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사회의 성격에 관한:
박노자 교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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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박노자 교수
그러면서 박노자는 스탈린주의 체제와 러시아 혁명의 관계를
박노자는 2006년에 한 인터뷰에서는 옛 소련과 북한 사회가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국가자본주의론을 두고
처음에 토니 클리프는 에르네스트 만델의 요청으로 동유럽
연속과 단절
박노자가 곡해하는 것과 달리, 국가자본주의론은 1920년대 후반 스탈린의 반혁명으로 변모된 옛 소련 체제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낳은 체제에 견줘 연속적 측면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스탈린주의 체제는 러시아 혁명으로 형성된 국가의 일부 형식
그러나 스탈린주의 체제의 내용은 러시아 혁명과 분명한 단절이 있었다. 무엇보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일국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러시아 농민은 강제로 토지를 빼앗기고 집단농장에 들어가야 했다. 저항하면 고문을 당하고 피살됐다.
“도시의 노동자는 공장에 대한 노동자 관리권을 몽땅 빼앗겼다. 뿐만 아니라 노조 결성권, 단체교섭권, 쟁의권 등 노동기본권도 모두 빼앗겼다. 일인 경영자가 모든 결정권을 독점했다. 임금 억제와 노동 통제를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지닌 단체는 국가에 완전 예속된 채 생산할당량 채우는 데 동원되는 기구 구실을 했다.” (최일붕)
마르크스 이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을 장악했기 때문에, 국가기구를 직접 통제해 통치하지 않아도 지배계급일 수 있다. 반면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국가를 세워 그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한
옛 소련
토니 클리프가 지적했듯이,
게다가 옛 소련과 달리 북한은 혁명적 투쟁이 일어난 적도 없이 오로지 소련 탱크에 의해서 소련과 같은 체제가 이식됐다.
고려인 강제 이주
박노자가 스탈린주의 체제가
그런데 박노자는
그러나 가혹한 차별과 억압으로 파편화돼 집단적 저항이 불가능했던 소수집단의 사람들이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거기에 편입되고자 애쓴 것이 그 사회가 진보적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여성, 유색인종, 동성애자들의 일부가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애쓰니 자본주의도 진보적인가? 이렇게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맥락을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일부 사실만 취사 선택하는 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박노자의 스탈린주의 체제 변호론은 북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 당시에도 그는 북한에는
박노자는 옛 소련과 북한 등이 자본주의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