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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베네수엘라:
좌파는 베네수엘라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가 “군사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대화를 거부하며, “통치에 필요한 자금줄을 끊으려 … 강력하고 신속한 경제 제재”를 가하는 나라가 북한 말고도 또 있다. 베네수엘라다.

최근 4년 동안 베네수엘라 경제는 3분의 1이 축소됐다. 최근 반 년 동안 우파 폭력으로 100명 이상 사망했다. 올해 8월 이래로, 우파 야당 주도의 국회와 친정부 인사로 구성된 제헌의회 사이의 심각한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관련 기사: ‘우익 쿠데타의 위험에 처한 베네수엘라’)

우파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혁명’ 운운하는 좌파 정부의 말로는 혼돈일 수밖에 없다. 국가를 통치 불능 상태로 만들어서라도 질서를 수복해야 한다!

폭력과 혼돈 ‘우리는 돈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마두로 엿 먹어라’ 등의 문구가 적힌 방패를 든 우파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Jamez42

좌파는 우파의 마두로 정부 전복 시도를 규탄해야 한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탄 내는 것도 불사하는 우파가 집권하면, 혹독한 긴축 정책으로 친서민 정책의 흔적조차 지우려 할 것이고 기층 진보 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할 것이다. 이는 가당찮게도 “민주주의” 운운하는 트럼프 같은 자들에게나 좋은 소식일 것이다.

동시에 고(故) 우고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선언에 영감을 받은 좌파는 현실이 제기하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 해야 한다. 십수 년 동안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진행 중인 나라가 왜 이 모양인가? ‘차비스타’(차베스 지지·계승) 정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해야 할 대상인가? “21세기 사회주의”의 이상은 어떻게 실현 가능한가?

‘볼리바르주의 혁명’의 급진적 측면과 한계

그런 질문에 답하려면, 차베스의 ‘볼리바르주의 혁명’이 지닌 급진적 측면과 한계를 모두 봐야 한다.

차베스는 원주민 혼혈 출신으로 대령에까지 진급한 인물로, 1992년에 기성 정치의 부패에 환멸을 느낀 일군의 청년 장교들을 이끌고 군사 쿠데타를 시도해 유명해졌다. 그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차베스의 짧은 연설은, 그로부터 3년 전에 반긴축 민중 봉기 ‘카라카소’를 일으켰지만 사흘 만에 1천여 명이 학살당해 분루를 삼켜야 했던 노동자·빈민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로부터 6년 후 차베스는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돼 개헌을 도모했다. 그 개헌은 ‘볼리바르주의 혁명’을 선언했지만 본질은 노동자 국제 혁명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였다. 새 헌법은 파업권을 옹호했지만 대통령이 임의로 파업을 금지할 권한도 보장했다. 차베스는 신자유주의를 비난하며 국영 석유기업 페데베사PDVSA 민영화를 중단했지만, 노동 유연화 전략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우파는 이조차 마뜩잖아 차베스 정부를 전복하려 들었다.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이 쿠데타를 저지한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 덕분에 급진화했다. 2002년 봄 우파 주도 군사 쿠데타를 저지한 수십만 대중 시위는 우파는 물론이거니와 차베스도 예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같은 해 말 세 달에 걸친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의 경제 마비 시도를 좌절시킨 것 역시 노동자들이 스스로 석유 공장을 가동하고 물자 유통과 분배를 조직한 덕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기존의 어용 노총을 대신할 민주적 노총 UNT를 건설했다. 그리고 이런 운동의 영향으로 차베스 급진화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차베스는 노동자 민중이 주도하는 대규모 사회 복지 정책 ‘미션’을 발족했다. 새 헌법이 보장하는 주민자치위원회도 이 시기에 가장 성행해, 전국적 대중 참여의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화룡점정을 찍듯, 차베스는 UNT가 주최한 2005년 메이데이 집회에서 “베네수엘라가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체제에 도전하지 않은 ‘혁명’

그러나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는 않았다. 자본가들의 소유·통제권은 보장받았고, 고유가 덕에 사적 자본의 규모가 외려 커졌다. 일각에서 ‘사회주의적’ 조처로 찬양받은 국유화는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을 그나마도 국가가 제값 치르고 인수하는 수준이었고, 2002년 말 노동자들이 시행했던 생산시설 직접 운영은 재현되지 않았다. 석유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를 늘리자는 요구는 차베스 자신에 의해 가로막혔다.

이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에도 도전하지 않았다.우파 양당의 입김 하에 있던 기존 국가 관료층은 약화했지만, 국가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됐다. 국가 기구의 규모는 차베스 집권기에 네 배로 늘었는데, 그 자리를 채운 부패한 기회주의자 계층을 일컫는 ‘볼리부르게스’(볼리바르주의 혁명으로 탄생한 자본가들)라는 신조어가 생길 지경이었다. 한편 대중과는 하등 연관 맺은 바 없는 군 장성들의 영향력이 점차 늘어, 오늘날 내각의 절반을 군 출신이 차지하게 됐다.

차베스는 이런 장애물들을 우회하려 했다.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공산당(관련 기사: ‘쿠바 혁명 ─ 진정한 변화를 위한 교훈’)을 모델로 차베스가 창당한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는 그 안에 온갖 관료와 자본가와 ‘볼리부르게스’가 뒤섞여, 혁명을 전진시키는 노동자 투쟁 정당이 아니라 철저한 통제 하에 위로부터의 지시를 전달하는 기구가 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생쥐스트는 “혁명을 절반만 성공시키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라 했다. 2000년대 초 베네수엘라에서는 “성공”의 잠재력이 흘낏 보였지만,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

위기의 베네수엘라 ─ 국가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이 돌파구다

세계경제 위기로 석유 수출 수익이 줄어들면서 베네수엘라는 잇달아 문제에 직면했다. 기층의 헌신에도 ‘미션’은 좌초되기 일쑤였다. ‘볼리부르게스’와 국가 관료들은 공공연히 착복을 일삼았다. 노동자 서민의 생활 개선을 위한 산업 다각화 시도는 완전히 좌절돼, 석유 의존도는 차베스 집권 이전보다도 높아졌다.

노동자 대중의 환멸과 좌절감이 커졌다. 차베스 생전에는 그 특유의 친화력 덕에 개인 지지는 유지되지만 여당 지지는 하락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런 추세는 차베스 사망 후 우파의 총선 대승으로까지 이어졌다. (관련 기사: ‘베네수엘라 총선: 왜 ‘볼리바르식 혁명’이 의회 다수당 자리를 잃었는가?’)

차베스를 계승한 마두로는 한편으로는 (타협 의사가 전혀 없는) 우파와 타협을 시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 투쟁 고무가 아니라) 위로부터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마두로는 생필품 품귀 현상을 조장한 “경제 전범” 명단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자본가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착복된 생필품을 배분하려 물류 창고를 점거한 노동자 파업은 중단시켰다. “거리의 정부”라는 미사여구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혁명 의지’로 극복하라는 독촉이 됐다.

상황이 악화하자 마두로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 그 공격 대상에는 우파만이 아니라 노동자 조직도 포함됐다. 마두로는 지방선거를 유예하면서 노동조합 선거도 유예시켰다. 2015년에 PSUV와 결별한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 ‘사회주의 물결’(Marea Socialista) 사무실을 경찰이 습격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7월 말 제헌의회 소집의 합헌성을 강조하며 이를 혁명의 건재함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두로의 제헌의회는 PSUV의 위로부터 통제 하에 구성됐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열망을 자극했던 1999년 차베스의 제헌의회와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또, 노동자 대중의 ‘적폐 청산’ 염원을 대변하려 하기보다는 우파 야당 주도의 의회를 우회해 마두로의 통치권 강화에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한편 마두로 정부는 군부에 대한 의존을 늘려가고 있다. 일례로, 이번 제헌의회로 마두로가 관철하려는 열대우림 지역 개발 계획은 (차베스 제거 쿠데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계 다국적기업과 군부가 합작해 주도할 것이라 알려지고 있다. 이런 민·관 합작 개발과 해외 투자 장려로 ‘볼리부르게스’들에까지 만연한 부패를 일소하고 민생을 회생시킬 수 있을까? 더구나, 자본주의 억압 기구인 군부에 대한 의존 심화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가 보여 주듯, 베네수엘라에서 우파를 저지하고 “21세기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좌파가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혁명적 정치를 벼릴 조직을 독립적으로 건설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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