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저임금 직종에 몰려 있다.
직무 평가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면 나아질까?
노동운동의 일부는 직무 평가에 노조가 참여하는 것을 제안한다. 산별교섭에서 직무 가치를 평가하는 독일식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참여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직무에 차등을 매기고 임금을 그에 연동하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근본적 문제점은 여전하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이 조장될 수 있고, 직무 간 임금 격차가 ‘공정’하다는 거짓 정당성이 부여된다. 직무급제가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도하는 장치”라는 전투적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독일처럼 산별 협약으로 직무 평가를 하는 방법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낮은 임금 등급을 추가하는 개악에 합의하거나(공공부문), 신입사원들의 임금 하락에 합의하는(금속산업) 등 후퇴를 거듭해 왔다. 협상 과정에서 사용자 측은 직무성과급제가 인건비 부담을 억제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했는데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에 배신적으로 타협한 결과다.
임금 차별 해소는 직무 평가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들 간의 계급 세력 균형에 달려 있다. 이 균형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노조 지도자들의 협상 기술이나 교섭 전문성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성과 급진성이다.
임단협 시기 집중 투쟁이 효과적인가?
그동안 노동개악에 맞선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대응은 개악 입법을 코앞에 두고 단발성 하루 파업을 하는 데 그치고, 정부 행정지침에 따른 공격은 사업장별로 내맡겨 두기 일쑤였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은 “뻥파업”이라는 비아냥을 종종 듣는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민주노총 중앙은 이번에는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가진 “대중적이고 완강한 2주간의 파업”을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주요 노조들의 임단협이 몰려 있는 7월 초중순에 2주 동안 임단투 시기 집중(그러나 릴레이) 파업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2~3월부터 본격적으로 개악 추진에 나선다는데, 왜 7월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임단투 시기 집중’은 다같이 싸워 투쟁 효과를 높여 보자는 취지에서 제기됐지만, 실천에서는 각자 자기 사업장의 임단협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부문주의와 경제주의의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미 20년 전인 2001년, 효성 파업이 한 사례이다. 6월 초 효성 공장점거 파업에 김대중 정부의 경찰 수천 명이 투입돼 폭력을 휘둘렀을 때,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항의가 커지고 태광·고합 노동자들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투쟁은 전국적 초점을 형성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만만찮은 연대 파업을 조직하지 못했다. 주된 이유는 남북한 관계 개선 문제에 관련된 노동조합 내부 이견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는 6월 12일 시기집중 파업을 앞두고 협상을 마무리하고는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렇게 자기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부문주의와 경제주의 때문에 정부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비슷한 문제는 2004~2006년 비정규직법 저지 투쟁, 2009년 쌍용차 파업 지원 때에도, 그리고 2010년대 이래로 거의 매년 추진된 총연맹·산별노조 차원의 ‘시기 집중 파업’에서도 거듭 반복됐다.
지난해 하반기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그 약점이 드러났다. 당시 공공운수노조의 시기집중 파업은 연대를 모아 내지도, 철도노조 지도부의 배신에 제동을 걸지도 못했다.
결국 노동조합 지도층에 진정한 실질적 연대를 의존하는 전략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이득을 얻기 일쑤였고, 가끔씩은 실망과 환멸을 안겨 주기도 했던 것이다. 진정한 실질적 연대와 단결은 현장 조합원들 자신이 구축해야 할 일이다.
개악 저지보다 개혁 입법화를 내걸어야 하나?
선거와 의회를 중시하는 좌파는 임단협 시기 집중 방식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중앙 차원의 법제도 쟁취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노동개악이 순차적이고 여러 방식이기 때문에 ‘저지 투쟁’을 하기보다 개혁 입법 요구들을 모아 싸우는 게 동력을 한데 모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면 개악에 맞서는 것을 개별 사업장의 과제로 원자화하고, 하나의 계급으로서 만만찮게 맞서기는 회피하면서 입법화 투쟁을 잘 할 수 있을까? 임금 등 조건 하락에 맞서 단결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이 개혁 입법을 위해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등 지난 몇 년의 제도 개선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의 동력을 모아 내기보다 국회 논의에 기대어 전개되기 일쑤였다. 노동운동 지도부들이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중심에 놓기보다 국회 논의에 투쟁을 종속시키고, 결국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좌지우지되는 (그 과정에서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약점을 거듭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간의 노동개악 저지 투쟁은 무엇을 보여 주나?
1996년 12월 26일 새벽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저항이 터져나왔다. 기층 조합원들에게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파업을 명령했다. 2주간 최대 38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비록 민주노총 지도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엄격하게 통제한 파업이었지만, 그것은 법률이 금지하는 정치 파업이었고 정부와 사용자들을 크게 위협했다.
결국 정부는 날치기 통과시킨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을 일단 유예하고 ‘적법 절차’를 밟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투쟁을 ‘수요 파업’으로 전환하면서 개악을 전면 철회시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말이다.(노동개악은 이듬해 “IMF 위기”가 한창이던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그 파업은 노동계급의 잘 조직된 부분이 단호하게 투쟁에 나서면 개악을 일정하게 막아 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직무성과급제와 해고 요건 완화는 박근혜 퇴진 운동에 부딪혀 좌절됐다.
철도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직무성과급제 반대 투쟁이 퇴진 운동 발전에 중요한 발판을 놓았다. 그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국노동자대회는 퇴진 운동의 대열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중 파업을 호소하지 않았고, 특히 경제 투쟁들은 분출하지 않았다. 더구나 정의당과 당시 공공운수노조 지도자들은 민주당 정치인들과 조율해 철도 파업을 중단시켰다. (바로 그날 국회는 박근혜를 탄핵했다.)
‘헌정 질서’에 따른 탄핵 절차를 밟아, 아래로부터 불만을 의회 정치 안으로 흡수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공기관 직무성과급제는 폐지됐지만, 직무급제로 이름만 바뀐 채 계속 추진됐다.
이렇게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노동개악 저지 투쟁도 반윤석열 정치투쟁과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주류 좌파 정당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저항을 하기는 하지만 자기제한적으로만 하고, 특히 정치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가길 회피한다. 특히,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우유부단, 궁극적인 경제주의가 거듭 약점으로 작용해 왔다.
윤석열의 맹공에도 노동자들이 움추러들지 않고 광범하게 단결하려면 이런 개혁주의적 약점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정치가 기층에서부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