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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정부를 크게 꺾었던 프랑스 노동자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프랑스: 파업이 확산될 수 있다”를 읽으시오.

철도 노동자들은 1995년, 지금의 마크롱과 비슷한 개악을 들고 나왔던 알랭 쥐페 정부를 굴복시키는 데서 핵심 구실을 했다.

1968년 이래 최대의 파업·시위 물결이 당시에 벌어졌다.

《타임》 전 편집장이자, 영국 보수당 의원의 아버지이기도 한 윌리엄 리즈모그는 당시 투쟁을 두고 “1990년대 서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위협적인 사건”이라고 불렀다.

이 파업이 일어나기 반년 전에 집권한 우파 정부는 노조의 저항을 짓뭉갤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른바 쥐페 개혁안은 복지를 대대적으로 삭감하려고 했다.

반격은 학생들이 시작했다. 학생들이 상당한 승리를 거두자 투쟁이 다른 부문으로 확대됐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압력을 점점 더 크게 받았다. 그래서 10월 10일 하루 행동의 날을 잡았다.

공공부문에서 인상적인 파업들이 벌어졌고, 약 50만 명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압력을 받은 노조 지도자들은 11월 24일에 더 많은 파업과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80만 명이 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철도 노조 내 활동가들이 전면 파업을 밀어붙일 정도로 강력했다. 프랑스의 상당 부분이 멈춰 섰다.

며칠 후 철도 파업이 파리 버스와 지하철 노동자들에게로 확산됐고, 그 뒤 우편·가스·전기·통신 노동자 일부도 파업에 가세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매일 열리는 대중 집회에서 투쟁이 멈추지 않도록 했고, 점차 지역 단위로 집회를 열면서 다른 부문 파업 노동자들과 교류했다.

12월 초가 되면 정부는 이미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파업은 더 확산됐다. 12월 5일 파리에서 성난 군중 16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정부가 파업 반대 집회를 조직했지만 겨우 1500명만이 모였다.

12월 7일 프랑스 전역에서 130만 명이 행진에 나섰다. 철도·버스·지하철·우체국 등에서 무기한 파업이 계속됐다. 정부는 양보하기 시작했고 결국 개악안의 핵심 내용들을 철회했다.

알랭 쥐페 정부는 1997년에 무너졌고, 그 이후의 프랑스 정부들은 1995년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마크롱이 승리를 거둬 그런 기억을 노동자들의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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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은 후에 “마크롱의 공공부문 공격에 맞서 100만 노동자가 파업하다”를 읽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