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총장 퇴진 운동의 의미 되짚기 ①:
최경희 총장은 사퇴하고, 프라임·코어 사업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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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9월 12일에 열린 전체학생총회에는 4천여 명이나 모여 총장 사퇴를 포함한 요구안을 통과시키고 항의 시위를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올해 초에도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한 적이 있다. 3월 30일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의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날치기 지원을 막으려고 본관 안에 있는 기획처를 점거했다. 이 날의 항의 농성은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지만, 담당 교수는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몰래 빠져나가 지원서를 접수해 버렸다.
프라임 사업 반대 항의 농성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본관 점거 운동의 예행 연습이었다. 지금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도 최경희 총장 사퇴의 이유 중 하나로 프라임 사업 졸속 추진을 들고 있다.
게다가 9월 20일, 학생들의 항의를 완전히 무시하듯 이화여대가 “산업수요 맞춤형 여성 공학 인재 양성”을 내세우는 재정 지원 사업(여성공학인재양성사업)에 추가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사업의 목적과 재정 지원 규모는 프라임 사업과 대동소이하다.
취업률 잣대로 학문 개조하기
프라임 사업은 산업 수요와 취업준비생 사이의 ‘미스매치’(불일치)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교육개혁” 중 하나다. 이화여대는 프라임 사업 소형(‘창조기반 선도대학’)에 선정돼 정부로부터 3년간 해마다 50억 원을 지원받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15일 이 사업의 근거가 된 ‘2014~2024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공학·의약 계열에서만 인력 공급이 수요보다 모자라고 그 외 전공, 특히 인문·사회, 사범, 순수자연과학, 예체능 계열에서는 인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육부는 이 자료를 근거로 "기존 학과의 정원을 축소 또는 폐지하여 산업 수요 중심의 학과로 이동"하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프라임 사업에 참가하려면 입학 정원의 5~10퍼센트나 1백~2백명 이상의 정원을 다른 계열에서 공학·의약 계열로 넘겨야 한다. 이 점에서 이화여대는 유리한 점이 있었다. 입학 정원에서 인문·사회 계열이 30퍼센트, 예체능 계열은 21.5퍼센트를 차지하는 반면 이공계는 10퍼센트 정도로 적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이후 이화여대 당국은 공과대학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내년 정원을 2백여 명 늘리는 대신, 다른 계열의 정원을 그만큼 줄이기로 했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인문·사회·사범·예술계열)가 정원 삭감의 대상이 될 것이다.
프라임 사업은 양적 조정뿐만 아니라 “취업 연계형 주문식 교육 도입” 등 교육 내용의 변화도 요구한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 당국은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를 신설하고 전자전기공학과를 개편하는 등의 계획을 내놨다. 그 방향성을 보면, 교육 내용이 점점 더 산업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산학협력도 강화돼, 학생들은 “산학연계형 졸업 요건”(‘창업’, ‘특허’, ‘제품’ 중 하나의 주제를 골라 관련된 성과물을 제출)을 새로 충족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공학 계열의 교육 내용을 기업주들의 배를 불려주는 학문으로 협소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공학 계열 학생들에게도 좋은 정책은 아닌 것이다.
프라임 사업이 인문·사회 계열의 정원을 줄여 불만이 높자 보완물로서 고안된 것이 코어(대학 인문학 강화) 사업이다. 코어 사업의 목적은 “사회 수요에 부응하는 인문학” 육성으로 돼 있다. 교육부는 그 예시로 일어일문학과와 문예창작과를 변형해 사회적 수요가 높은 웹툰 산업에 참여시키기, 고고학과와 국문과와 철학과를 “융합”해 관광 산업과 접목하기 등을 내세웠다. 한마디로 취업률 낮은 ‘사양 학문’을 마구 “융합”해 시장에서 팔릴 만한 학과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화여대는 코어 사업에도 지원해 선정됐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 당국은 인문 경영 전략, 소비자 심리, 경영 철학, 시장과 문화, 과학 기술의 인문학적 이해 등의 과목을 개설했고 “기초 학문 심화”와 “실습”이라는 이름 아래 어학이나 IT 자격증 수업을 한다. “인문학의 통합적 사고와 경영학의 실용적 측면을 융합”한다지만, 실상은 인문학과 상품의 융합, 인문학과 ‘스펙’의 융합, 인문학과 이윤 추구의 융합인 것이다.
학생들을 위해서라고?
박근혜 정부는 산업 수요에 맞춰 공학 계열 학과를 늘리면 취업난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한국의 대학 학부과정 공학 전공자 비율은 이미 상당히 높은 편이다. 미국과학재단이 발간한 ‘과학 및 공학 지표’ 2016년 보고서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공학 전공자 비율은 17.1퍼센트로 대학 졸업자 6명 가운데 1명 꼴이고, OECD 국가 중 둘째로 높다. 반면 사회과학 전공자 비율(4.7퍼센트)은 공학 전공자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i].
게다가 지난 10년간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돼 공학 계열 입학 정원이 7천여 명 느는 동안, 인문·사회계열은 1만여 명 이상 줄었다. 순수자연과학 계열 입학 정원 또한 2천여 명 감소했다[ii]. 그러나 정부가 말해 온 “인력 미스매치 해소에 따른 취업자 증가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기는커녕 실업 문제는 심화해 왔다. 2016년 실업률은 12.5퍼센트로 ‘역대 최고’ 수치를 경신했다!
이공계 취업률이 다른 계열보다 비교적 나았지만, 2011년 이후 취업률이 가장 많이 하락한 계열이 바로 공학·의약계열이었다(표 참고).
구분 | 총계 | 인문 | 사회 | 교육 | 공학 | 자연 | 의약 | 예체능 |
---|---|---|---|---|---|---|---|---|
2011년 | 65.5 | 59.1 | 63.4 | 53.4 | 76.1 | 62.8 | 84.9 | 55.5 |
2014년 | 64.5 | 57.5 | 62.3 | 52.9 | 73.3 | 61.9 | 81.4 | 59.6 |
증감 | -1.0 | -1.6 | -1.1 | -0.5 | -2.8 | -0.9 | -3.5 | 4.1 |
정부는 학생들이 ‘불필요한’(돈 안 되는) 전공을 너무 많이 선택해서, 또는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아서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생과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은 잘못된 전공 선택이나 능력 부족 탓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대학 교육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위기이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대학 전공과 크게 관계없이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때 박봉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꺼렸던 공무원이 고용 안정성을 이유로 인기 직종이 됐다.
세계경제 상황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4년 후에 취업이 잘 될 세부 전공을 예측해 ‘인력 수급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산업 수요에 의존해 학제를 이리저리 개편하는 것은 학생들을 불안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청년 실업의 대안이 못 된다. 취업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일자리 창출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 경제 위기 때문에 사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를 꺼린다면 국가가 나서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
최경희 총장 사퇴하라!
최경희 총장은 정부의 대학 정책에 순응하며 2016년 코어 사업과 프라임 사업에 나란히 선정됐다. 같은 해 7월에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까지 거머쥐며 “재정지원사업 3관왕”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사실 최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임기 4년에 인생을 걸”고, “산업과 연계된 명품 학과 10개를 만들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며 야심을 드러냈다. 입시 순위 상 애매한 상위권에 걸쳐 있는 이화여대가 경쟁력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 총장은 “선배들이 입학할 때는 (여성일 경우) 극소수 상위권 대학이 아니면 이화여대를 택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혁신을 할 것”이라며 “외부 평가의 잣대를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겠다”고 밝혀 왔다. 전통적으로 인문계가 강한 이화여대에서 사상 최초로 젊은 나이의 과학 전공 총장(최경희)이 들어선 것도 이화여대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2010년부터 2년 간 산학협력단장을 맡기도 했던 최경희 총장의 첫 ‘작품’은 2015년 신산업융합대학 신설이었다. 이것은 여러 단과대학에 산재해 있는 학과들을 산업과 연계된 방식으로 개편해 하나의 단과대 아래 묶는 구조조정이었다. 식품영양학과를 외식 산업과 연결하고, 의류학과를 패션산업학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다.
최 총장은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지금 반대하는 학생들도 덕분에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 교육을 점점 더 산업과 연계시키는 방식의 ‘경쟁력’ 높이기는 기업들의 환심은 살지 몰라도 학생들의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경제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강화한다고 취업난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생들은 피 튀기는 경쟁으로 고통을 겪고, 학문과 고등교육은 더욱 협애해질 것이다.
특히 ‘경쟁력’ 없는 학과를 퇴출하며 나머지에게 더 높은 경쟁력을 요구하는 일은 충분한 대화와 의사 결정이 배제된 비민주적 과정일 수밖에 없다. 많은 학생들이 이 점에 즉각 분노했고, 최경희 총장은 지금 그 역풍을 호되게 맞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 당국은 최 총장 당선 전부터 이미 큰 틀에서 정부 정책과 같은 방향의 개혁을 추진해 왔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학교육혁신센터 지원 사업, 서울어코드 활성화 지원 사업 등에 지원해 해마다 정부로부터 수억 원을 지원받았다. “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한 공학 교육 혁신”, ”수요 지향적인 공학 교육 시스템 구축” 등이 이 사업들의 목표였다.
따라서 총장 퇴진 운동은 최경희 개인뿐 아니라 그가 대변하는 교육 개악 전반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러면 운동의 대의명분도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최경희 총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프라임·코어 사업 등 대학 교육을 산업 수요에 끼워 맞추려는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 또한 대학에서 함께 퇴출시켜야 한다.
[i] 미국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2016년 과학 및 공학 지표〉, 부록표2-35.
[ii]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대학통계, 각 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