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단교 사태, 이란 테러 …:
트럼프 시대에 중동은 한층 더 요동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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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이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카타르가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한편 6월 7일 이란에서 호메이니 묘지와 국회의사당에 대한 테러 공격이 일어나자, 이란은 (테러를 자행했다고 자처하는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다.
주류 언론은 이런 갈등의 원인이 1천4백 년 전에 후계자 문제를 놓고 이슬람이 수니파(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이란)로 분열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설명에는 중동 사람들이 종교에 사로잡혀 허구한 날 갈등을 일삼는다는 인종차별 관념이 깔려 있다. 이런 설명은 중동이 평화로워지려면 미국 등 서방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따금 동반한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이 서로 반목하는 진정한 원인은 바로 제국주의 체제에 있다.(그리고 미국은 그 정점에 있다.) 지금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서로 중동의 맹주가 되겠다는 정치적 이유로 다투는 것이다. 그런 야심은 또한 지배자들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자국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하다는 체제의 동역학에서 비롯한다.
1979년 이란 혁명 전까지 이란의 왕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은 상대국을 방문하고 만나서는 서로 치켜세워 줄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였다. 그러는 것이 미국 주도의 당시 국제 질서에 영합하고 아랍 민족주의라는 당시 공동의 적에 대처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친미 파흘라비(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미국에 반기를 드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집권하자 둘의 우호적인 관계는 깨지기 시작했다. 친미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이라크 전쟁(1980~88년)에서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나빠졌다. 오늘날 갈등의 뿌리는 1천4백 년은커녕 40년도 채 안 되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부터 오바마 하의 난장판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이 격화하는 최근 상황은 중동이 지금보다도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지난 몇 년간 두 국가 사이의 긴장은 크게 고조된 것도 제국주의 체제 질서의 변동과 관련이 있다. 2003년 미국은 유럽·일본·중국 등 다른 강대국들에게 자신의 세계 지배력을 각인시키려고 이라크를 침공·점령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완전히 실패했다. 현지의 강력한 점령 반대 운동과 세계적 반전 운동 덕분이다. 미국은 9년 동안 이라크에 막대한 돈과 군대를 투입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안정적인 친미 정부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한국의 노무현 정부도 지지자들을 배신하며 이라크에 파병해 미국을 거들었다.
결국 미국은 이라크 저항 운동을 종파별로 분열시키려고 인접한 이란의 영향력에 기댔다. 미국은 아래로부터 저항으로 쫓겨나기보다는 차라리 이란에 손을 빌려서라도 사태를 안정시키기를 원했다. 이란 지배자들은 이라크인들의 해방보다는 자신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그에 응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주요 하위 파트너로서 이란을 적대시하며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워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크게 반발했다. 특히 두 국가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가운데 2011년 아랍 혁명이 터졌고, 중동 지배자들 모두를 떨게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해 연안국 왕정들은 미국의 핵심 파트너인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는 동안 미국이 속절없이 지켜만 본 것에 특히 경악했다.
하위 파트너들
이란 역시 주요 동맹국인 시리아 정권이 혁명으로 전복되고, 수년간 공들인 이라크 정부가 다시금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이란은 아랍 혁명의 불길을 꺼뜨리려고 중동 도처에서 반혁명을 지원했다. 특히, 지리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사이에 위치한 시리아에서 이란은 학살을 자행한 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 중 지독한 종파주의자들을 지원하며 시리아 혁명을 종파적 대리전으로 비틀었다. 최근 아이시스가 이란을 겨냥해 테러를 벌인 것도 시리아 정권의 학살에 분노하는 아랍인들의 공분을 종파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인 듯하다.
오바마 시절 미국은 전략적으로 중국 견제에 더 무게를 두려 하며 중동에는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등이 곳곳에서 살인적 경쟁을 벌이되 어느 한 쪽도 완전히 승리하지는 않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의 하위 파트너들은 이런 미국에 불만이 커졌다.
트럼프가 직면할 중동이라는 난제
이렇듯 미국은 자국의 경제력 지위의 상대적 하락, 이라크 점령 실패로 인한 패권의 위기, 폭발한 중동의 정치 위기 때문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직접적 개입이 약화된 상황에서 미국의 하위 파트너들은 더는 미국이 지켜 주리라 기대하기 힘든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도처에서 다투고 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싹을 자르겠다며 (미국에게는 부차적인) 예멘 폭격에 열을 낸다.
반면 오바마가 아이시스에 맞서겠다며 만든 국제연합군에는 60여 국이 참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참여는 미미하다.
미국의 또 다른 주요 동맹국이자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중동 문제에 관한 한 자국 내 소수민족(쿠르드족)의 저항 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보며 필요하면 러시아와도 가까워질 의사를 보이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 내 일부는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가 중동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하며 하위 파트너들을 다시금 추스려 그들이 미국을 대신해서 더 많은 구실을 하도록 하려는 듯 보인다.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서 1백조 원이 넘는 규모의 무기 수출을 약속했다. 국무장관 틸러슨은 “이란의 해로운 영향력” 운운하며 그동안 오바마에 실망했던 걸프해 연안국 왕정 지배자들을 기쁘게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장관과 서열 3위인 제2왕세자는 트럼프를 가리켜 “무슬림의 진정한 친구”라고 치켜세워, 트럼프 때문에 고통받는 평범한 무슬림들과는 동떨어진 별천지에 살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에 고무돼 그간 이란과 아랍 혁명에 대처하는 방식이 자신들과 달랐던 카타르에 규율을 부과하려고 ‘단교’라는 카드를 꺼내 든 듯하다.(〈한겨레〉 등은 카타르를 개혁 군주국인 양 묘사하지만 카타르는 ‘국제 노예노동지수’가 세계 5위이고, 극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월드컵 경기장 건설 노동자들이 1천 명 넘게 사망할 정도로 끔찍한 나라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와 미국 네오콘 등이 이란에 주요하게 투자하는 유럽과 한국 기업(포스코, SK텔레콤, 산업은행) 20여 곳을 대상으로 불이익 조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6월 초 폭로되기도 했다(〈더인터셉트〉). 지난해 오바마가 이란 경제 제재를 푼 효과를 약화시키기 위함이다.
엇박자
그러나 오바마를 괴롭힌 문제에 트럼프도 곧 직면할 것이다. 즉, 미국 단독으로는 중동을 안정시키기 어렵고 하위 파트너들이 공동 행동에 나서도록 조율하는 것이 까다롭다는 문제 말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이란을 배척할수록 이라크가 불안정해지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가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러시아가 시리아 정권을 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도 난제다.
미국 경제 부흥책 문제와 마찬가지로 미국 지배계급의 상당수는 트럼프의 행보를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카타르와의 단교를 발표했을 때 트럼프는 즉각 환영했지만 국방부는 ‘카타르는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라는 엇박자 논평을 반복적으로 냈다. 미국과 함께 이란 핵협상에 참가했던 독일 외무장관도 “카타르와의 대외관계를 그렇게 ‘트럼프화’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와 미국의 중동 전략이 최종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중동 노동자와 민중의 고통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 체제가 온존하는 한, 미국의 직접 개입 약화만으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중동의 주요국들은 저마다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각축전을 벌일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국내 정치 위기 탈출을 위해 중동에서 군사적 도박을 새로이 벌이려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중동과 세계 도처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열강이나 지역 맹주 자리를 노리는 지배자들 사이의 협상, 또는 그중 특정 세력을 편들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경쟁을 낳는 자본주의 자체를 공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