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 맥그리거 방한 강연:
섹슈얼리티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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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오랜 활동가이자, 신간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성차별, 성폭력》(책갈피)의 저자 실라 맥그리거가 7월 20~23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7’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7월 23일에 실라 맥그리거가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이 글에서 설명하는 섹슈얼리티와 사회 사이의 연관, 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은 여성차별과 섹슈얼리티 억압에 맞서 싸우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자가 덧붙인 것이다.
발제
제가 처음 한국 맑시즘에 연사로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을 때, 굉장한 영광으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섹슈얼리티와 자본주의’라는 이 주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성생활과 성에 대한 태도 제반을 일컫는 말인]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저는 마르크스가 인간과 인간 본성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엥겔스가 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수행한 구실〉이라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책자를 권하고 싶습니다.[국역: ‘원숭이의 인간화에서 노동이 한 역할’,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5》(박종철출판사)] 이 책에서 엥겔스는 인간이 자연과 별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 특히 의식을 지닌 일부라고 규정했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동물인 만큼 먹고 자고 성생활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먹고 마시고 자고 성생활을 하는 방식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함에 따라 바뀌어 왔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더라도 우리가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이 우리가 자라나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서 어떤 언어 환경에 노출돼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한 취향도 자라나면서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죠. 또 어떤 음절을 구분하는 능력이나 어떤 사물을 분간하는 능력도 문화적·환경적으로 결정됩니다.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로 사회 환경의 제약을 받으며 역사적 변천을 겪었습니다.
물론 초기 인류의 성생활이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인데요. 그러나 인류가 비교적 초기에도 사회적 동물로서 진화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간 종과 비슷한, 사촌 격인 다른 영장류들의 성생활을 보면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많은 동물들에게 있어서 성 행위라는 것은 단지 생식의 수단인 경우가 많고 발정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올 때에만 성행위를 하고 새끼를 낳습니다. 반면 인간에 가까운 일부 영장류, 예컨대 보노보 침팬지 같은 경우를 보면 성이 단지 생식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 행위 파트너들 간에 기쁨을 주고 호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의 일부분으로서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영장류들의 성 행위를 보면 인간의 성생활도 생식 목적뿐 아니라―물론 생식 목적도 있죠.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오늘날 여기 있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호혜적인 상호작용의 일부로서 발달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인간의 성에 대한 한 가지 흔해빠진 편견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 편견은 남성이 홀로 활을 들고 사냥에 나서 먹잇감을 잡아 오면, 그동안 수동적으로 얌전히 기다린 여성이 남성의 성행위를 받아 줬다는 거죠. 남성은 아주 성적으로 공격적인 존재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서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협력적으로 노동하면서 진화해 온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인간의 성 행위도 결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단지 여성과 남성 간의 성 행위만이 아니라 동성 간의 성 행위도 얼마든지 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이뤄졌을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민속학적 진술을 봐도 알 수 있는데, 예컨대 캐나다에 갔던 가톨릭 선교사들의 기록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가톨릭 선교사들은 캐나다 이로쿼이 원주민 사회에 선교를 하러 갔는데 거기서 남녀가 평등하고 자녀들을 집단적으로 양육하는 걸 보고서 경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일부일처제를 확립시키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게 만들려는 등의 시도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중간 단계를 확 건너뛰고 선사시대에서 자본주의 초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주되게 영국과 미국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다루겠는데,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이냐가 아니라 제가 적용할 방법론입니다.
몇몇 증거를 보건대 중세 시대에는 성관계를 하는 남녀가 서로 결혼할 거라는 전제를 깔긴 했지만 혼전 성교에 비교적 관대했던 듯 합니다.
자본주의가 처음 태동하면서 공장 체제가 확산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종래의 작은 촌락 단위 사회에서 나이 든 어르신들, 교회, 성직자들이 행사하던 영향력에서 사람들은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도시로 인구가 밀집된 결과, 특히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성관계가 더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공장을 중심으로 술집들이 많이 생겨났고 고된 노동에 지친 남녀들이 음주와 성관계에서 위안을 찾았습니다. 성매매도 굉장히 만연해 있었는데, 자기 아내가 생계 해결을 위해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것을 남성이 발견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대거 공장으로 내몰리고 또 여성들도 끔찍한 악조건 하에서 출산하고 영아 사망률이 엄청나고 또 너무 고된 노동으로 평균 수명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지배계급은 남녀 관계와 출산과 재생산이 이뤄지는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먼저 혼전 성관계를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섹스는 결혼한 남녀 사이에서 이뤄져야 하고 혼전 출산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성적 만족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이렇듯 성 도덕이 엄격하고 보수화되는 맥락에서 메리 여왕이 여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침대에 누워서 성관계를 할 때는 오로지 영국을 생각하라.” 여성의 성적 만족이라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윌리엄 액튼이라는 유명한 의사가 당시 썼던 의학 서적에는 이렇게도 씌어 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대다수 여성들은 어떤 종류의 성적 감정이나 자극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혼전 성교 안 된다, 동성애 안 된다, 여성이 성 행위를 즐겨서는 안 된다, 성행위의 목적은 오직 생식에 있다’는 등 보수적 성도덕을 부과했지만 동시에 남성은 여성에 비해 어느 정도 그런 규범에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은 성매매에 기대 성욕을 충족시키려 했고, 이는 성매매가 더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성매매는 또 죄악시 됐고, 혼외 출생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낙인이 가해졌습니다. 혼외 관계에서 아이를 출생한 엄마는 아이를 강제로 빼앗기는 등 끔찍한 고초를 당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과거 혼외 출생자들을 엄마한테서 강제로 떼어놓은 일이 최근 밝혀져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믿을 만한 피임 수단도 없는 상태에서 혼외 출생을 이처럼 가혹하게 단죄하는 분위기는 여성에게 엄청난 압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누구나 다 그 압력에 굴복한 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임신한 채로 배가 조금 나온 웨딩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커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여성은 [혼전/혼외 성관계를] 하면서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나쁜 것이다’ 하는 내면의 도덕적 목소리, ‘머릿속의 경찰’에게 짓눌려야 했고 이는 임신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가 되면 이런 상태가 극적으로 바뀌었고 제2차세계대전의 여파 속에 한층 더 크게 바뀝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특히 1941년부터 여성들이 전쟁 물자 생산 인력으로 동원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0~30세 여성들이 다 군수 물자 생산 공장으로 징집됐고, 그 다음에는 40세 여성까지, 그 다음에는 기혼 여성들까지 징집됐습니다. 그 결과, 가정에 갇혀 있던 여성들은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를 이제 누리게 됐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한번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들은 전장에 나가면서 자기가 살아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마찬가지로 후방에서 전시 물자를 생산하는 여성들도 폭격 때문에 자기가 과연 몇 년 뒤에 살아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엄청난 불확실성이 존재했던 것이죠. 전장으로 자기 남자친구나 남편이나 약혼자를 보낸 사람들도 그 관계가 지속될지 확신할 수가 없었고, 또 자기 자신이 살아남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죠.
그리고 여러 증거를 볼 때 이 때문에 여성들이 예전보다 훨씬 과감한 성생활에 도전하게 됐던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성관계 한번 못 해보고 죽긴 억울하잖아’ 하는 거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원 나잇 스탠드’도 하고 그랬습니다.
재미있게도 제 부모님도 그런 식으로 만났다는데, 제가 어릴 때는 그런 얘기 안 해줬습니다. 어른이 돼서 얘기해 줬습니다. [좌중 폭소] 그래서 1946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얘 아버지가 누구지’ 하는 얘기를 많이 했답니다.
그런데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를 거치면서 더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첫째로 여성들이 점점 더 노동 현장에 진출했고 그것이 하나의 정상 상태로 자리잡았습니다.
또, 피임약과 콘돔이 더 많이 보급되면서 여성들이 전보다 더 쉽게 가족을 계획했고, 가족의 규모를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가족 규모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리고 피임은 성행위의 쾌락적 측면과 생식적 측면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 줬습니다.
그리고 1967년에 [낙태를 허용하는] 낙태법이 제정되는 등 성행위가 점점 더 즐거움의 수단으로서 장려되기에 이릅니다. 물론 주되게 남성이 성행위의 즐거움을 누리는 주체로 묘사되긴 했지만, 성적 즐거움이 부부간의 사랑을 더 끈끈하게 하는 수단으로 강조됐습니다.
이 당시에 경제가 호황이었기에 사람들은 일자리 걱정이 없었고, 장차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고 경제적 미래에 대해서 낙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낙관적 분위기를 타고 검열도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같은 소설이 유명한 재판을 통해 검열 제도에 공공연하게 도전했습니다. 또 그러면서 성에 대해서 말하고 쓰고 의논하는 것이 좀더 자유로워졌습니다. 로큰롤 음악 같은 아주 발칙한 음악도 인기를 끌게 됐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서점에 가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사서 읽었는데, 주되게 정사 장면을 읽기 위해서였습니다. (문학 작품으로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요.)
이 시기는 또한 젊은 여성들이 긴 머리 대신에 단발머리도 하고 싶다고 요구하던 때였고, 긴 치마 대신 청바지나 미니 스커트를 입는 등 여성의 외모에 관한 종래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자랐던 저도 복장 문제를 가지고 제 학교 담임선생이랑 논쟁을 벌인 기억이 납니다. 담임이 “너 그렇게 짧은 치마 입으면 성적으로 남자들 자극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길래 당시 저는 “아뇨, 그런 거 아닌데요. 그건 선생님 생각이고 제 알 바 아니네요. 선생님이 생각을 바꾸세요” 하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대거 사회에 진출하고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사회적으로 여성의 처우에 대한 기대 수준도 많이 높아지던 시기였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킨제이 보고서’, ‘마스터즈&존슨 보고서’ 등이 발표돼 사람들의 실제 성생활이 어떠한지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졌습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실제로 성 관계를 할 때 “영국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동의 없이 10대 여자 아이들이 피임약을 구할 권리,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으로 굉장히 시끌벅적한 시기였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남편의 동의 없이도 대출을 받는 등 여러 면에서 독립된 성인으로 대접받을 것을 요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대한 투쟁도 벌어졌습니다. ‘킨제이 보고서’는 동성애가 사람들이 흔히 알던 것보다 훨씬 더 흔하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한 가지 테마는 여성도 성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성생활에 대해서 여성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오르가즘이 클리토리스에서 오는 것인지 질에서 오는 것인지, 프로이드의 이론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 온갖 논의들이 공개적으로 벌어졌고, 아주 숨막혔던 이전의 보수적 분위기를 일소했습니다.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고 파트너와 동거하면서 출산도 하고 나중에는 일부 이혼도 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즉 자본주의 역사를 거치면서] 도시들이 성장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만남을 갖고 새로운 관계들을 시도·실험하는 일들이 가능해진 것이죠. 이것은 소규모 촌락 단위로 흩어져 살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를 낳았습니다.
아일랜드 촌락 출신인 제 친구 말이 그곳에서는 가톨릭 신부가 그 마을 모든 가구의 어른들하고 얘기를 하면서 그 자녀들의 행동거지를 아주 세밀하게 알고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신부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허공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경제가 팽창하고,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상승하고, 여성운동, 동성애자 해방 운동이 분출하고 변화를 낳던 상황과 맞물려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본가들에게는 상품 생산 자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생산한 상품을 팔아야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광고를 이용해 성을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성적 표현이 자유로워진 사회적 분위기를 자기 나름으로 이용하고 비틀어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자동차가 됐든 세제가 됐든 어떤 물건이 됐든 이제는 여성의 섹시한 신체 이미지와 결부되지 않고서는 팔기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향수 광고 같은 경우에는 향이 좋아서 사라는 게 아니라, 그 향수를 바르면 남성을 유혹할 수 있다거나 남성들의 유혹을 받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립니다. 가장 잘 팔리는 일간지 〈선〉이 여성의 상반신 나체 사진을 3면에 싣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선을 어디로 돌리든 간에 항상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그리고 상품화하는 광고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후 노동자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 여성 운동 등이 패배하고 후퇴하는 가운데서도 성의 상품화는 계속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이 때부터 성 상품화는 양상이 다르게 전개됩니다.
1960~70년대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이 성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여러 운동들이 퇴조하면서 나타난 현상은, 이제 다시 남성의 성적 만족이 그 중심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남성 잡지들이 등장합니다.
달리 말하면, 1960년대 성 해방의 결과로 여성들이 성적 주체로 인정 받고 여성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부상했는데, 이를 다시금 밀어내고 남성이 주도권을 되찾고 여성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흐름이 등장합니다.
또 1990년대 들어서는 ‘포스트 페미니즘’ 사상, 즉 여성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미 남성과의 평등을 이뤄냈으므로 더는 운동이 필요없다는 사상이 유포됐습니다. 그 결과, 남성의 욕구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종속시키는 온갖 종류의 행태들이 이제는 여성의 권한을 더 신장시키는 활동인 양 포장됩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남성의 욕구에 종속시키는 세태가 더 악화됐습니다. 휴대폰만 있으면 남의 눈치 안 보고 뭐든 볼 수 있죠.
한 가지 아이러니를 지적해 보겠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식생활의 맥도널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허리 둘레는 점점 커지고, 그 결과로 사람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여성들은 모델과 같은 특정한 몸매에 자신의 몸을 맞춰야 한다는 압력을 어릴적부터 받습니다. 가슴 크기가 일정 정도 규격에 맞아야 된다는 것이죠. 16세 성인이 되는 해에 성인식 선물로 유방 확대 수술을 받기도 하는 그런 세태가 나타났습니다. 포르노에서 유포하는 여성의 성기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해서 성기 성형수술 같은 것을 받기도 하고요. 그걸로 모자라서 또 우리 여성들은 영원히 젊은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나이 들어서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면 매주 한 번씩 보톡스 주사까지 맞으면서 얼굴을 쫙 펴야 한다는 압박까지 받습니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모종의 규격에 맞추도록 여성의 몸이 말 그대로 구조조정되는 것입니다.
대기업 임원이나 국회의원, 지배계급의 일원이 된 여성도 [남성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여성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파워 드레싱’에 신경 써야 합니다. 여성들은 또 6인치나 되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꽉 끼는 치마를 입고 우스꽝스럽게 걸을 수도 있어야 하는데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데, 그에 더해서 ‘랩 댄싱 클럽’, 봉춤 같은 것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봉춤은 요즘 건강에 좋은 운동이라고 포장됩니다.
봉춤이 여성의 지위를 신장시키는 활동이라는 궤변은 이렇습니다. 여성이 성적인 춤을 추면서 남성을 유혹하면 결국은 남성에게서 돈을 뜯어낼 수 있고 그러면 그 여성의 지위가 신장된다는 논리입니다. 남성들이 자기를 음흉하게 쳐다 보면서 만지려 들수록 그만큼 자신의 지위가 신장된다는 논리를 저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죄다 말도 안 되는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성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들이 평등한 관계에서 상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고 성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반면 랩 댄싱 업소 등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더라도 이게 성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봉춤 댄서는 자릿세를 내야 하는데 남성 고객한테서 팁을 한 푼도 못 받으면 결국 자기 돈을 내면서 거기서 일합니다. 그리고 남성들한테 그런 굴욕적인 시선을 감내하면서 팁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해방이겠습니까? 그건 남녀간의 자유롭고 호혜적인 성 관계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봉춤이나 성매매가 성 상품화의 한 형태라고 해서 거기서 종사하는 여성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분들을 우리가 업신여기거나 낙인 찍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직종이 [여성의 지위를 신장시킨다는]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이동통신과 포르노 산업이 발달한 결과로 어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냐면, 청소년 여학생들이 자기 남자친구에게 전체든 부분이든 자기 나체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 사진을 전송 받은 남자가 때로는 그걸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하죠. 그리고 젊은 남성들 일부는 여성들에게 오럴 섹스를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세태도 있습니다.
요컨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많은 염원과 그 당시에 이뤄진 많은 진보가 오늘날 왜곡돼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포르노가 유일한 성교육 수단입니다. 포르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요.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포르노가 결코 두 사람들이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속에서 상대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혀 아니죠. 적어도 주류 포르노는 결국 여성의 몸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내용입니다.
또 한 가지 불행인 것은, 오늘날 남녀 불문하고 아주 어린 아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가 만연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유소년 축구팀 코치들이 자기 지위를 이용해 어린 소년들을 여덟 살 때부터 성적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 거듭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10년 동안 영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화이트 웨딩’이라는 것이 굉장히 유행했는데 엄청난 돈을 들여서 굉장히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영국에서는 젊은 층 사이에서 젠더는 유동적이고 스스로 부여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거의 상식처럼 퍼져 있습니다. 굉장히 개방적인 면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가 집권해서 최초로 한 일이 바로 낙태를 지원하는 모든 비영리단체에 대해 정부 지원금을 끊는 법안에 서명을 한 것이었죠. 또 전 세계 여성들에게 피임 도구를 보급하는 유엔 인구 기금(UNFPA)에 대한 지원도 중단했습니다. 그 수혜를 받아 왔던 여성들은 결국에는 뒷골목의 위험한 낙태 시술로 또다시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성에 대한 태도는 과거에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개방적이지만 우리는 아직 성 해방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품 생산에 기초한 이 사회가 성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큰 불평등을 겪고,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인 어린 아이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성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회를 인간화하는 것뿐이고 그 방법은 사회주의 혁명입니다.
정리 발언
자본주의 초기에 국가가 성을 규제할 때 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규제되지 않았냐는 질문부터 답하겠습니다.
남녀가 결혼해야 하고 혼외 관계에서나 혼전에 임신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남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이 임신을 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여성이 더 크게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죠.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불문율이 하나 생겨났는데, 젊은 남녀가 서로 연애를 하다가 아이가 생기면 그 남성이 여성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남성도 결코 규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노동계급 남성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과] 검열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도덕이라는 것이 마치 ‘머릿속의 경찰관’처럼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고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그런 측면에서 성과 신체, 성행위에 대해서 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이런 자기 검열 장치들을 허물어뜨리는 데 아주 중요한 발전이었습니다.
반면 ‘어떠어떠한 행위는 안 된다’는 모종의 자기 검열을 내면화 한 사람은 자신 있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성관계를 할 때 서로의 나체를 봐서는 안 된다는 관념 때문에 옷도 다 벗지 못하는 시절도 한때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일붕 동지가 [파리 코뮌을 지지했고 여성의 성기 등을 과감하게 묘사한] 꾸르베의 미술 작품 같은 걸 말씀하셨는데요, 그처럼 자유로운 성적 표현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머릿속에 경찰관이 있어서 자기 검열이 이뤄진다면 꾸르베의 그런 그림을 보더라도 굉장히 불편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자유로운 표현인데, 기존 관념에 얽매여 ‘이런 건 해서도 안 되고, 봐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심지어 자기의 벗은 몸을 보는 것도 굉장히 불편할 수 있는 거죠.
동시에 저는 포르노는 굉장히 증오합니다. 포르노의 핵심은 여성을 비인격화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남성도 함께 비인격화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씨름해야 할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머릿속의 경찰관’을 쫓아내면서도 그와 동시에 역겨운 포르노 같은 이미지들에 길을 열어주지 않느냐, 어떻게 그 균형을 맞추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수들과 댄서들에 대해서는 길게 말씀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가수들의 성적 표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가능하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사회주의 사회가 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나름의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컨대, 저는 예전에 마돈나의 무대를 한 번 본 경험이 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무대였는데, 어떻게 보면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관계에 대한 종전의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또 종전의 관념을 더 강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결국은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보고 따져야 할 것 같 습니다.
예술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저는 아주 운 좋게도 어릴 적에 뒤러의 ‘내 어머니의 손’이라는 작품[1]을 봤는데, 이렇게 [합장하듯] 어머니 손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매우 주름진 손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고 그래서 제가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한탄할 때마다 그 그림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렘브란트가, 자기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계속 그린 자화상들을 보면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을 바꿔 놓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므로 남은 질문들은 짧게 답을 드리겠습니다.
성매매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성 구매자, 판매자 할 것 없이 성매매를 완전히 비범죄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매자 남성을 처벌한다고 성매매가 사라질 일은 없습니다.
레닌이 [젊은 당원들이 연애에 매달리는 것을 비판하며] 쓴 그 구절에 대해서는 레닌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동지가 소개한] 아일랜드 사례에 대해서 더 말씀 드리겠는데요,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이윤보다 사람을’이라는 단체가 정부의 수도세 도입에 맞서서 아주 강렬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수도세가 도입되면 노동계급이 가장 직격탄을 맞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캠페인이 벌어지던 와중에 마침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개헌] 국민투표가 치러져 동성결혼이 합법화 됐습니다. [캠페인 결과로 수도세 도입도 막았다.] 이런 성공이 발판이 돼 이제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헌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국민 투표를 요구할 자신감까지 생겼습니다.
요약하자면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자신감, 낡은 도덕관에 대한 도전, 사람들이 맺는 관계, 이 셋 사이에는 서로 복합적인 영향이 있고 함께 움직입니다. 그 예로 두 가지를 들겠습니다.
첫째는 1930년대 스페인 혁명입니다. 스페인이라는 굉장히 후진적인 가톨릭 사회에서 혁명에 참가한 젊은 여성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질문자가 잠은 어떻게 자냐,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냐 했을 때, 젊은 여성이 대답하기를 자기는 그냥 침대에서 다른 남자 동료들과 같이 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성은 다른 남자들과 같은 침대에서 자도 무슨 해를 당하지 않을 걸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2011년 이집트 혁명을 다시 돌아봅시다. 그 당시 타흐리르 광장에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 남녀들이 서로 한데 어우러졌고 무슬림들이 기도를 할 때는 기독교인들이 인간 방어막을 둘러 쳐 우익 깡패한테서 보호해 주고, 기독교인들이 기도할 때는 또 무슬림들이 보호해 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죠. 그리고 이 혁명 과정에서 여성들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런 혁명적 과정은, 마르크스가 왜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어야 한다고 말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과정은 아주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 투쟁 속에서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면서 우리가 종래에 서로를 대해 왔던 온갖 역겨운 방식들을 즉, 마르크스가 “수 세기에 걸친 오물들”이라고 부른 것을 털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오랜 편견들과 역겨운 태도들을 스스로 털어냄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운영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데 적합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닌은 [러시아에서 노동자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마르크스가 옳다는 것을 실천으로 입증했습니다. 그런 레닌은 우리가 하나의 계급으로서 스스로 해방되고 사회를 변혁하려면, 혁명적 조직을 만들어 해방과 변혁의 염원과 각종 사상을 결집시키고, 노동자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그 사상이 사회 변혁 과정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 해방은 노동계급의 해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그것을 실현하려면 우리는 조직으로 뭉쳐야 하고 조직화 해야 합니다. 저는 1971년부터 그런 조직에 몸 담아 왔고 아직까지도 몸 담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성의 해방과 노동자들의 해방, 인간 해방을 원하신다면 조직으로 뭉치시길 바라고, 그 조직이 노동자연대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정식 명칭은 ‘기도하는 손’이고 실제로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의 손을 그리려 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