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는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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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 핑계로 단체행동권 약화시키려는 정부와 사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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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이하 ‘노사관계개선위’) 회의에서 단체협약·쟁의행위에 관한 공익위원 논의안(이하 ‘논의안’)이 제출됐다.
내용은 우려했던 대로였다. 노동기본권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노조를 약화시키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파업권)을 제약하는 안들이 제시된 것이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첫째,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에서의 쟁의행위 금지(점거파업은 물론 집회·농성 등을 제약),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조항의 신설, 파업 찬반투표의 유효기간 설정 등 파업권을 크게 제약한다. 파업의 실질적 효과를 억제해 파업을 하나마나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노조가 파업 참가를 규율로 강제하거나 파업 불참자를 비판·징계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도록 했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집단적 행동 통일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반면,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을 삭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논의안은 유니온숍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일차로 대기업·공기업에서 잘 조직된 기존 노조들의 약화를 노리는 것이지만, 장차 그런 노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또, 노조의 조직 확대를 위한 일부 활동이나, 사용자 단체 등에 교섭을 요구하는 것도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제약하려 한다.
셋째, 논의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변화하는 이해관계와 요구 사항이 지속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제자리걸음 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교섭창구 단일화 때문에 단체교섭권을 박탈 당한 소수노조의 경우, 더 오랫동안 단체교섭을 하지 못하게 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3년 이상의 장기 단체협약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심지어 이번 논의안에는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단체협약 해지권을 보장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는 말도 있다.
개악을 막아야
이번 논의안은 재계가 추천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것이다. 경총 회장 손경식이 문재인 정부에 ‘사용자 대항권’ 도입을 촉구한 지 5일 만에, 그것도 2월 임시국회를 목전에 두고 나왔다. 경사노위(노사관계개선위)가 사용자들이 요구해 온 개악을 추진하려고 본격적인 조율에 착수했음을 보여 준다. 정부도 이미 지난해 말 한정애 의원을 통해 개악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애초에 정부와 사용자측의 도발은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논의가 시작된 취지를 뒤엎는 것이다.
이 논의는 노동계가 요구해 왔고 문재인이 대선에서 약속한 ILO 협약 비준을 하면서 그에 맞게 관련 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EU가 ILO 핵심 협약이 비준되지 않은 것을 무역 분쟁 소재로 삼은 것도 압박이 됐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ILO 협약 비준을 피하기 어렵게 되자, 대신 관련 법을 개악해 비준 효과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사용자 대항권 운운하지만, 노동자 단결권에 대응해 사용자 단결권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안을 내놨다. 노동 3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 권리인데, 단결권을 보장해 줄 테니 단체교섭·단체행동권의 개악을 수용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 고조될 저항에 미리 방어막을 쳐놓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층 더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구해 온 방향이기도 하다. 당연히 보장해야 할 노동’기본권’을 사회적 대화에서 거래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불길했다. 문재인은 엊그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서도 ILO 기본협약 비준은 개악 입법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협약 비준이라는 선물을 받는 만큼 노동계도 재계의 대항권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 노동권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문재인이 말한 이유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과 박수근 노사관계개선위 위원장도 거듭 강조해 온 바다. “경영계의 요구도 얼마간 수용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노사관계개선위 공익위원들이 지난해 10월에도 이번 논의안이 가리키는 방향, 즉 파업권 약화를 통한 노조 무력화 방안들을 의제로 다루자고 제시했던 것이다.
몇몇 공익위원들의 의견 수준이 아니라 ‘공익위원 1차 합의안’으로 제출됐다. 당시 노동계의 반발로 논의가 미뤄졌던 쟁점들이 지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가 약속한 단결권 보장이라는 것도 매우 보잘것없었다. 지난해 11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최종 권고안은, 교원·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그조차 해고자의 노조 간부 자격을 제약하는 등 단결권 보장도 제한적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서도 뭘 보장하는지도 알 수 없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들만 늘어놨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말 한정애 의원 대표 발의로 노조법 개악안을 내왔다. 부족한 11월 공익위원 권고안에서도 더 후퇴했다. 이 법안 역시 사내하청, 파견 노동자의 작업장 내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등 단체행동권을 억제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
이 상황에서 경총이 사용자 대항권이라는 희대의 개악안까지 던진 것이다. 경사노위에 들어와서 정부 안 수준에서 논의하라는 압박 성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3권은 어느 하나만 따로 떼서 보장하고 어느 하나는 덜 보장하고 할 수가 없다. 노조를 만들어서(단결권), 개선안을 요구하고(단체협상권), 요구를 쟁취하거나 조건을 지키려고 함께 투쟁하는 것(단체행동권)은 자주적 노동자 투쟁의 엮여 있는 과정들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즉각 이번 논의안을 규탄하고 나섰다. 한국노총도 당일 회의를 거부하고 ‘사회적 대화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단지 규탄 성명 발표나 대화 단절 ‘위협’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압박하는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하고, 곧 2월 국회에서 노동기본권 후퇴,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개악이 추진되지 못하도록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