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10주기: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단속·추방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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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방침을 밝혔다. 악명 높은 광역단속팀을 2개에서 4개로 늘리고 상·하반기에 각각 10주씩 합동단속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낳을지 보여 주는 사건이 10년 전 있었다. 바로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이하 ‘여수 참사’)다.
2007년 2월 11일 새벽, 여수 외국인보호소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억울하게 구금돼 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10명이 불에 타거나 질식해 사망했고, 17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화재 발생 초기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이중으로 된 쇠창살 문을 열어달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했다. 새로 지은 지 2년 밖에 안 된 건물이었지만 스프링클러와 같은 기초 안전 설비조차 없었고, 화재경보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대응과 안전 장치 미비는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 당시 보호소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일한 행동지침이 “재소자 탈출 방지”였다. 그래서인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까지 수갑을 채웠다. 심지어 참사에서 살아남은 28명을 제대로 된 건강 검진도 없이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다시 구금했고, 이들 중 17명을 강제 추방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 따위는 애초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참사로 드러난 외국인 ’보호소’의 실상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종일 햇볕도 들지 않는 좁은 보호실에 수용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가둬놓고 CCTV로 감시했으며 직원들의 폭언과 폭행은 일상이었다. 이불과 실내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진동해 이용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참사 발생 전에도 탈출하려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등 비극적 사건들이 있었다.
이렇게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인간 이하로 취급한 것은 2004년 8월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와 무관치 않았다. 이주노동자 유입은 늘리면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원칙적으로 금지할 정도로 노동권은 극도로 제약하는 제도가 고용허가제다.
이 제도를 정착시키려고 당시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에 열을 올렸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약 9만 명을 단속해 7만 6천여 명을 강제 추방했고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얼마나 야만적이었던지 당시 단속은 “인간 사냥”으로 불렸다.
이런 단속이 했던 구실이 무엇인지는 여수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고(故) 에르킨 씨는 1백80만 원의 체불 임금을 받지 못한 채 11개월 넘게 갇혀 있다가 변을 당했다. 중국 동포 고(故) 김성남 씨는 양식장에서 밤낮 없이 일하고도 1천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해 체류 자격을 변경하려고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갔다가 구금된 상황이었다. 미등록이라는 딱지와 단속·추방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견디라고 강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즉, 참사의 진정한 원인은 정부의 야만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있었다. 그런데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런 진실을 감추기 위해 화재 원인을 구금돼 있던 이주노동자의 방화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국가의 살인이나 다름 없는 이 끔찍한 참사에 분노한 전국 80여 개 단체들이 공대위를 구성해 투쟁을 벌였고, 서울역에서 1천 명 규모의 항의 집회도 열었다. 그 결과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배상과 출입국관리국장 사임 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된 정책들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겪어 온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지난해만 돌아봐도 외국인보호소 내 인권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구금된 이주 여성에게 생리대를 지급하지 않아 수건으로 대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구금된 이주노동자가 실명된 눈 치료와 장애보상 등을 요구하며 단식과 자살 시도를 하고,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보복성 강제출국을 시킨 일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발간한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외국인보호소가 “구치소 또는 교도소와 사실상 동일한 구금시설”이라며 “외국인 보호시설 내 보호외국인들의 처우는 여러 측면에서 … 수형자의 처우보다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여수 참사가 벌어진 지 불과 몇 달 만에 단속을 재개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만으로도 3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단속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했다. 지난해에도 수도권·영남권 광역단속을 벌여 경주에서는 단속 도중 이주노동자 다리가 부러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마석에서는 14개월 된 아이의 엄마까지 단속했다. 그런데 이런 광역단속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위협한다며 이런 야만적인 단속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이주노동자는 모두 정부가 필요로 해서 입국시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곳에서 일하며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으로 이용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체류기간과 체류자격 등을 제한하고, 이를 어기면 미등록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아,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벗어나면 미등록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정책 때문에 차별과 더 열악한 조건을 강요 받는 피해자들이다. 내국인의 일자리와 임금을 빼앗는 진정한 적은 정부와 기업주들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6대 적폐의 하나로 성과연봉제가 꼽히는데도 정부는 “노동개혁”을 계속 밀어붙이기 위해 안달이다. 이주노동자를 속죄양 삼아 이런 책임을 감추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주 운동 단체들은 올해로 10주기를 맞은 여수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당시 참사를 낳은 정부의 야만적인 정책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번 한 주를 추모주간으로 정했다. 6일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세종로출장소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다양한 행동들을 벌이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가 열리는 11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집회도 열린다.
정부는 참사의 원인이었던 야만적인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모두 합법화해야 한다. 또한 인권침해의 온상인 외국인보호소를 폐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