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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수단의 반정부 운동 ─ 배경과 전망

알제리와 수단에서 일어난 대중 항쟁이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8년 만에 중동을 다시 뒤흔들고 있다.

4월 2일 알제리 대통령 압델 라지즈 부테플리카가 대규모 거리 시위와 파업에 굴복해 사임했다. 그러나 운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된 상원의장 압델 카데르 벤살라 퇴진을 요구하며 알제리 전역에서 계속 시위와 파업을 벌이고 있다.

철도·항만·공공기관·중등학교·대학·제조업 등 여러 부문 노동자들이 일터를 점거하거나 거리 시위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부테플리카 정권 연루자 전원 퇴진을 요구하는 항쟁을 지지한다. 많은 국영 제조업 노동자들이 속한 전투적 노동조합 연맹 생산자노동조합연맹(COSYFOP)은 총파업을 호소하고 있다.

수단에서는 4월 11일 군부가 대통령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를 체포하고 과도군사위원회를 수립했다. 수단에서는 2018년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알제리 항쟁의 성공에 고무돼 거대하게 폭발했고, 정권을 더는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방부 장관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아우프가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이 됐다. 그러나 이븐아우프는 민간 정부 구성, 알바시르 정권 연루 인사 배제·처벌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에 밀려 이틀도 못 가 사임해야 했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시위대는 국방부 청사를 에워싸고 밤낮으로 광장 점거 운동을 이어가며 군부 통치의 완전한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

그렇다면 중동의 새로운 항쟁 물결은 왜 등장한 것일까?

이웃 나라 이집트·튀니지·리비아와 달리,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정권은 2011년 ‘아랍의 봄’ 항쟁을 피했다.

당시 알제리의 지배계급은 석유 수출 수익을 바탕으로 노동계급에 일정 정도 양보 조처를 할 수 있었다. 알제리는 산유국으로서, 국내총생산(GDP) 중 3분의 1이 석유·천연가스에서 나왔다.

그러나 2013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지배계급이 양보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 부테플리카 정부는 식료품·연료 보조금을 잇달아 삭감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부테플리카가 대통령 5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대통령 연임 반대로 시작한 대중 시위가 순식간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으로 확산됐다.

수단의 알바시르 정권은 어떤가? 1989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알바시르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자였다. 알바시르는 집권 3년 만에 공공부문 노동자 10만 명을 해고했고, 국가 보유 자산을 민간 기업과 군부 인사들에 팔아넘겼다.

알바시르는 매우 강압적으로 통치했다. 알바시르 정권은 반정부 인사들을 납치·고문·살해했고, 수단 서부 다르푸르에서 인종 학살을 벌여 30만여 명을 살해했다.

수단 남부에서 유전이 발견된 덕택에 군부가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알바시르는 곳곳에서 반발에 부딪혔지만 석유 수입에 기대 권력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유전들이 있는 남수단이 2011년 독립한 것은 알바시르 정권에 치명적이었다. 알바시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걸프 국가들에서 차관을 들여왔고, 고강도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 빈곤이 극심해졌다.

2018년 초 정부가 보조금을 대거 삭감하면서 수단인의 주식인 빵값이 세 배 뛰었고, 물가인상률이 16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식료품 가격 인상 때문에 학교 급식이 중단되자 초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운동은 알바시르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빠르게 발전했다.

노동자들이 항쟁의 중심에 서다

수단과 알제리 모두에서 노동자들이 항쟁의 중심에 있다.

알제리 생산자노동조합연맹은 48개 주(州) 모두에서 파업이 벌어지고 있으며 조합원 73퍼센트가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 주요 산업인 석유·가스 부문뿐 아니라 국영 자동차·철강·광산·철도·항만·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선박 엔진 제조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서, 엔진 수리를 받지 못한 알제리 해군 함정이 운항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파업에 돌입한 알제리 선박수리 회사 노동자들 ⓒ출처 COSYFOP

온건 성향 노동조합 연맹인 알제리 노총(UGTA) 기층 조합원들도 “계급투쟁으로 복귀하자. 노총에서 정권과 자본가를 내쫓자. 친정부 지도부 퇴진하라” 하고 요구하며 시위했다.

수단에서는 의사·언론인·교사·약사 등이 주도하는 노동조합 연맹 수단직능인협회(SPA)가 항쟁 초기인 2018년 12월부터 거리 시위와 파업을 주도했다.

노동조합들이 주도한 대규모 시위는 천대받는 민중이 해방감을 표출하는 축제의 장이 됐다. 알바시르 정권 하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차별받던 여성들이 저항의 전면에 나서 시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소수 종교인 콥트교(토착 기독교) 신자들도 거리 시위에 동참해, 광장 점거 중인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천막을 들고 땡볕을 가려 주기도 한다.

광장 점거 중에 기독교인들이 기도하는 무슬림들을 위해 천막을 들어 땡볕을 가리고 있다. ⓒ출처 sudaneseprofessionals.org

수단과 알제리 모두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거리 시위와 노동자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들이 전진하려면 국가 권력의 핵심인 군부를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알제리에서는 프랑스 식민 지배에 맞서 1954년부터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이 1962년 독립 직후 정권을 잡았다. FNL은 집권하자마자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으로 빠르게 변신했는데,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를 활용했다. 30년 동안 수단을 통치한 독재자 알바시르도 이슬람주의적 언사를 하며 서방에 맞서는 반제국주의적 지도자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중동 민중 사이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반제국주의 정서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부테플리카와 알바시르가 위기에 몰리자, 군부의 일부는 운동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븐아우프의 후임으로 위원장 자리에 오른 중장 압델 파타 압델 라흐만 부르한은 시위대를 만나 “[알바시르] 정권의 뿌리를 뽑겠다” 하고 공언했다. 그 자신이 정권의 일부면서 말이다.

“이집트가 되지 않겠다”

2011년 ‘아랍의 봄’은 아랍 세계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2011년 혁명 당시 이집트 군부는 사태를 관망하다 혁명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군 헬리콥터가 시위대가 점거 농성을 하던 카이로 타흐리르광장 상공에 나타나자 시위대는 환호했다. 그러나 바로 그 군부가 훗날 이집트의 혁명을 찬탈했고, 현재 가혹한 반혁명 조처들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국가 기관들은 민중의 동지가 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과 함께 피지배계급을 통제하고 억누르기 위해 탄생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운동이 국가 기관들과 어정쩡하게 타협하면 반혁명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다행히도 지금 운동이 쉽게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수단 항쟁 참가자들은 “우리는 이집트가 되지 않겠다” 하고 다짐하고 있다. 알제리인들도 “장군 얼굴만 바뀌는 체제는 이제 그만”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알제리인 활동가 한 명은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부테플리카] 정권에 연루된 자들 모두를 거부합니다. 알제리인들은 이제 급진적 변화를 갈망합니다”. 수단 SPA는 군부가 “민선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고 “정권의 모든 무장세력·조직·기구를 해산”시킬 때까지 국방부 청사 앞 점거 농성을 해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운동에는 여전히 과제가 있다. 만약 알제리와 수단 대중이 2011년 이집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군부의 회유와 탄압을 분쇄한다면 운동을 크게 전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항쟁이 급진적인 정치적·경제적 변혁을 쟁취하려면 혁명적 지도력이 출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