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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씨 죽음을 부른 발전 민영화의 20년 궤적

발전소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비극은, 20년 넘게 진행돼 온 발전 민영화와 외주화 정책이 낳은 비극이다. 문재인 정부도 발전 주요 부분에 도입한 민간 경쟁 확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고 김용균 씨의 유품. 수첩과 슬리퍼 곳곳에 탄가루가 묻어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은 국가가 압축적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전력을 안정적인 가격에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오랜 기간 전력산업(발전, 송전, 배전, 판매)을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독점 체제로 운영해 왔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한전의 주식회사화와 정부 지분 일부 매각 등의 방식으로 민영화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경영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었다.

발전 부문 분할·매각 추진과 노동자 저항

본격적 추진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한국에서 공공부문 민영화는 1998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다. 과거 정부에서 추진이 지연된 한국통신(KT), 포항제철(POSCO),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등 대규모 공기업 민영화가 완료됐다.

IMF가 구조조정, 민영화, 재정적자 축소 등을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내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가 이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기도 하다. 민영화를 통해 한편에서는 국가 지출을 줄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에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하고자 했다.

김대중 정부는 발전 부문을 6개 한전 자회사(5개 화력발전자회사, 1개 수력·원자력자회사)로 분할했다. 장차 민간에 매각하기 쉽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 계획은 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2002년 2월 25일 발전·가스·철도 노동자들이 공동 파업을 했다. 공공 3사 파업은 김대중 정부에 타격을 줬다. 이 투쟁은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일시) 중단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는 전면적인 민영화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각도로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기존 발전 공기업들의 민영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2008년 4월 이명박은 발전사 6곳 중 우선 2곳의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 시위로 인해 추진 동력을 상쇄했다. 이 촛불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뿐 아니라 민영화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광범한 정서를 보여 줬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영화 시도가 있었지만, ‘퇴진 촛불’ 시위로 박근혜가 먼저 물러났다.

민간 발전 시장과 외주화 확대

그러나 발전 부분 민영화가 완전 중단된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들은 신규 발전 시장에 민간 기업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도입해 왔다. 지금은 전체 발전 시장의 26퍼센트를 민간 발전회사(포스코, SK, GS 과점 형태)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정부는 분할된 화력발전사 주요 업무들의 외주화(일종의 민영화로, 한전의 발전 부문 민영화와 구별 짓기 위해 외주화로 표기)도 확대해 갔다.

발전사는 원청이 해 왔던 석탄 공급과 환경 오염 방지 설비의 운전 및 발전소 설비 정비 등의 업무를 점차 외주화했다.

김용균 씨가 입사한 한국발전기술도 이 과정에서 성장했다. 한국발전기술은 2011년 남동발전의 자회사로 설립됐다가 2014년 태광실업에 매각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열린 ‘생명 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서 ‘생명안전의 눈’ 조형물에 소망 메시지를 적고 있다. 2017.4.13 ⓒ출처 2017년 당시 문재인 선거캠프

노동조건 악화

발전사 분할·경쟁과 외주화 정책은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방식의 전환을 반대하고 원청으로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발전 분할이 진행되기 전인 1990년대 말 당시 한전 소속 발전 부문 노동자는 약 1만 6000명이었다. 그 후 발전소들이 늘어났음에도 2017년 현재 발전 5사의 정규직은 1만 2000여 명이다. 대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8000명가량이다.

경쟁 강화로 정규직들도 내부 경쟁이 강화됐고 노동강도가 높아졌다. 발전사들의 정규직 임금 체계를 보면, 4~5급을 제외하면 호봉테이블이 없고 업무평가에 의한 차등적인 급여가 대폭 강화됐다.

예산 절감을 위한 외주화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저임금(정규직 대비 55~60퍼센트)과 부족한 인원에 따른 고된 노동과 장시간 노동(한 달에 적게는 169시간에서 많게는 213시간의 연장·야간근무)으로 고통 받고 있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발전소에서는 무려 346건의 산재사고가 있었으며 337건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와 발전사들은 국가 주요 시설인 발전소에 대한 필요한 인력 증원과 시설 개선·안전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했다. 발전소를 “살인 병기”(김용균 씨 어머니)로 만들어 놓고는 그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2인 1조로만 운영됐어도, 김용균 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고를 낸 하청업체에 원청이 불이익을 주는 제도 때문에, 더 많은 사고가 은폐·축소되고 있다고 말한다.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중단! 비정규직 이제 그만!
6차 범국민추모제

  • 시간: 2019년 1월 27일(일) 오후 3시
  • 장소: 광화문
  • 주최: 청년비정규직故김용균시민대책위

※ 6차 범국민추모제는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49일째가 되는 1월 27일(일)에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