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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권력 강화:
중국공산당의 ‘마르크스주의’?

중국공산당 제19차 당대회는 ‘또 한 명의 시황제 탄생’이라고 할 만큼 시진핑 권력이 증대됐음을 보여 줬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진핑을 이을 후계 지도자(들)를 선정하지 않음으로써 시진핑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 그 이유다. 2018년 3월에 열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이 헌법에 추가될지 그리고 국가 주석직의 임기 제한(“연임은 2회를 초과할 수 없다”)이 헌법에서 사라질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출처 중국 인민해방군

그런데 중국공산당 당장(黨章)과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헌법을 더 살펴보면,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사회주의 제도가 이미 확립”됐고, “노동자 계급이 지도하고 노동자-농민의 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독재, 즉 실질적으로는 무산계급 독재가 공고해지고 발전했다”고 돼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노동자 계급이 지도한다고 하는 중국에서 노동조합 결성 권리가 제약을 받고, 노동권을 옹호하던 인권 변호사들이 불법 감금되고, 정부를 비판한 출판사 직원들이 연행되는 일이 왜 벌어질까?

노동자 계급의 지도?

여러 마르크스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은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이 자력으로 해방을 쟁취하는 것을 지지하고 돕는다는 내용일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이다. 이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바꿀 때 필요한 사상과 실천의 지침이 바로 마르크스주의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 노동자들은 ‘해방’됐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이어간다. 2000년 이래로 부쩍 증가한 농민공(농촌 출신 노동자)들 또는 1980년 이후 태어난 노동자 세대(바링허우)의 삶은 한국의 비정규직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기업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지만 노조 결성이나 파업 같은 노동기본권은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학자인 모리스 마이스너는 이미 40년 전에 “중국공산당은 아직도 의례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공산당 정권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변해 버린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고 지적했는데, 오늘날의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번 19차 당대회 시작을 알리는 3시간 20분의 마라톤 연설에서 시진핑은 ‘강성대국’을 26회, ‘인민해방군’ 또는 ‘군대’를 86회나 언급했지만 노동자 계급은 단 한 번만 언급했을 뿐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에는 중국 노동자 계급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진배없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수가 노동자 계급인데, 그 존재가 빠졌다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체했을까? 이를 파악하려면 잠깐 과거로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

1936년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내의 소련 추종자들인 ‘28인의 볼셰비키’(그 지도자는 왕밍)가 소련의 경험을 단순히 글자 그대로 모방하려는 교조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소련의 법칙과 규정에는 소련의 내란이나 소련 적군의 특수성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단순히 글자 그대로 모방하고 아무런 변화도 허용하지 않은 채 따른다면 이는 또한 신발에 맞추기 위해 발을 자르는 꼴이니 패배를 당하고 말 것이다.”

마오쩌둥이 왕밍 세력을 비판한 것이 ‘대장정’(1934~36년) 때였다. 앞서 1925~1927년 상하이에서 노동자 반란이 장제스에 의해 진압되고 좌익모험주의적 폭동도 무참히 희생된다. 그 뒤 남은 공산당 세력은 정강산 주변의 루이진(瑞金)에서 ‘소비에트’를 건설하지만 장제스 군대에 의해 쫒겨나 서쪽의 오지로 도망가게 된다. 이 사건을 대장정이라 한다.

중국 지배자들은 당시 마오쩌둥이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적 상황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실상은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버린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은 1925~27년 혁명 패배 이후 노동자 계급의 혁명정당에서 지식인들이 지도하고 농민 출신의 홍군들이 그 지도를 따르는 게릴라 정당으로 바뀌었다. 또한 1949년 혁명에서도 노동자 계급의 구실은 거의 없었다.

중국공산당이 노동자 계급과 유기적 연관을 전혀 맺지 않았음에도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노동자 계급이 중국을 지도한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을 보면 정말이지 ‘악마도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경구가 생각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1989년 동유럽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벌어지기 몇 달 전 중국에서도 거대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는데, 바로 천안문항쟁이다. 이 운동은 중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성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하면서 시작돼 베이징의 노동자들로 확대됐다. 안타깝게도 6월 4일 천안문항쟁은 무력으로 진압됐고, 그 뒤 중국은 시장 개혁·개방으로 나아갔다.

중국을 개혁과 개방의 방향으로 물꼬를 돌린 인물이 바로 덩샤오핑이었고, 그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것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였다. 이 용어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하나는 소련과 동유럽의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혁·개방의 이데올로기(소위 시장과 사회주의의 병존)를 제공했다는 점이었다.

스탈린이 정식화한 ‘일국 사회주의’론이 국가마다 사회주의에 이르는 길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민족주의에 뒷문을 열어 놓았다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이런 민족주의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었다(그 민족주의는 한족 민족주의다). 즉 공산당 지배가 무너진 소련, 동유럽과는 달리 중국은 점진적 개혁과 시장을 도입해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중국에서 계획경제를 실행한 경험은 전혀 없었다. 1978년 이전에 중국 내에서 시장 메커니즘은 없었을지라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압력(과 이 압력을 받은 중국의 계획 당국)이 생산과 분배를 결정했다. 따라서 중국에는 계획경제가 아니라 명령 또는 지시 경제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상황에서 시장을 도입하게 될 때 생겨날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방지하려면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다. 그것이 흑묘백묘론, 성사성자론(姓社姓資論) 등인데 시장이냐 계획경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경제 발전이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이를 위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고 중국 내의 자원 배분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했다. 그리고 시장과 계획은 상충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개발했다.

중국 경제에 사기업이 증가하면서 민간 자본가들은 경제 발전의 주체로 인정받았다. 장쩌민이 주장한 3개대표론에서의 핵심 내용은 ‘선진생산력 발전 요구’였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선진 문화와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어야 하며, 노동자와 농민 계급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당에 머무르지 않고 민간 기업가들에게 당의 문호를 개방하는 내용이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들을 더 착취해야 했고, 1989년 천안문항쟁 같은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중국의 관변 이론가들은 신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시진핑을 포함한 중국의 지배자들이 한국의 박정희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중체서용

중국 근대사는 지배층의 자체 근대화(양무운동, 변법자강 운동 등)가 실패하고 제국주의 세력한테 짓밟히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때 중국 지배자들 중 개혁파는 중체서용(中體西用), 즉 유교적 질서를 본체로 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활용하자는 논리를 펼쳤다.

중화인민공화국 등장 이후 지금까지 중국 지배자들의 태도가 중체서용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때 본체는 유교적 질서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 발전을 해서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강력한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그 도구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신권위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였다. 이제는 중국 지배자들이 지배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와 공자를 연결시키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오쩌둥 치하를 사회주의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시진핑 체제가 공자학원(공자 아카데미)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노력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50년 전의 비림비공(批林批孔, 린뱌오와 그가 즐겨 인용한 공자를 모두 비판한 운동) 운동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전통적 가치를 강조한 것에 대해 중국학자 다니엘 벨은 “이 행사는 중국공산당이 주최했지만 정작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은 행사에 나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시진핑에게 공맹 사상이 필요한 이유를 류샤오치가 잘 말해 줬다. 류샤오치는 ‘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하다’에서 맹자의 ‘고기심지, 노기근골’(苦其心志, 勞其筋骨)을 인용했다. 하늘이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한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 지배자들이 노동자와 농민에게 희생정신을 강조하기에 딱 맞는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 사상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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