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새 노총 출범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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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새 노총의 출범이 가시화하고 있다. 새 노총 건설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고 있는 남아공 금속노조(NUMSA)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8월 30일 열린 ‘새 노총 건설을 위한 운영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알렸다. 31개 노동조합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는 9월 안에 새 노총 출범 날짜를 발표하기로 했다.
새 노총에는 조합원이 약 35만 명으로 남아공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 2014년 백금 광산에서 일어난 전투적 파업을 이끌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광원건설노조(AMCU), 범아프리카주의 성향의 노총인 전국노동조합회의(NACTU) 등이 주요 노조로 참여한다. 남아공노총(코사투) 사무총장이었다가 지난해 제명된 즈웰린지마 바비도 새 노총 건설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새 노총 건설에 참여하는 주요 세력을 보건대, 새 노총은 코사투보다 좌파적인 노총이 될 듯하다.
새 노총의 출범은 남아공 노동운동과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이 될 것이다.
첫째, 남아공 노동조합 운동의 대표 조직으로서 코사투의 위상이 변할 것이다. 금속노조는 코사투 출범 때부터 주요 세력이었고, 코사투 내 최대 노조였다. 광원건설노조는 2012년 마리카나 광원 투쟁을 지지하며 급성장해, 이제는 광산업 내 최대 노조가 됐다. 광산업은 남아공의 최대 산업이고, 금속노조가 포괄하는 철강·자동차·건설업은 광산업의 뒤를 잇는 중요한 부문이다.
둘째, 1994년 이래 남아공 정치에서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남아공공산당(SACP)·코사투의 삼각동맹이 득세해 왔다. 새 노총 건설에 참여하는 주요 세력들은 노동조합 운동이 ANC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ANC가 집권 이래 지난 22년간 신자유주의 정책들 추진에 여념이 없어 더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즉, 새 노총의 출범은 ANC에 대한 좌파적 반대 운동을 고무해, 약화돼 온 삼각동맹(ANC-남아공공산당-코사투 노조)의 헤게모니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분열주의?
노동조합 상층 간부층의 시각에서 보면, 새 노총 건설은 코사투를 분열시키고 따라서 노동조합 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새 노총의 출범은 남아공 사회의 더 큰 변화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1994년 ANC의 집권을 가능케 했고 또 그 집권으로 가능해진 변화는 남아공 인구의 압도 다수(86퍼센트)를 차지하는 흑인을 전체 영토의 13퍼센트도 안 되는 구역에 가둬 놓고는 통행의 자유마저 억압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무너뜨린 정말 큰 변화였다.
그러나 그 후 흑인 중간계급 상층의 처지는 크게 개선했지만, 노동계급을 포함한 대다수 흑인 대중의 염원은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공 인구의 15퍼센트인 1백90만 명이 판자집에서 살고, 48퍼센트는 한 달 소득이 3백22랜드(약 30만 원)밖에 안 된다. 백인과 흑인 간의 격차도 여전하다.
여전히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 때문에 ANC 정부의 인기는 꾸준히 하락했다. 2000년대부터는 시위가 연평균 7천 건 일어났고, 세계경제 위기가 닥친 2010년부터는 파업도 활성화됐다.
2012년 마리카나 광원 2만 3천 명이 벌인 비공인 파업은 이런 투쟁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남아공 경찰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총을 쏴 34명을 살해했다. ‘마라카나 학살’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학살이, 그것도 흑인 정부가 흑인 노동자들을 학살한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마리카나 파업은 결국 승리했고, 2014년 백금 광산 노동자 8만 명이 다섯 달 동안 벌인 전면 파업, 금속 노동자 22만 명의 전면 파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코사투 사무총장 즈웰린지마 바비는 “약탈적 엘리트”라는 말까지 쓰며 ANC 정부를 공공연하게 비판했다. 그러므로 바비가 코사투에서 제명된 일은 단지 코사투의 지도권을 둘러싼 것이 아니었다.
또, 같은 맥락에서 금속노조는 2013년 12월 대의원대회에서 ANC 지지를 철회했고, 2014년 5월에는 새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금속노조가 2014년에 코사투에서 제명된 이유이다. 코사투 지도자들은 기층 노동자들의 이익과 염원을 대변하기보다는 ANC-공산당과의 동맹을 더 중시한 것이다. 게다가 금속노조 제명은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강요하면 오히려 더 큰 분열을 부를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물론 새 노총이 기존 노조와 다투는 것에만 골몰한다면, 좌파적 대안이자 노동운동의 전진으로 비치기는 힘들 것이고, 심지어는 폭력 사태 같은 일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관건은 새 노총이 기층의 투쟁을 지원하고, 코사투 산하 노조들을 압박해 투쟁에 나서게 하고, 남아공 노동인구의 대다수인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다.
혁명가들은 ANC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준비해야
ANC 정부에 대한 불만은 정치 영역에서도 표출되고 있다. 그동안 ANC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왔는데, 최근 8월 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는 사상 최초로 60퍼센트선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ANC는 주요 지역에서 패배했다. ANC는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를 포함한 지역과 넬슨 만델라 만에 있는 포트엘리자베스에서 백인 기반의 우파적 야당 민주동맹(DA)에 뒤졌다. 경제 중심지이자 남아공 최대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서는 1위를 했지만 44.5퍼센트 득표에 그쳐 단독으로는 정부를 꾸릴 수 없게 됐다.
ANC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우파적 야당인 민주동맹이 수혜를 입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상대적 좌파인 경제자유투사당(EFF)이 급성장해 왔다. 경제자유투사당은 창당 1년도 채 안 돼 실시된 2014년 5월 총선에서 1백만 표 이상을 득표해 국회의원 25명을 확보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득표율이 8.25퍼센트로 약간 줄었지만 3위에 올랐고, 주요 지역에서는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남아공에서 새 노총의 출범은 ANC와는 다른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데서 커다란 일보 전진이 될 수 있다.
또, 금속노조 사무총장 어빈 짐이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인용하며 “민주적이고, 노동자가 통제하고,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상황은 (그의 마르크스주의가 혼란스러운 것일지언정)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정치를 주장하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물론 ANC와 코사투의 인기가 떨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들이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의 정치적 계승자로 여겨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들을 금방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일 것이다.
더욱이 새 정당을 출범시키는 것은 ANC가 아닌 진정한 정치적 대안을 준비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ANC를 대체할 정당의 정치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역사를 돌아보면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투쟁의 결과로 집권한 세력이 ANC가 된 것은 당시 혁명적인 경쟁 좌파가 취약했기 때문이지, 결코 불가피했던 일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투사와 혁명가들은 ‘노동자주의’(연성 신디컬리즘, 즉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 갇혀 ANC의 민중주의 정치를 추수하거나 대결을 회피했다. 그 덕분에 권력 문제가 제기되자 ANC가 빠르게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ANC는 코사투 창설 당시 노조 내에서 소수파였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ANC-공산당-코사투 삼각동맹의 장악력이 날로 느슨해지는 기회를 이용해 진정으로 혁명적인 정치 조직의 뿌리를 내리려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