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임금을 절반만 돌려받으라고?:
기아차 노조 집행부의 배신적인 통상임금 합의를 부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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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소송전을 벌여 온 기아차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노조가 2월 22일 2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기아차 사측이 제기한 경영상의 어려움 즉 ‘신의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여금 750퍼센트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니 노조가 제기한 소송일로부터 잔업과 특근 등 연장수당 계산에서 누락된 미지급분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금액이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전체 약 1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3월 12일 기아차 지부 강상호 집행부는 이 금액을 반토막 내는 합의를 했다. 전체 소송구간이 1차부터 4차까지 나누어져 있는데 1차 소송구간에 대해서는 60퍼센트를 지급받고, 나머지 2차, 3차, 4차 소송구간은 묶어서 입사 년도에 따라 800만 원, 600만 원, 400만 원을 지급받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가 조합원 총회에서 통과되면 사측은 체불임금 중 5000억 원을 절감하게 된다. 기아차 지부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이 보수적 법원에서 승소하고도 그 금액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상여금 월 분할 지급
그런데 이번 합의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상여금 600퍼센트의 월 분할 지급 문제다. 이는 법정 최저임금 8350원을 적용 받지 못하는 기아차 조합원 약 1500명의 임금을 강탈하는 것이다. 현재 현대·기아차 1급 1호 기본시급이 6262원이다. 이는 법정 최저임금 8350원보다 무려 2000원이나 적은 금액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법을 개악해,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과 식대가 최저시급 계산에 포함되게 됐다. 그동안 기아차는 격월로 100퍼센트씩 연간 600퍼센트의 상여금을 지급해 왔는데, 이 상여금을 격월 지급에서 매월 50퍼센트 지급하는 것으로만 바꾸면 향후 수년간 기본시급을 올리지 않고도 법정 최저임금에 저촉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아차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앞 다투어 상여금 지급 주기를 격월에서 매월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합의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측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이 합의가 통과되면 최저임금법 위반 소송도 할 수 없게 된다. 가뜩이나 이중임금제로 고통 받고 있는 후임사원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이번 합의는 새로운 통상임금 적용으로 앞으로 늘어났어야 하는 임금도 포기했다.
기아차 집행부는 법원이 이번에 판결 내린 법정수당(휴일, 연장근로시간, 연차, 휴게시간)에만 ‘신 통상수당’을 적용하기로 합의해서, 단체협약에 존재하는 각종 약정수당에는 신 통상수당이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신 통상수당’ 계산 때 월 근무시간 기준을 기존 단협으로 정한 226시간이 아니라 243시간으로 바꾸는 것도 합의했다. 월 근무시간 기준을 226시간에서 243시간으로 변경하면, 연장근로수당 계산 시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의 시급이 감소한다. 통상임금 액수는 그대로인데, 분모인 근무시간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합의 때문에 전체 임금인상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기아차 집행부가 발생한 노보 〈함성〉 특보를 보더라도 인상 금액이 상여 포함 월 평균 고작 3만 1549원, 매년 37만 8588원이다. 이조차 정확한 지 믿을 수 없다. 이걸 받겠다고 상여금 월 분할을 합의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셋째,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공격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현대·기아차에서만 해도 법정 최저시급을 적용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숫자가 8000명이나 된다. 그룹사 전체로 확대하면 그 숫자는 족히 수만 명은 넘는다. 기아차 지부의 위상을 생각할 때 금번 합의는 그룹사 전체는 물론이고, 금속산업과 전체 노동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는 현대차 하부영 집행부의 ‘광주형 일자리’ 용인 합의처럼 노동자 임금 공격에 혈안이 돼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 커다란 선물을 준 꼴이다.
그래서 합의를 설명하는 대의원 소집에서 많은 대의원들이 “임금인상 효과가 거의 없는데 왜 상여금을 월 분할 지급을 합의했냐!”, “체불임금을 고작 60퍼센트 받자고 이런 합의를 하나”라고 문제제기했다. 강상호 지부장은 “대법 소송 시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넘게 걸릴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며 은근한 협박을 했다.
대의원들이 “상여금을 월 분할한 것은 통상임금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많은데 이 합의로 사측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 하고 계속 항의하자, 지부장은 “그 점에 대해선 인정한다”고 했다. 임금 팀장은 “신입사원들에게 부적절한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경영 위기’
강상호 집행부가 이런 합의를 한 배경은 자기 임기 내에 체불임금을 해결했다는 성과를 남기려는 성과주의적 접근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기아차의 미래발전과 수익성을 생각’, ‘영업이익이 1조 1000억 원으로 2017년보다 4700억 원 하락하고 있어 회사의 지속 성장과 미래 발전을 위해 합의’ 등등을 노보에서 언급한 데서 보듯, 사측의 ‘경영 위기’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보수적인 법원조차 기아차의 ‘경영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노조 집행부가 나서서 이를 인정해 줬으니 말이다.
게다가 2018년에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사측이 통상임금 패소에 따른 법정 충당금 1조 원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를 빼면 2018년 영업이익은 2017년보다 50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있어 각국의 자동차 기업들 사이에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2019년에만 주식 배당금으로 자그마치 887억 원을 받는다. 그리고 2019년 3월 17일 현재 주식 배당을 공시한 499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2018년 배당금은 총 26조 2676억 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 배당금(20조 8593억 원)보다 25.9퍼센트 증가한 수준이다.
이처럼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도 자신들은 배당잔치를 벌이며 부를 축척하고 있다. 그런데도 법정 최저임금 인상분 적용을 요구하는 것이 기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측을 옹호하는 것은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스운 일이다.
강상호 집행부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상여금의 통상임금 적용을 판결한 후에도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소송에 매달려 왔기 때문에 사측이 배짱을 부리며 신입사원들의 이중임금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역대 집행부들 역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
잠정합의를 부결시키고 투쟁을 통해 온전한 통상임금 적용과 후임사원들에게 최저임금 8350원이 적용 받을 수 있게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