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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대의원대회, 투쟁을 결의하다
그러나 고용 대책 마련 요구가 이주노동자 단속·통제 강화 요구로 연결되면 안 된다

2월 14일 충남에서 전국건설노조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대의원들은 특별결의문을 채택해, 올해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고 건설 현장의 고용·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경제 위기 심화 속에서 문재인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려 한다. 이에 투쟁 강화로 대응하겠다는 대의원대회의 결의는 옳다. 조직 확대, 업종을 넘어선 단결을 강조한 것도 옳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된 올해 사업 계획 중 법·제도 개선 요구안에는 “내국인 고용 대책 마련”처럼 이주노동자를 사실상 외면하는 부적절한 문구가 포함돼 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대의원들은 리플릿을 통해 해당 문구가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을 해치고, 경제 위기 속에서 이주노동자를 속죄양 삼으려는 정부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문구 수정을 제안했다.

이영철 건설노조 신임 위원장은 이 취지에 공감하며 수정 제안을 수용하자고 했다. 하지만 전국회의 경향이 주도하는 토목건축과 건설기계 지부의 간부 등이 완강히 반대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찬반토론을 거친 후 진행된 표결에서 수정안은 10퍼센트(189명 중 19명)의 찬성으로 부결됐다. 최근 몇 년 동안 건설노조 지도부가 지속적으로 ‘내국인 고용을 위해 이주노동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해 온 것이 노조 주요 간부층 상당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건설노조 소속 토목건축분과 지부들이 현장 투쟁에서 이주노동자 배척 주장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에도 이런 일들이 거듭 벌어졌다.

지난해 9월 군산의 한 건설현장 앞에서 건설노조 지역지부가 “외국인 노동자 채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노동조합 간부는 조합원들에게 출근하던 이주노동자 10여 명을 가로막도록 했다.

12월 초, 수도권의 일부 지부들이 LH공사 앞에서 ‘외국인 불법고용 묵인·방조 말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기도 과천의 한 현장에서도 노동조합이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출입을 막았다. 심지어 당시 해당 지부의 간부는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에 항의하면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나 단속하라”고 거듭 외치기도 했다.

고용 대책 마련은 정부와 기업주의 몫이다

대의원대회에서 문구 수정 반대를 주도한 대의원들이 펼친 주장의 논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이주노동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내국인의 고용 안정이 우선돼야 하므로 불가피한 선택이다. 외국인은 자신들끼리 고용 확대를 하고 업주들이 착취가 용이한 이들을 선호해, 내국인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노동조합의 문을 열면 앞으로 모든 현장에서 불법 고용 반대 투쟁을 하지 못한다.

일용·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고용 감소를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내국인 고용’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우선 정부와 기업주가 고용 대책 마련 책임을 면피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거치며 줄어드는 이윤을 만회하려고, 하도급 업자들은 공사 기간 단축을 늘 강조한다. 노동자가 안전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강요한다. 그 결과,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말 한국 건설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비교 대상 101개 나라 중 12위를 차지해,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단계 하도급을 철폐해 노동 강도를 완화하면, 안전 문제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2012년 타워크레인 벽체 지지 방식이 도입돼, 안전성도 향상되고 일자리도 30~40퍼센트 가량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주들은 이런 대책은 외면한다.

‘내국인’을 앞세운다고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양보를 얻어 내는 데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내국인 고용’을 내세워 마치 정부가 건설 노동자들의 고용 개선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듯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주노동자 속죄양 삼기는 노동자 분열을 획책해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면피하고 전체 노동계급에 더 열악한 조건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기업주를 편들며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개악 등으로 ‘내국인’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정부의 단속 강화는 실제로는 내국인의 고용 불안을 완화시키지 않았다. 2018년 건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단속은 대폭 강화됐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난 1년 동안 고용 사정이 더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 고용 감소는 이주노동자 증가 때문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이윤을 만회하려 노동비용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기업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 가기 어려운 이유다. 건설 현장에서도 최근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은 건설노조 조합원의 고용을 회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편, 건설 현장에서 ‘내국인 노동자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거나 ‘이주노동자를 용인하면 불법 고용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은 현실을 곡해하는 주장이다.

하도급 업자들이 ‘이주노동자 고용을 선호’하는 것은 불리한 처지를 이용해 더 쉽게 착취하기 위한 것이지, 내국인 노동자 역차별이 아니다. 한 아파트 건설 지상층 공사에서 이주노동자는 일당을 내국인 노동자의 25만 원보다 1.2배 높은 30만 원을 받지만, 노동강도는 1.5배 세다. 말이 1.5배이지, 한 건설노조 조합원의 말처럼 “그렇게 일하면 몇 년 만에 몸이 망가진다.”

건설노조 활동가들 중에는 다단계 하도급 반대와 ‘불법’(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반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다단계 하도급 같은 불법 고용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단속을 강화한다고 다단계 하도급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 위기 속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진입 장벽이 낮은 건설 현장으로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이주노동자는 물론 ‘내국인’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건설 현장의 고용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주들이 다단계 하도급 철폐, 노동조건 개선 같은 실질적 조처를 취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요구는 모든 건설 노동자들에 해당되는 것으로, 건설노조의 투쟁에 비조합원과 이주노동자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는 거꾸로 이런 요구를 쟁취하기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와도 단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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