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을 어떻게 발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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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스스로 해방돼야 한다. 조셉 추나라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노동계급 자력해방 사상은 많은 노력 끝에 성취된 것이자, 급진 정치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기여에 속한다며 우리가 그 사상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당시 나는
마르크스가 계급 투쟁을 발견했다고 볼 수도 없다. 여러 사상가들이
이미 1845년에 마르크스는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한 독창적 이해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의 독특한 혁명적 잠재력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마르크스가 정치 문제에 처음으로 관여한 것은 1830년대 말~1840년대 초 철학도일 때였다.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의 추종자 몇몇
한 시대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체제도, 그 합리성이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시대가 바뀌면 전복될 수 있다. 이를 두고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헤겔 사상은 독일의 보수성과 후진성에 진절머리를 내던 급진적 지식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당시 독일은 통일된 국가도 없었고, 영국 같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규모로 산업 자본주의가 발전돼 있지도 못했다. 많은 청년 헤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급진성을 따라 민주주의 운동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안에서 다양한 정치적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1842년 마르크스는 프로이센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민주주의 사상을 펼치던 신문 〈라이니셰 차이퉁〉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훗날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때쯤 〈라이니셰 차이퉁〉은 급진적 기사 내용 때문에 정부의 예의 주시 대상이 됐다. 경쟁 신문사는 〈라이니셰 차이퉁〉이 공산주의 사상을 은근히 부추긴다고 비난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반박했다.
마르크스 사상의 변화는 1843년에서 1844년 초에 쓴 여러 저술에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지지하고 독일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핵심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그는 노동계급의 비참함을 강조했고, 가장 비참한 노동자 대중이 철학이라는 지적 무기와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핵심 사상인

마르크스는 노동자 운동에서 배워야 했다. 중요한 사건은 1844년 6월 독일 슐레지엔 직공들의 반란이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깎는 기계를 부쉈다. 섬유 상인 본부로 행진하는 비무장 군중 3000명을 제압하고자 군대가 투입됐다. 노동자 11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 24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저항해 군인들을 물리쳤지만 다음날 보병, 포병, 기병대가 동원돼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 마르크스의 급진적 동료였던 아르놀트 루게는 노동자를 무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때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자력 활동을 강조했다.
이제 마르크스는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밝혔고, 자신이 노동자 운동에서 발견한 것을 이해하고자 고군분투했다. 1844년 《경제학
마르크스는 여전히 노동자들을 피해자로 여겼지만 동시에 궁핍에 맞서 투쟁하도록 내몰리는 집단으로도 봤다.
마르크스가 노동자 투쟁을 지지한 것과 더불어 둘째 결정적 요인은 1844년 8월부터 이어진 엥겔스와의 우정이었다. 당시 엥겔스는 섬유공장 사장인 아버지가 피터 에르만 회사와 동업을 맺은 맨체스터에서 일을 돕다 갓 복귀한 때였다.
엥겔스도 마르크스처럼 헤겔과 민주주의 운동에 정통했지만, 엥겔스는 마르크스보다 산업 자본주의의 실상에 좀더 밝았다. 엥겔스는 맨체스터에 있는 동안 차티스트 모임에 참석하면서 지역 지도부의 일원인 제임스 리치와 가까워졌다. 리치를 통해서 노동계급 신문 〈북극성〉에 활력을 불어넣은 조지 줄리안 하니를 만났다. 〈북극성〉은 절정기에는 발행 부수가 수만 부에 달한 신문이었다. 또한 엥겔스는 런던을 방문해 급진적 독일 망명자들의 비밀 결사인 의인동맹 회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최초 합작품은 《신성 가족》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신성 가족》에서 과거 동료 철학자들의 노동자 무시 태도를 정조준했다.
다른 말로 해서,
이곳에서 두 혁명가는 미출판 원고인 《독일 이데올로기》를 집필했다. 이 저서는 노동계급의 실제 투쟁과 밀접하게 결합된 공산주의 전망을 제시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노동계급 자력해방 원칙이 그들에게 어찌나 핵심적이었는지, 두 혁명가는 20년 후 국제노동자협회의 설립을 도우며 그 규약 첫머리에 이를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