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알제리 항쟁, 혁명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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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과 알제리 등지에서 수백만 명이 대중 항쟁을 벌여, 부패하고 억압적인 독재 정권을 퇴진시키며 전진하고 있다. 이 글은 4월 30일(영국 현지 시각)에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중동 문제 전문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편집자 앤 알렉산더가 연설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녹취와 번역에 기여한 이은혜 동지께 감사 드린다. [ ] 안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부가 삽입한 것이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수단 노동자들, 군부에 맞서 총파업에 나서다”를 읽으시오.
우선 수단 상황을 간단히 말씀 드리고, 진정한 변화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한 좀더 일반적인 쟁점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수단과 알제리의 항쟁이 지금 사회를 다른 사회로 바꿀 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운동을 끝내야 하는 것일까요? [이어서] 국가 문제에 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린 후 발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노동자 투쟁 덕에 자생적 시위가 조직적 항쟁으로 발전하다
영국 기성 언론들은 [수단 독재자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의 사임 직전인] 4월 6일쯤부터 수단 상황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은 지난해 12월에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의 배경이 되는 쟁점은 지난 몇 년 동안 수단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와 생필품 가격 인상을 규탄하는 시위 물결을 촉발시킨 것은 팔라펠[중동식 샌드위치] 가격 인상에 항의해 대학생들이 벌인 시위였습니다. 이를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일을 계기로도 대중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팔라펠 가격 인상이 대중의 분노를 촉발했을까요?
수단은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된 지역이 있고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나라입니다만, 오랫동안 심각한 경제 위기에 시달려 왔습니다. 알바시르 정부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알바시르 정부는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정부와 꼭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부를 도둑질했던 정부입니다.
[유전이 많이 분포한] 남수단의 독립도 수단의 위기를 심화시킨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알바시르 정부와 수단 군부는 역사적으로 누비안족 거주지, 남부 쿠르두판주(州),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인종 학살과 전쟁 등 참혹한 범죄를 자행해 왔습니다. 수단 경제 위기에 이런 [정치적·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아는 것은 꽤 중요합니다.
이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알바시르 정부가 식료품 보조금을 삭감해] 하룻밤새 식료품 가격이 세 배로 뛰면서 수단 전역에서 대중 항쟁이 분출했습니다.
이제까지 억눌려 있던 모든 부문의 사람들이 항쟁에 동참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매우 용감하게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여성들이 운동을 이끈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들겠습니다. 어떤 여성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주워 되던졌는데, 그 장면이 찍힌 사진이 SNS에서 널리 공유되면서 이 여성이 혁명의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혁명 전까지만 해도 패션·요리법·일상 공유 목적으로 운영됐던 페이스북 그룹이, 혁명이 발발한 후에는 [시위대에 침투한] 경찰관들을 색출하는 그룹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 페이스북 그룹 회원들은 경찰관들을 색출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비폭력적 방식을 동원해 시위 현장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반면 최근까지도 수단 정부는 알제리 정부보다 훨씬 더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시위 참가자들이 중상을 입기도 합니다.
이런 항의 시위들은 자생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현금인출기에서 예금을 인출할 수도 없고, 아이들 먹일 음식을 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자, 사람들은 더는 참을 수가 없게 됐던 것입니다.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지푸라기 하나”라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파업
이런 운동은 매우 빠르게 조직적인 운동이 됐습니다. 의사·교사·언론인 등이 속한 [노동조합 연맹] 수단직능인협회(SPA)가 운동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SPA는 2016년에 설립됐는데, 수련의들이 핵심적 구실을 했습니다. 당시 수련의들은 병원의 조건이 열악하고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근무 중에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데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습니다. 당시 이들이 건설한 파업위원회 네트워크가 훗날 SPA로 발전했습니다. 수련의뿐 아니라 공공부문 노동자, 교사, 대학 강사, 대학 직원 노동자, 언론인, 법조인들 등도 SPA에 속해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운동이 강력하게 성장하면서, SPA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도 파업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포트수단에서 일하는 항만 노동자들, 시멘트 [제조] 노동자들 등 다양한 부문의 조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항쟁에 동참했습니다.
국가 권력 문제가 중요 쟁점으로 부상하다
‘국가 권력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 수단 운동 안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는 쟁점입니다.
이 쟁점은 수단에서 4월 6일 이후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부상했습니다. 수단 국가를 누가 운영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과도군사위원회를 통제하는 군 장성들과 수단 수도 하르툼 거리와 포트수단 등 전국 각지의 도시들에서 혁명에 나선 민중 사이의 쟁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수단 항쟁이 결집한 연대체 ‘자유와 변화를 위한 선언 세력’(FDFC)의 대표자들은 [현재 수단을 통치하는 과도군사위원회를 상대로] 협상에 나서고 있습니다. FDFC는 일당 독재 알바시르 정권 청산과 문민정부 수립, 여성의 권리 확대, 내전·학살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구현, 사회 정의 실현 등을 요구합니다. 이 협상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수단인들은 군부에 협상을 강제하기 위해 4월 6일에 [수도 하르툼에 있는] 대통령궁과 국방부 청사 앞 광장을 점거했습니다. 이 광장 점거가 핵심 돌파구가 돼, 군부는 알바시르를 퇴진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는 절대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바시르를 연금시킨 국방장관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아우프는 자기 자신을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24시간 만에 현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인 중장 압델 파타 압델 라흐만 부르한이 이븐아우프를 끌어내렸습니다.
압델 라흐만이 부의장으로 지명한 중장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는 “헤메티”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메티”는 수단에서 가장 잔혹하기로 유명한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을 이끄는 자입니다. 신속지원군은 다르푸르 등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인종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던 무장세력 잔자위드가 탈바꿈한 단체입니다. “헤메티”는 수단 무장세력을 이끌고 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군사 동맹 편에서 싸우기도 한 자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더는 어떤 혼란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국방부 청사 앞 광장 점거 참가자들을 을러대고 있습니다. 이 항쟁에 걸린 판돈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계급 권력
이제 이 항쟁이 시사하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항쟁은 국가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합니다. [국가는] 관료와 군대가 혼합된 기구입니다. 국가 운영자들은 이 기구를 사회를 운영하는 데가 아니라 계급 권력을 집행하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막대한 부를 탈취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착취·억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투표는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수단에도 투표[선거]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군부, 부패한 기업주, 국가 관료, 정치인들이 사회의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외엔 없습니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해 개혁에 이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파리코뮌과 러시아 혁명 등 이전 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떠올려 봅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통찰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희망을 얻을 만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잠재력입니다. 이는 알제리와 수단의 평범한 사람들이 항쟁 와중에 매일같이 탁월하게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도 하르툼 소재 국방부 청사 앞 광장 점거 운동의 사례를 봅시다. 운동 참가자들은 치안·식량·식수·의료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항쟁 참가자들은 [치안을 통제하기 위해] 검문소들을 운영하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헤메티” 같은 자들을 괴롭히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헤메티”보다 더 잘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죠.
“헤메티” 같은 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 그들 자신이 초래한 ─ ‘혼란’이 아닙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대안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종·언어·성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학살과 폭력으로 산산이 분열한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스스로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물론 현재 알제리와 수단에서 그런 대안은 이제 움트기 시작한 수준입니다만, 그런 대안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이제 이런 [국가의] 무장한 권력에 맞서, 그것도 상상도 못할 만큼 잔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넘어가 봅시다.
사실, 우리에게는 사회를 운영할 힘이 있습니다.
“헤메티” 같은 자들이 [노동 대중에게서] 쥐어짜내는 이윤, 그 이윤은 수단에 투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지배계급과 대기업들이 차지합니다. 이들은 수단의 농지를 차지하고는 낙농업을 운영하고 가축 사료 작물을 재배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축산물은 걸프해 연안 지역으로 수출됩니다. 수단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그 모든 것을 생산해 냅니다.
알제리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계속 시추할 수 있는 것도 평범한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제리 산업도시 리바의 노동자들이 알제리 거리를 메운 자동차를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용된 의사들은 병원을 실제로 굴립니다. 이들에게는, 탄압만으로는 부수기 힘든 조직 노동자로서의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 무장 병력을 이끌고 병원에 쳐들어가 의사들을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알바시르 정권은 항쟁 초기에 이런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이 [알바시르 정권의 악선전처럼] ‘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지배자들의 온갖 방해에 맞서 스스로 조직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노동자 고유의 힘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힘이 더 제련되고 굳세어져야 합니다.
알제리와 수단 모두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강력한 운동이 있습니다만,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례로, 저는 알제리 국영 언론사 노동자들이 벌였던 대규모 행진을 눈여겨봤습니다. 알제리 방송국 노동자들은 [국가의 언론] 검열 중단을 요구로 걸고 대규모 시위를 벌여,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이 방송국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단에서 SPA는 국영 TV·라디오 방송을 이용해 4월 26일 집회를 공지했습니다.
저는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이용한다면 지금과 다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알제리와 수단의 작업장에서 나오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권력을 가진 기존 국가에 맞설 방법입니다.
조직
진정으로 대안을 건설하려면 어떤 종류의 조직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혁명이 벌어질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항쟁을 조직하는 데에 참여합니다. 이런 광범한 [사람들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노동조합이, 청년 운동이, 국가 권력을 실제로 파괴할 만큼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대중 조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단단하게 집중된 혁명가들의 조직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 말입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 같은 조직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그런 조직은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우리 편을 결집시킵니다. 그런 조직은 본질적으로 훨씬 더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일상의 민주주의, 작업장에서의 민주주의로 확대시키려 노력합니다. [노동자들의] 힘이 그런 진정한 변화를 이루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단단하고 집중된 조직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적이 중앙집권적으로 조직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단하게 조직되지 않는 한 그들의 권력은 영원불멸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수단의 사례를 토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국 정부가 수단 알바시르 정권을 대놓고 지지했던 끔찍한 역사가 있다는 점 때문에도 더욱 그렇습니다.
알제리와 수단의 혁명가들뿐 아니라 시리아·이집트·튀니지 동지들의 경험을 토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현재는 씨앗 상태인 대안 사회를 향해,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꿈꿨던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