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계속되는 체육계 미투:
철저히 진상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축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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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자로 최신 상황을 반영해 일부 개정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 이후 유도, 세팍타크로, 축구, 양궁, 태권도 등에서 체육계 미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피해 호소 내용을 보면 안타깝고 분노스럽기 그지없다.
전 유도 선수 신유용 씨는 피해가 17세부터 5년간 이어졌다고 진술했다. 신 씨에 따르면, 가해자는 고등학교 유도부 코치였다. 숙소 청소를 시키는 줄 알고 불려 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성폭행 직후 코치는 “막 메달 따기 시작했는데 이거 누군가한테 말하면 너랑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다” 하고 협박했다고 한다. 신 씨는 결국 유도를 그만뒀다. 신 씨는 코치가 500만 원으로 회유하려 한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세팍타크로 국가대표 최지나 선수도 2011년 8월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최 선수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체육계 성폭행 피해 호소 사례들은 비슷한 구석들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절대적인 상명하복 관계에 있는 지도자에 의해, 일상적인 폭행과 동반됐다는 내용이다. 이런 억압적 관행의 근원에는 메달 성과만 잘 나오면 다른 문제는 눈 감아 주라는 식의 성적 지상주의가 있다.
지도자들의 위계적 연줄 서열은 어린 선수들의 진학, 대회 출전, 대표팀 스카우트 등 장래를 좌지우지한다.
이 때문에 체육계 폭행·성폭행은 계속 벌어지지만, 합의로 사건이 조용히 무마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선수 생활만 해 온 피해자들에게 보복 위험은 생존이 달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이내 다시 돌아와 지도자 행세를 한다. 최근 5년 동안 체육계 단체와 스포츠공정위에서 징계를 받았으나 징계 기간에 복직하거나 재취업한 사례가 24건, 징계 뒤 복직하거나 재취업한 사례가 299건이라고 한다.(민주당 김영주 의원)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스포츠인권센터 신고·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4~2018년 접수된 폭력·성폭력 사건 중 영구 제명 등 중징계는 9.7퍼센트에 그쳤고, 성폭력 사건의 경우 영구 제명은 27건 중 9건이었다.
제명이 돼도 체육계 축출은 잘 안 된다. 2006년 선수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처벌받은 쇼트트랙 전직 감독 등이 제명된 이후에도 민간 현직에서 유소년 코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경향신문〉)
어린 여성 선수들이 겪는 끔찍한 성폭행이 마치 관행처럼 돼 버렸다는 폭로도 있다.
2008년 박명수 전 우리은행 여성농구팀 감독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알려져 커다란 충격을 일으켰다. 당시 이를 집중 취재한 KBS는 “선수 장악은 성관계가 주 방법”,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 “(여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전 룸살롱 안 가요” 따위의 말들이 회식이나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버젓이 나온다고 폭로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심 선수를 비롯해 이번 미투 폭로에 나선 선수들의 호소는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
국가인권위나 정부 부처들이 진상 조사, 처벌 강화 등의 대책을 뒤늦게 내놓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에 나왔던 것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성적 지상주의와 위계적 연줄 서열 등의 구조적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문제가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은근슬쩍 무마돼선 안 된다.
2월 7일 수사를 마친 경찰은 심석희 선수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조재범 전 코치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 심 선수의 메모 등이 주요 증거로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범죄가 심각하고 상습적인 경우 완전히 축출해서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심석희 선수 사건을 입막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빙상 대부’ 전명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등 사건 은폐 의혹을 받는 자들도 모두 조사·처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